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오랜 기간을 봐왔고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했고, 충분히 알아본다 했고 충분히 저 사람을 알겠다 해도 막상 같이 일했을 때 더 돈독해지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오랜 친구나 지인이었는데 사귀면 다르더라라든가 오랜 연애로 알 만큼 알았다 해도 결혼하면 또 다르더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다 못해 같은 팀에서 일해도 어떤 일을 같이 하는 게 아닌 이상 아무리 오래 한 팀에 있었다 해도 완전히 모르는 게 흔하죠. 하물며 전혀 다른 직장에서 각자 실제 일하는 걸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사석에서, 혹은 교육이나 세미나, 스터디 등을 통해 인연을 잇다 친분으로 발전하고 오랜 기간 친해진 분들이 서로의 추천을 통해 이직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데 그 허니문이 오래 가진 못하더라구요. 다른 팀의 동료 정도라면 모를까 특히나 CEO와 구성원, 리더와 구성원, 같은 팀 등으로 만나면 이전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오래 보고 친해도 어딘가에 레퍼체크를 해주거나 연결해 줄 때엔 이 멘트를 꼭 붙여요. "어떤 성향이고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는 어떤데 일은 같이 해보지 않아 보장하긴 어렵다. 만나 볼래?"라구요.
직접 같이 일했던 사람이 아니면 그래서 어지간하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찾는데 주변에 없냐 묻고 마침 떠오르는 이가 있으면 알려만 드리는 거죠.
말 잘하고 커뮤니티에서 SNS에서 생각도 깊고 열심인 거 같지만 막상 같이 일한 사람들에겐 그다지 평판이 좋지 못한 경우는 자주 있잖아요. 굉장히 열정적인 같은데 막상 같이 일하면 열정만 넘친다거나, 인사이트 넘치고 철학이 분명한데 같이 일해보니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라든가.
한 걸음 떨어져 볼 때와 달라 당황하는 건 흔한 일이고 아예 완전히 다르면 오히려 간단해요. 오늘은 그보단 분명히 전혀 다른 게 아닌데 대체 왜 안 맞는 것인가, 지적을 할라 하면 또 딱히 방향이 다르지도 않은데 불편하고 불만인 경우로 한정해 볼께요.
스타트업에서 이런 일이 훨씬 빈번할 텐데요. 특히나 CEO와의 어긋남으로 틀어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대기업에 10년 이상 재직하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어요. 아직 제품도 본격 서비스 하기 전인 극초기 단계였죠. 모든 게 이전에 경험한 환경과 달랐지만 가장 크게 체감한 부분 중 하나는 CEO와의 거리 그리고 채용 상황이었어요.
코로나 상황 이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은 공채 제도가 일반적이에요. 규모도 크죠. 수천 명이 재직하고 많이 할 때엔 신입공채만 해도 몇 백 명 규모가 되기도 합니다. 수 만 건의 이력서가 접수되며 접수 마감일엔 서버가 다운된 적도 있을 정도. 이걸 채용담당자들이 모여 몇 날을 꼬박 읽고 서류 심사를 합니다. 기본적인 사항을 체크해 필터링 된 이력서가 현업으로 보내지고 현업에서 서류 검토 후 결과를 발표하죠. 이렇게 서류가 합격되면 실무 면접 대상이 되고 실무 면접에선 팀장이나 실장, 해당 조직의 실무 고참 등이 투입됩니다. 이걸 통과하면 해당 조직의 임원 면접. 경우에 따라서는 사업부장까지 들어오기도 하는데 CEO가 임원급이나 핵심 조직의 리더급 영입이 아니면 직접 채용과정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평소 업무 때에도 몇 단계를 거쳐 CEO 보고할 때나 만날 뿐 그나마도 실무자급에서는 CEO 독대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는 CEO가 직접 채용을 뛰고 실무에 깊게 개입합니다. 그게 구성원에겐 매력이기도 하지만 또 갈등 요인이기도 해요. 그만큼 부대끼는 밀도와 강도가 높지요.
또한 규모가 작기 때문에 CEO의 존재감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CEO의 리더십이 어떠냐와 별개로 CEO의 컬러가 곧 그 회사의 컬러라 봐도 무방합니다. 이직 시 CEO 매력도가 아주 큰 의사결정의 요인이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오랜 기간 알아서든, 친분이든, 채용 상황에서 처음 만났든 CEO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생각이 잘 맞는다 확신(?)이 들면 오퍼가 오가다 합류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영입되면 초반에는 꽤 괜찮습니다. 서로의 기대와 의욕이 폭발하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젠가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거죠. 기대만큼 현실이 따라가기엔 스타트업이란 좀 더 미숙하고 변화무쌍하니까요.
회사의 체계도, 구조도, 리더십도 능력과 역량,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전방위로 미흡한 것 투성이입니다. 예측가능성보다는 의지치, 축적된 경험에 의한 분석과 예상보다는 도전과 아이디어, 예리한 전략보다는 고객 인터뷰 등의 한정적 시장 분석 등의 환경에서 뭐하나 검증하기 어려운 시도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때문에 수시로 의사결정이 변하고, 시행착오도 빈번합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한쪽이 일방적이든 쌍방 서서히 식어가든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갈등은 본격화 됩니다.
