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 때였어요. 그 주에, 특히 그날 따라 하루 종일 팀장님이 저를 많이 호출했습니다. O과장, OO아, O과장, OO아, OOO~~]
족히 과장하지 않고도 그날만 50번은 불린 거 같아요.
신임 CEO가 부임하고 여러 업무 보고와 업무계획을 잡던 시기였고 당시 파트리더이자 팀의 선임이었죠. 늘 제 앞에서 범퍼 역할을 하던 선배가 다른 사업부로 배정되며 고스란히 제가 그 바람을 다 맞기 시작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며 당시를 떠올려 보니 팀장님도 수시로 상무님 방이며 사장님 방에 불려들어가곤 하셨네요. 그리고 팀장님이 어딘가 불려 갔다 오면 어김없이 절 호출하셨어요. 유난히 절 수시로 부르던 그날 저녁, 제가 웃으며 그만 좀 부르라 하니 옆에서 다들 터졌습니다. 옆 팀장님은 OO이 닳겠다 웃으셨고 옆 팀원들도 모두 느끼고 있었거든요.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진심이었어요. 뭘 한창 하고 있는데 계속 부르시니 그날 사무실에서만 7천보를 찍을 지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유난스러운 날이 있을 뿐 한 6~7년은 늘 이 상태로 일을 했던 거 같아요.
주로 팀장이나 직속 임원, CEO 정도였지만 스타트업에 나오니 구직자부터 전사 팀원, 전사 리더, CEO까지 전방위로 고루 저를 찾았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죠.
지난 레터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멀티태스킹 잘하기로 자신이 있었어요. 늘 그렇게 살았는데 뭐가 문제냐 했던 것도 있구요.
신입사원들 대상으로 심지어 시간관리 강의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남들보다 같은 시간에 많은 종류와 양의 일을 해치우는 편이었기에 제게 맡긴다 떠안았죠.
말은 나도 잘 못해서 이런 강의 무안하다 하면서도 자신있게 난 이렇게 한다며 떠들어댄 거 같아요. (과거를 떠올려 보면 이불킥 에피소드가 한 둘이 아닙니다)
뭐 어쨌든 당시엔 프랭클린 플래너를 목숨처럼 가지고 다니며 매일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두고 하나씩 체크해 완료하곤 했습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 외에도 주중 할 일을 사진처럼 모니터 옆에 쭉 붙이거나 책상 파티션에 붙여두곤 했어요. 하나를 완료할 때마다 하나씩 떼어내는 방식이었죠. 지금은 트렐로니 노션 대시보드니 IT Tool을 쓰지만 당시만 해도 회사에서 툴을 쓰지 않았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관리했어요.
그런데 재밌는 건(?) 빼곡히 적고 붙인 To do가 분명 계속 지워지고는 있는데도 제자리일 때가 많더라는 겁니다. 예상하셨겠지만 뭐가 자꾸 스팟업무로 들어와 새로 붙었기 때문이죠. 그럼 저는 그날 원래 하기로 했던 일들과 새로 들어온 업무들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며 해치우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관리 강의에서 제가 1원칙으로 얘기 했던 게 무조건 그날 스케쥴에 버퍼 시간을 2시간 확보하라는 거였습니다. 최소 1시간만이라도 해야 한다구요.
불행히도 무조건 여러분의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므로 버퍼가 필수라 했습니다. 누가 방해 안 해도 내가 혼자 하는 일도 내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일이 종종 있고, 뭐가 치고 들어오기도 하니 버퍼를 포함 않고 스케쥴링을 하면 일이 지연되고 쌓이는 건 불가피할 거라는 걸요. 그러니 아무도 안 건드릴 자기 시간을 확보하라 했습니다.
그 다음이 우선순위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였죠.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시간 내에 할 수 있는가, 우선순위를 참 강조했었습니다.
지금 세대는 꼰대라 할 지 모르지만 제가 택하고 추천했던 건 조금 빨리 출근하라는 거였죠. 사무실에 들어올 필요는 없고 회사 앞 카페에 있든 집 앞에 있든 혹은 자기 방에 앉아 있든 업무시간 시작 전 아침 1시간을 확보해 보라는 거였습니다.
