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젖소에게 유급병가를 준 브랜드가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말,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막상 닥치면 쉽지 않죠. 눈 앞에 쌓인 일들을 보면서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고 버틸 때가 더 많잖아요. 사람도 이런데, 젖소에게 병가라니... 🙂
이 발칙한 상상을 진짜로 실행한 브랜드가 있습니다. 케냐 프리미엄 유제품 브랜드 Too Good(이하 투굿)입니다.
🐄 생계 앞에서 흔들리는 원칙

케냐는 아프리카에서 1인당 우유 소비량이 가장 높은 나라로 우유 80%가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소규모 농가에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소규모 농가들에게 소가 아프다는 건, 단순한 걱정을 넘어 당장의 생계가 흔들리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특히, 항생제 치료를 받은 젖소는 약 성분이 체내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3-5일이 걸리는데요. 이 기간 동안은 우유를 팔 수 없어, 농가의 수입은 그대로 끊깁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농가 입장에서 해당 규정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실제로 일부 농가에서는 재정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휴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소의 원유를 몰래 유통하는데요, 이렇게 유통된 오염된 우유가 4개 중 1개꼴로 검출된다고 합니다.
유제품 브랜드 투굿에게 농가들의 이러한 규정 위반은 매우 큰 리스크였습니다. 품질 좋은 제품 생산을 위해 오염된 원유를 걸러내는데 드는 손실이 상당했거든요. 그래서 원천적으로 오염된 원유 유통을 막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 소를 ‘노동자’로 바라보니, 해결책이 보이다.
젖소의 휴약 기간은 농가의 자발적 신고로 지켜지고 있는데요. 따라서 투굿은 규정을 지키지 않는 농가를 탓하기 보다, 책임 있는 행동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약 기간에도 어느 정도 소득이 안정되면 농가들의 자발적 참여가 높아질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그렇게 농가 소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로 병가(病暇)를 떠올렸습니다. 투굿 입장에서 품질 좋은 원유를 생산하는 젖소가 가장 중요한 노동자(?) 잖아요. 일하는 사람에게 병가가 있듯, 일하다 아픈 젖소에게도 충분히 회복할 시간과 소득을 보존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휴약 기간을 자진신고 한 농가의 손실을 보존하는 ‘Paid Sick Leave for Cows(소를 위한 유급병가)’ 캠페인이 시작되었습니다.

운영 방식은 단순하고 명료했어요. 캠페인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소를 등록해두고, 등록된 소가 항생제 치료를 하게 되면 왓츠앱을 통해 수의사 진단서를 제출합니다. 이후 서류 검토 과정을 거쳐 승인이 되면, 농가는 휴약 기간 동안 팔지 못한 우유만큼의 손실을 보상금으로 지급받습니다.
변화는 빠르고 확실하게 나타났어요. 캠페인 시행 8개월만에 공장 입고 단계에서 발견되는 우유 폐기율은 0%에 가깝게 떨어졌고요. 참여 농가들에게는 27,000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되었습니다. 또한, 투굿은 ‘항생제 잔여물 0% 우유’를 전면에 내세우며 Chandarana Foodplus, Zucchini Food Market, Greenspoon 등 주요 유통망을 확충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된 소득을 보장받은 농가들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오염된 우유를 유통할 이유가 없어졌고, 기업 입장에서는 오염된 원유 관리에 사용되었던 리스크 비용을 캠페인 보상금으로 전환해 품질좋은 원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 좋은 규제, 인센티브로 만들어 볼까?
Paid Sick Leave for Cows(소를 위한 유급병가) 캠페인이 흥미로웠던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었어요.
흔히 규제를 지키지 않는 이유를 개인의 인식이나 의지의 문제라 보잖아요. 그래서 교육 캠페인을 주기적으로 추진하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죠. 그런데 투굿은 처벌 대신 인센티브를 도입해 농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안전한 유제품 환경 조성을 위해 기업과 농가가 상호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어요. 또한, 소를 ‘노동자’로, 휴약 기간은 ‘병가’라는 감성적 어프로치를 통해 아픈 젖소에게도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 공감하도록 했습니다.
이렇듯 규정을 준수하게 하는 방법이 늘 처벌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투굿은 벌 대신 손해를 없애주는 쪽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그게 더 잘 통했습니다. 어쩌면 잘 지켜지지 않는 규칙 앞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건 ‘규정 준수를 안 하면 어떻게 조치할까’가 아니라, ‘지킬 수 없는 어려운 부분은 무엇일까’ 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의 한 줄 평
: 농가에게 규정은 지켜야 할 의무였고, 병가는 지키고 싶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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