2023년 마지막 프로브톡입니다. 솔직하게 연말 마지막주는 구독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저도 휴가를 가지고 싶단 유혹이 강력했으나 꿋꿋하게 발행하는 "나를 칭찬해!"라며 괜찮겠다란 자뻑을 가득 담아 올해 마지막 레터를 쓰고 있어요. ^0^
마지막 주는 평가 시즌에 대한 흔한 이야기에요. 월요일과 수요일 각각 피평가자와 평가자 입장에서 알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들 중 몇 개를 짚어 보았어요. 오늘은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 평가제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주관부서인 HR을 주인공으로 마무리 해볼께요.
HR이 평가를 어떻게 설계해야 한다는 건 많은 글이 있으니 스킵하고 오늘은 짧고 굵게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 이것만큼은 꼭 유념하잔 포인트 딱 하나만 얘기해보겠습니다.
제도를 잘 만들기 <<<< 잘 운영하기
사실 평가제도를 '잘' 설계하는 자체도 어렵지만 그래도 할 수는 있어요.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개선되고 변화해오긴 했지만 평가제도가 대단히 크게 변했냐 하면 그렇진 않습니다. 상대평가가 꽤나 오래 운영되어 왔고 상대평가의 폐단이라며 절대평가가 대안처럼 대두되기도 했습니다. 상대냐 절대냐의 공박이 가장 오래 되었죠. KPI냐 BSC냐도 오랜 화두였고 이런 운영형태의 불만족으로 다른 방안을 모색하려는 노력도 많이들 하고 계세요. 특히 스타트업 활황기 시절 스타트업씬을 중심으로 OKR이 지난 3~5년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HR은 긴 호흡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유행에 민감하고 우르르 휩쓸리기 쉬운 분야 중 하나가 HR이기도 합니다.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개선해 나가는 건 중요하지만 HR이 고민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건 얼마나 제도를 잘 만들 것이냐가 아니라 얼마나 제도를 잘 운영할 것인가가 아닐까요.
몇 년 전 오랜 상대평가에 반기를 들며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평가는 상대평가보다 더 평가자 역량이 중요하다며 평가자 교육이 어떻고 하는 말도 함께 대두 되었지요.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하게 할 수 있는 거라면 평가에 대해 이리 오랜 기간 풀지 못한 난제 마냥 고민거리가 아니었겠죠. 기준이 명확하면 되는 거 아니냐. KPI 제도 하에서 목표와 달성 숫자로 이보다 명확할 수 있나요? 하지만 이게 제대로 다 담지 못한다거나 본질이 아니라거나 하는 일을 모두 반영 못한다 등의 불만도 흔하디 흔하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정량화, 객관화, 평가 수용성 등을 강조하구요. OKR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목표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거나 지표가 이게 맞니 틀리니 공방전이 일어나고 평가제도를 정교화 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주변을 둘러보아도 "우리 회사는 평가제도가 정말 완벽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있으세요?
평가하는 사람의 주관성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기 마련이고 평가자-피평가자 간, 조직 분위기나 평가자의 상위 평가자 등등등의 수많은 조합의 변수로 모두가 만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이걸 모두 통제하기란 더더욱 어렵구요. 그럼 아무리 완벽성을 기하려 평가제도를 정밀하게 설계한 들 인풋 대비 기대 결과는 비례할 수 있는 걸까요?
상대든 절대든, KPI든 OKR이든 다면평가든 그냥 평가는 어렵습니다. 상대평가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걸 상대평가 자체가 문제덩어리란 식의 비난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대안이라는 절대평가 역시 '제대로' 운영되긴 어려워요.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제대로 운영'이에요. 제도의 기획과 설계가 아무리 촘촘한 들 실제 현업에서 제대로 실행하느냐는 별개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조직, 특히 주관부서인 HR 에서 이 부분을 놓치며 기획의 완벽성에 집착합니다. 그럼 제대로 운영한다는 건 뭘까요?
HR은 설계를 했으니 정확히 제도에 대한 이해를 한다 치지만 실제 HR이 모든 임직원을 개별 평가하진 않습니다. 평가자는 HR이 아니라 각 현업 이해관계자나 직속 리더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이들이 HR만큼 제도의 세부 개념과 철학,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느냐.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는 거 같긴 한데 실제로 열어 보면 그대로 평가되어 있지 않거든요. 백 번 양보해 이해했다 칩시다. 아는 것과 행하는 건 또 별개죠. 그래서 또 평가가 제도의 의도대로 시행되진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평가자 역량, 평가자 성숙도란 말로 회자됩니다.
다면평가를 한다 칩시다. 리더도 평가자로서 완벽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리더라고 이런저런 설명과 가이드를 받고 평가기간 외에도 리더십에 대한 챌린지를 받긴 합니다. 하지만 일반 팀원들은 리더가 되기 전까지는 이런 훈련에 노출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좋은 리더를 보고 배운 경험이 없다면 더더욱. 그럼 다면평가는 인기투표나 불평불만을 담은 저격의 장으로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아니면 좋은 게 좋은 형식적인 코멘트에 머물러 버리죠.
평가자 선정은 어떨까요? 직속 리더만 평가하는 경우가 아니라 다면평가에서 그들의 퀄리티 컨트롤은 어때야 하는지, 제대로 평가하는지, 제대로 선정되었는지는 검증이 잘 되고 있나요?