이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왜 다른 말을 하지?".
뭐, 정말 앞뒤 다르게 처음과 다른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잘 들여다 보면 처음부터 생각을 맞춰본 건 아닐 가능성도 높습니다.
앞선 레터들의 목표-실행계획 간 갭과 동일하거든요. 좋은 회사, 성장하는 회사, 좋은조직문화, 인재밀도, 엄격한 채용, 핵심가치.. 이런 것들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걸 표현하는 스킬과 매력도가 다를 뿐 큰 방향이 다르기도 어렵죠.
그래서 얘길 나누면 거의 끄덕이게 됩니다. 같은 생각을 한다 믿게 되지요. 그러곤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내겐 어떤 역할을 기대하는지, 어떤 처우와 권한을 보장 하는지 조율해요. 이게 맞아 떨어지면 같이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이번주 주제 관련 뭐가 빠진 거 같지 않으세요?
네, How To가 빠졌어요. 이러이러하게 조직을 운영할 거다 하는 얘긴 물론 있었을 거에요. 근데 이 역시도 목표와 계획 정도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아요. 막상 같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세세한 실행단의 생각과 방법은 어긋나는 거죠.
예를 들어 좋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 기존 멤버들 중 성장이 정체되는 사람들과는 헤어짐이 불가피하다 >> 새롭게 팀빌딩을 하려 한다 >> 이러이러한 사람과 헤어진다.
이견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일하며 보니 영입된 A가 봤을 때엔 B가 병목이란 판단이 듭니다. 하지만 CEO가 B를 아낍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냉정한데 B에게만큼은 머뭇거립니다. CEO도 B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회피합니다. 그렇게 갈등이 쌓여 갑니다.
다른 예로 CEO는 소위 물갈이를 하겠다며 이제 A가 들어왔으니 과감히 내보내라 주문합니다. 하지만 A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육성을 해보고 수순을 밟겠다 합니다. 새롭게 팀빌딩 하는 것도 동의, 누구를 내보낸다도 동의, 결국 내보낸다는 결과도 동일.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실행하는 방식은 다를 때가 많아요.
이렇게 실행단의 How To에서 보통은 어긋납니다. 목표나 계획, 한 단계 구체적인 계획 수준에서는 애초에 동의하지 않으면 채용이 성립되지도 않을 거라 같이 일하기로 했다면 이건 이견이 없었단 걸 겁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의 실행계획까지 충분하게 나누며 핏을 보진 못했을 가능성이 높은 거에요.
이걸 놓치면 "아, 이 사람은 아닌 사람은 버스에서 내리게 하는 결단력이 있구나" 하고 같이 일하기로 했는데 "사람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하루 아침에 뒤바뀌어 버리게 됩니다.
업무 관리 상의 실행계획에 국한되지 않아요.
채용에서도 동일하게 실행 수준의 구체성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하다 못해 연애를 해도 마찬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도 마찬가지, 인테리어 공사를 해도 마찬가지일 만큼 '실행'의 모습을 그려보고 공유하며 맞춰보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이 중요한 걸 제대로 하려면 뭐가 선행되어야 할까요?
바로 나 먼저 저 그림을 선명히 그리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해요. 상대의 모호함을 지적하기 전에 나만 선명해도 상대와 충분히 논의할 수 있어요. 내가 선명할 수록 내 표현은 구체적이기에 상대도 그걸 듣고 미처 생각 못했을 지라도 어, 그건 나랑 생각이 다른데 할 수 있거든요.
이게 가능하려면 내가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고민도 한 단계 더 깊어져야 하구요. 실행 수준에서 행동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고민이 덜 깊은 겁니다!
여러분의 고민은 얼마나 깊은가요? 고민의 깊이를 더하는 질문은 얼마나 디테일하고 날카로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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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슬기
오늘의 레터 댓글은 일요일 오후 집에서 달게 되네요. 조금은 여유로운 그런 느낌. 레터를 읽고 나니, 오히려 How to에서 생각이 다를 때 생기는 갈등이 더 크고 위험할 수 있겠네 생각됩니다. 목표가 다르면 배경을 이야기하고 현 시점의 상황을 설명하여 설득하면 되는데(아직 시작하지 않은 경우), How to가 다르면(나름의 역량과 고집이 있을 경우 방법론에 대한 집착은 클 수 있어서) 불안하게 되고 이 불안이 결과 달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면 갈등은 계속 되지 않을까요. 계속된 대화로 서로를 맞춰가고 그 기간만큼 서로가 인내할 수 있어야 갈등이 해결되겠죠?(정 반 합의 아름다운 승화)
프로브톡
돌아보면 사회생활, 조직생활, 회사에서 어때야 한다는 큰 가치들은 대동소이 하더라구요. 어차피 생각이 달라도 입 밖으로 안 내면 모르는 거고, 이 말은 방향은 같아도 입 밖으로, 행동으로 나오면 달라질 수 있단 말이기도 하지요. 많은 경우에 생각보단 언행으로 부대끼니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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