저는 17여 년 간 거의 6시 30분이면 집에서 나왔는데요, 집에선 집중이 안 되고 업무시간부터는 제 시간을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느껴 택한 방법이었어요. 일찍 출근을 했었는데 저만큼 일찍 출근하는 임원이나 팀장이 너무 자연스럽게 저를 불러 한시간 먼저 일을 시작하는 게 되어 버린다는 걸 몇 년 지나고서야 깨달았죠. 한 번은 업무시간 전에는 나 부르지 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제조 대기업의 리더급에 계신 분들은 평생을 그렇게 일하는 분들이란 걸 제가 간과했다는.. 그러고 대기업 재직 마지막 3년 정도는 회사 앞 카페에 있다 들어가곤 했습니다.
스타트업에 나와 가장 좋았던 건 아침 시간을 여유있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보통 10시 정도에 출근을 하니 출근 시간이 8시 30분이었던 때엔 일찍 나와 봐야 한 시간 정도 확보되던 시간이 아주 넉넉해졌거든요.
다음 회사는 야근이 없는 회사였어요. 6시면 다들 칼퇴근을 했죠. 그래서 혼자 남든가 저도 일찍 들어가 집에서 저녁 몇 시간을 저 혼자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독립한 지금, 혼자 여러 고객사일을 하다 보니 사무실에 출퇴근하며 고정된 시간을 근무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졌을 뿐 업무 시간은 더 늘어났어요. 그래서 시도하고 있는 방법은 오전 시간엔 되도록 미팅을 잡지 않는 것, 수요일은 최대한 블럭해 일을 잡지 않는 거에요.
첫 스타트업은 정말 너무 제 시간이 나지 않아 가뭄에 콩 나듯 서너 시간 만이라도 미팅이 없으면 팀원에게 말하고 회사 인근 카페로 '도망'가 있곤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저 혼자 일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공통점은 어떻게든 혼자 업무에 집중할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점입니다. 어느 책에서 직장인은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몰린다 하더군요. 자기계발서나 일잘러 글에서 뭐라든 내가 내 시간을 맘대로 쓸 수 없는 게 직장인의 숙명 아닐까요?
나 혼자 원칙을 백날 잡아도 주변 동료와 상사가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원칙은 깨지는 게 일상이죠. 때문에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하면 나만의 몰입루틴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수밖에요.
제가 택한 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였고, 업무 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거였습니다. 요즘은 야근도 문제, 업무 시간 외에 저런 걸 하라고 하는 자체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이긴 해서 조심스럽긴 합니다. 제 방식이 정답도 아니구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고, 내가 일을 잘하면 내가 인정 받는 거겠죠. 내가 내 페이스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일하고 무엇이 필요한가, 회사에 충성하고 헌신하라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나만의 방식 말이에요.
저의 미미한 반항이라면 출근 전 시간은 내가 집중하기 위해 쓰려는 시간이니 그 시간엔 날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한 정도였어요. ~시부터 ~시까지는 나 집중 좀 할 테니 면담 등은 그 전후로 얘기해 달라 양해를 구한다라든가요. CEO가 논의해야 한다고 하면 그냥 퇴근 후 밤에 전화하시라 했습니다. 이게 베스트였냐 하면 모르겠지만 나름의 제 시간을 버는 방법을 참 열심히 찾아 헤매곤 했어요.
이제 와 생각하면 제가 가장 절실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집중, 몰입, 생산성, 효율성.. 다 좋은데 정말 필요한 단 하나가 뭐였을까..
바로 최소한의 연속된 시간이었더라구요.
스팟을 대비해 버퍼를 둔다지만 결국 어떤 업무를 대비해 처리할 연속된 시간이 필요했고, 출근 전후든 업무 중 단 한 시간이든 특정 시간만큼은 내가 방해 받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일할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였어요.
1시간을 온전히 내기 어려웠던 그 시절에요.
이걸 깨달은 후 여전히 맘대로 다 컨트롤 되진 않지만 일정을 잡을 때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보통은 동선과 비는 시간에 미팅을 잡지만 하루 일반적인 워킹타임 내에서 최소 3시간은 연속된 시간을 확보하도록 일정에 미리 블로킹을 해두는 식이죠.
저녁에 약속을 거의 잡지 않으면서 밤에 최소 3시간을 확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효과를 제법 톡톡히 보고 있어요.
연속된 최소한의 시간,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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