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 아니면 적.
회사생활 중엔 '라인'이라는 말이 종종 쓰이는 걸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누군가는 정치질한다 하고 누군가는 편을 가른다고도 합니다. 여직원들에게는 '여왕벌' 운운하기도 하죠.
가끔 "저는 정치질 같은 거 관심도 없고 싫구요"란 얘길 듣습니다. 보통 이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딱 잘라 말합니다.
정치를 제대로 못하는 게 문제지 필요한 역량이라구요. 특히나 리더가 이걸 제대로 못해내면 팀원들이 죽어 납니다. 잠시 정치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 보았습니다.
회사 속에서 정치란 성과를 내고 팀과 팀원들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전략(판세)을 읽고 적시에 해야 할 일을 해내며, 그를 위해 필요한 자원과 스폰서십을 얻어내는 일로 정의할 수 있겠네요. 좋은 매니지먼트와 이 매니지먼트를 이끄는 좋은 리더십의 결정체 말이죠.
그럼 왜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걸까요?
다른 걸 걷어내고 주어가 팀이 아닌 본인이 될 때, 이해 조정이 아니라 본인의 이해만을 위할 때, 조직의 질서보다 본인을 중심으로 한 질서만 잡고 싶을 때, 이를 위해 타인을 공격하거나 깎아 내릴 때. 이런 상황과 사람을 많이 보아서일 지도요.
사실 흔합니다.
막내급이냐 리더급이냐와 무관하게 개인의 성향과 기질이 큰 영향을 차지하죠. 살아온 환경 속에서 다양한 이유로 강화되어 왔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주목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으며 함께 가기보다는 경쟁으로 타인을 보는 분들에게 많이 발견됩니다. 언행에서 드러나게 폭력적이거나 손가락질 받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이들은 어디에든 있습니다.
대인관계가 나쁘지도 않아요. (표면적으로는) 한걸음 떨어지면 좋은 사람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당하는' 누군가가 어딘가 존재합니다. 본인의 경쟁상대이거나 (업무적, 승진, 포지션 등) 직접적으로 붙지 않는데도 경쟁심을 느끼는 경우, 본인보다 주목받는 누군가가 생기면 대놓고도, 은근히도 상대를 따돌리고 험담을 하기도 합니다. 대신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본인의 '편'을 통해 여론을 만들고 '나는 괜찮다'거나 대단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듯한 설명을 하며 주변의 동의를 구합니다.
개중에는 왕따를 당해서, 본인이 그런 희생양이 되어봤다는 등의 경험으로 다신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방어심리일 때도 있지만 이런 분들은 어릴 적 칭찬이나 인정, 인기를 경험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주도적이고 사람들을 이끄는 역량도 있을 때가 많아 자기 라인도 잘 만들죠. 이들의 문제는 본인의 문제를 정작 알아야 하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점점 위로 갈 수록, 언젠가는 눈치들을 채지만 여전히 좋은 사람, 일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크게 도드라지지 않으니까요.
이런 이들은 자기 편과 아닌 사람으로 사람을 이분화 시킵니다. 자기 사람이라 생각하며 잘 챙기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그게 본인의 우월감과 세를 위해, 누군가를 공격하고 자신이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위해 동원된다면 그건 문제일 겁니다. 그리고 그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철저히 배제시키고 끌어내리려 애씁니다.
딱히 상대가 본인을 의식하지 않아도,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뭔가 작은 실수나 약점이라도 드러나면 "대체 왜 저렇게까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예민하게, 감정을 폭발시키기도 합니다. 본인 것이 아님에도 내걸 뺏겼다 하는 느낌으로 상대를 미워하기도 하구요.
이런 사람들이 팀원으로 있으면 팀 내 이 라인에 못들어간 이는 괴롭고, 리더도 괴로워집니다. 본인을 원하는 만큼 충분히 인정하고 치켜세워주지 않으면 리더를 깎아내리니까요. 이들이 중간리더층이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리더에 대한 불만에서 리더를 무능하다고 욕하기 시작해요. 본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리더가 잘 하지도 못하면서 차지하고 있는 냥 몰아갑니다. 이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본인의 심복을 눈에 띄게 가르고 자신에게 '충성하거나 복종'하지 않는 팀원을 가차없이 배척합니다.
그동안 보아온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남들이 보기에 저 정도면 인정받는다 생각해도 본인의 야망과 욕심이 월등히 높아 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때론 저 정도는 아닌데 오히려 인정을 더 많이 받지 않냐는 비판도 있지만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그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죠.
그럼에도 연차가 쌓일 수록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퇴행되는 것 마냥 어린애처럼 되어 갑니다. 본인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로 내로남불로 부정적 강화마저 되기 쉬워요.