또 어떤 리더는 관대화 경향이 다분하고 어떤 리더는 박하기도 합니다. 그럼 이런 리더들의 특성을 감안해 캘리브레이션은 어떤지?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HR이 플래닝만큼 혹은 플래닝 보다 더 공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평가자가 제도의 디테일까지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교육이든 코칭이든 어떤 인풋을 얼마나 들이고 있을까요? 그나마 가이드 조차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슬랙 공지, 간단한 페이퍼 정도. 좀 더 해도 리더 교육 때 평가자 교육 같은 정도죠. 언제 듣긴 들었지로 휘발되기 쉬운 평가자들에게 얼마나 리마인드 해주고 있을까요.
평가 기간 중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면담이나 피드백을 제대로 되고 있는지는 얼마나 체크되고 있을까요. 결과도 마찬가지구요.
예전 회사에서 분기별로 평가 가이드를 계속 보내고 평가 시즌이 되면 리더들을 모아 평가 설명회를 실시하고 평가 기간 중 진척도를 수시로 모니터링 했습니다. 어떤 평가 코멘트를 넣고 있는지도요. 뭔가 진척이 안 되거나 대충 한다는 판단이 들면 메일이든 전화든 때론 찾아가서 옆에 앉아 질문하고 피드백을 드렸어요. 그래도 문제는 늘 발생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이라도 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리더십이 문제가 있는 분들께는 한 분 한 분 결과를 놓고 왜 이렇게 했는지를 물어가며 피드백은 이렇게 저렇게 하셔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구요.
그리고 검증을 위해서 HR이 해야 하는 일에는 평가자의 평소 성향, 특성, 전년도 평가 결과, 평가 경향, 리더십, 각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그에 따라 어떤 변수들이 있는지, 특이점이 있는지 체크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추가로 조직의 직무, 목표 등에 대한 파악도 하고 있어야 하지요.
얼마나 상세하고 정확하게 이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지, 어떤 체크포인트가 있는지, 예상되는 이슈는 없는지를 사전/과정상 점검해 가며 애써 만든 제도가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의도대로는 운영될 수 있게 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겁니다. 성공적인 평가는 있어빌리티와 고민 가득한 제도가 아니라 제도 운영과정의 관리의 질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때문에 평가제도의 트렌드, 평가자 역량을 운운하기 전에 HR 스스로 실력과 성숙도를 점검하고 키워나가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Data, 자동화니 해도 최소 이런 운영에 있어서는 여전히 HR의 경쟁력은 발품에 있는 것 같습니다.
HR이 문제냐.
문제라 할 수도 그렇지 않다 할 수도 없습니다. CEO 포함 조직의 성숙도가 HR의 성숙도를 가름짓는 법이니까요. HR이 권위적이고 어떻단 비난도 많지만 일을 해보면 HR이 의사결정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진 않아요.
잘 해도 티 안 나고 못하면 얻어터지는 게 HR이기도 해요.
평가자, 피평가자 모두가 제도를 이 따위로 만들었다며 HR에 비난을 쏟아내기도 하고 이렇게 하라고 해놓고 막상 현업 원성이 자자하면 HR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뒤로 빠지는 경영진도 흔합니다.
HR도 평가 받는 사람 중 하나임에도 사측으로 치부된다거나 이미 결정된 평가 기준에 불만을 표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동의도 하면서도 설득하고 합리화 하는 것도 HR의 몫이에요.
그래서 다른 임직원들도 HR에 맹목적 비난을 쏟기 보다는 그들의 역할과 낌의 애환을 이해는 해주셨음 합니다.
다만 HR은 HR이기 때문에 좀 더 높은 헌신과 솔선수범이 요구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HR만 새우등 터진다? 이 역시 HR이란 일의 특성 중 하나임을 부정하긴 어려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HR은 의사결정의 자유도는 적을 지라도 어떻게 잘 운영하고 실행하게 만들 것이냐에서만큼은 흔한 말로 '주도성, 적극성'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HR이 얼마나 발품을 더 파느냐, 기획이 아닌 실행과 과정 관리 말이죠.
평가 시즌에 가이드 뿌리고 언제까지 해달라 하면서 기한 내 완료 못한 데에 얼른 해달라 메시지 보내기, 완료 후 취합하기를 평가 시즌 되면 정신 없다고 하고 있진 않나요? 엄밀히 평가 운영이 아닌 행정 업무 말이에요.
"난 평가 담당자지 교육담당자가 아니야"란 말은 하고 있지 않나요? HRM, HRD니 나누며 제도 설계가 마치 상위 업무인냥 도취 중인지는 않은지.
임직원분들도 HR에 불만만 표하기 보다는 이런 걸 해주면 좋겠다, 이런 걸 도와달라는 제안을 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결국 평가의 주체는 현업이고 평가를 받는 입장이든 하는 입장이든 '제대로' 하고 받는 게 관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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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우와 살뜰하게 12월 29일 금요일까지 발행된 프로브톡입니다!! 프로브톡을 읽으며 정말 생각도 많이하고 동료들에게 공유도 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경영진과 HR파트에는 공유하지 못했어요. 니들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격이 되지 않나 혼자 괜히 엄청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마 공유하고 싶은 제 마음= 불만 이어서 그랬을 수도요) 30-40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회계담당자로 HR 혹은 피플 파트와 붙어 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나도 HR 좀 알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아주 오만한 생각이었어요. HRM이야 빠르게 하겠지만 인사담당자의 바른 마음가짐이 없으니) 프로브톡을 읽다 보면 인사가 모든것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스스로 프리랜서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 항상 감탄합니다. 감사합니다. 23년 프로브톡!! 24년은 또 어떤 자극과 간접경험이 있을까요?!
프로브톡
늘 꼼꼼히 읽어주시고 댓글로 생각도 전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한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는 술술 풀리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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