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상황 모면과 회피의 상징처럼 언급되는 타조 증후군.
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합니다.
고개를 땅에 박는 게 아니라 태양을 피해 체열을 낮추기 위해, 포식자의 동선을 지면을 통해 감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실제와는 다른 얘기이지만 타조 증후군이라는 말은 이미 널리 쓰이고 있으니 이번주 레터에서는 타조 증후군에 맞추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큰 범위에서 회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회피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뇌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 하게 되는데 어떤 문제에 처했을 때 하던 대로 하는 게 가장 편안하니까요.
저는 생각하면 바로 한다, 실행력이 좋다는 얘길 많이 듣습니다. 누군가가 바로 실행하지 않거나 머뭇대면 답답해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저 역시도 일상에서 수시로 타조가 됩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어릴 때엔 어지간한 걸 다 회피하며 살았던 거 같아요. 시험기간에 미리미리 공부를 안 해놓곤 시험 기간이 되면 밀려 있는 시험범위를 보며 그렇게나 계획을 세웠습니다. (계획만 세웠다가 더 정확한 거 같네요). 시간이 줄어들 수록 점점 더 빡빡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우죠. 그렇게 계획을 세우다 공부시간만 줄고 결과는 별로일 수밖에요. 중학교 시절 짝사랑 하던 동창이 있었어요. 티가 많이 났는데 상대가 모를 거라 하고 고백하라 해도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 혼자 끙끙댔습니다. 대학 때 아는 분의 번역일을 도왔는데요. 금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일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오히려 제가 조금이라도 해주면 고마워 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기한이 다가와도 다 하지 못한 저는 연락을 피했어요. 간신히 마무리를 지어 늦게 드렸는데 상대방이 제게 번역비를 주려고 연락하는 걸 피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바보 같은 짓이었는데요. 호의였고 단 몇 장이라도 해주면 고마운 상황이었거든요. 꼭 언제까지 무조건 되어야 한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쯤이면 완료할 수 있을 거 같다 말했던 제 말을 못지킨 걸 그렇게 부담스러워했던 거였습니다. 당연한 사례를 받아야 했던 일이고 중간에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린다, 쉽지 않다고 양해만 구했다면 전혀 문제 없을 일이었음에도 피하고 모면하기 바빴어요.
이후에도 다양하게 저는 타조가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나오면 모르는 걸 들키기 싫어 아는 척을 한다든가, 아는 척 할 만큼도 모르면 그냥 끄덕이거나 같이 눈치 보며 웃기도 했어요. 누가 질문하면 둘러 말했는데 뭐, 말도 안 되는 얘기였겠죠. 문제는 저는 넘어갔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남들도 다 알았을 거고 뒤에서 수근댔을 겁니다. "쟤 모르면서 아는 척 하네".
뻔한 갈등, 문제 상황에서 등장하는 타조는 알면서도 그 상황을 외면하고 모면하려 듭니다. 그러다 보면 모르든 들키든 딴소리를 횡설수설 늘어놓게 됩니다. 실체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대체 무슨 말이냐 되묻곤 하죠. 그럼 또 설명을 하는데 이 역시 명쾌할 리 없습니다. 뭔가 지적받으면 인정하질 않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또 변명이나 타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늘어놓거나 대화를 단절시켜 버려요. "아 몰라", "어,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건 니 생각이고", "다 잘 되고 있어", "문제 없어"란 말을 자주 쓰는데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고 문제가 있어 얘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죠.
그래서 타조증후군이 심한 사람은 조직에서 어느 순간부터 소외됩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이 오지 않으니 잘 넘어갔다고 안도할 지 모르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사람들이 이 사람과 대화해 봐야 소용이 없어 애초에 말하길 포기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하지 않는 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수요일과 금요일 레터에서는 내 옆의 타조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그럼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요.
여러분은 오늘 이야기에서 내 안의 타조를 발견하셨나요? 혹은 내 옆의 타조가 떠오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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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게
근데 정말 웃기는 건. 윗 사람이 저러면 꼴 보기 싫은데, 내 팀원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오죽하면 저러겠나 싶고, 도와주고 싶어지더라고요.. ㅎㅎ
프로브톡
아...... 저는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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