나이가 들수록 '애 같다, 미성숙하다, 골목대장 노릇한다" 같은 평가를 듣게 됩니다. 개인의 동기도 연차와 나이, 포지션의 성장만큼 함께 성장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고 잘하고 싶어하며 살살 잘 달래면 또 좋아하기에 리더들은 이런 성향을 알면서도 모른 척 넘어가거나 정말 모른 채 지나가곤 합니다. 저연차일 수록 별 거 아니고, 저 때는 저럴 수 있다 정도로 간과하지요.
하지만 이런 성향을 발견했다면 모르는 척 무심한 척 하면서도 팀 전체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와 특별히 친하거나 아닌 사람이 있는지, 미묘한 긴장감이 있는 팀원이 있는지, 평소 그가 어떤 표현을 자주 쓰는지, 그 표현에 은근하게 저런 성향의 말들이 포함되어 있는지를요.
일에 대한 피드백을 정확히 주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고 이들에게만 해당하지 않겠지만 특히 더 그렇습니다. 감정이나 관계, 노력 부족 같은 표현은 상황만 악화시키게 되어요. 철저히 업무에 대한 얘기로 연차가 오를 수록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차가 오를 수록 업무에서 기대하는 역할과 헌신에 대한 부분을 강조해줄 필요도 있습니다. 이들은 일이란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내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는데, 내가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데, 내가 다른 데에선 얼마나 인정받는데" 같은 감정적 인정을 갈구한다는 걸 이해하셔야 해요. 일과 성과라는 말로 스스로조차 착각하고 있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리더는 늘 어렵고 신경 쓸 게 천지이지만 이들을 방치하면 이들의 편가르기와 성향으로 인해 팀워크를 이끌어 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 쉽습니다.
리더라고 늘 성숙한 것도 아니고 이기적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당장의 필요와 알지만 신경쓰기 싫어서, 알지만 껄끄러워지긴 싫어서 회피나 방치를 합니다. 그렇지만 리더가 정말 자기 생각을 하고 싶다면 더더욱 팀워크나 매니지먼트, 조직분위기에 주목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더 큰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아온 경험 속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방치하고 회피한 리더 조직은 언젠가는 리더에게 어려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원팀이 안 되고 누군가 계속 퇴사하고, 그 대상이 저 사람들이었다가 저들을 방치하고 회피하는 리더십에 실망하며 결국은 리더에게 화살이 돌아오거든요.
논리로 합리화 하고 있지만 매우 감정적인 이 유형은 리더가 본인을 신뢰하고 믿어준다, 그에 맞는 보상을 주고 있으면 충성하듯 잘 따라옵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언제까지 유지할 지는 잘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될 것이고 돌아서는 건 한순간일 거니까요.
그동안 이런 사람들을 잘 다루며(표현이 좀 그렇지만) 팀을 잘 이끌어가던 리더들의 케이스를 관찰해 저도 따라하는 방법은 선을 잘 긋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글에서 본인의 취약점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데 이런 유형에는 좋은 방법 같진 않습니다. 타인의 취약점은 말 그대로 이들에겐 약점일 뿐이어서 좋은 관계일 때엔 내게 이런 얘기까지 하는 사이라는 으쓱함을 주고, 돌아서면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하기 쉬워서입니다.
내가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라는 걸 대놓고 자주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본인을 경계하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자기 편이 아니기에 거리를 두고 방어적이 되니까요. 선을 긋는 방법은 어느 이상은 얘기를 끊거나 일 얘기에 한정지어 대화하는 겁니다.
불행히도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고 불편함을 회피하는 성향의 리더는 이들에게 꽤 시달리게 될 겁니다. 아무리 어떤 식으로 하셔야 한다 해도 리더 본인의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요.
그럼 어쩌라는 거냐?
많은 일에서 사람들이 정말 몰라서 못하는 건 없는 거 같습니다. 알지만 내가 감내하기 싫을 뿐이죠. 네, 어쩔 수 없어요. 저도 이런 리더들의 고민 상담을 많이 받지만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드릴 뿐이에요.
그저 마지막에 한 말씀만 드립니다.
불편해서 못하시면 정말 불편하고 리더로서 불행해 질 수도 있을 거라구요. 더 이상 조직 내에서 만회할 수 없게 된다면 리셋하고 다른 회사나 조직에서 시작하시는 것도 방법이라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일을 정말 잘하고 "너는 떠들어라, 너 참 피곤하게 산다" 무시하는 게 최선인 거는 같습니다. 일을 잘하고 내 할 일을 똑부러지게 하는 게 저들이 아무리 공격을 날려도 버티는 가장 큰 힘이니까요.
마무리가 우울합니다만 언급드렸다시피 몰라서 못하시지 않을 겁니다. 쉽지 않지요. 그런데 저도 예전에는 울컥했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들도 저렇게 살려면 참 피곤하겠다"구요. 온 데에 안테나를 세우고 소문을 듣고 전하며 사람들을 경계하고 내 라인 챙기려면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 건 아니라서요. 그래서 "참 열심히 산다"하고 웃어 넘깁니다.
하지만, 이들이 조직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리더들이 그대로 방치하고 회피하는 회사라면? 빨리 그 곳을 떠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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