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퍼블릭의 PPP(PUBLIC-PARTICIPATORY-PROGRAM)는 실험적인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매개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프로젝트팀 ‘타.원’이 기획한 예술작업과 함께 합니다. 이 작업들은 땅을 둘러싼 성남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여기’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영역, 가상-현실 세계에 관한 감각을 재맥락화 해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PP PICK에서는 프로그램에 앞서 전시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2023년 5월 22일-6월 8일,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전시장 외 1곳)의 작품들에 관한 아티클을 총 다섯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타.원 <반투명 비행>
-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GranGran>
-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리히 <리히카세>
-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X지평선 <어스름한 곳, 어스름한 때, 피어나는 이야기>
작가 리희(이희정 LeeheeJung)에 의해 2021년 시작된 <리히카세 Leeheekase>는 엄마가 경험한 ‘이주의 맛’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에서 한국, 다시 미국으로 자발적/비자발적 이주를 겪은 엄마의 음식은 뭔가 특별했다. 코코넛 워터를 넣은 볶음밥이나 오렌지 주스로 고기를 연육 시킨 미역국의 맛은 작가에게 그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매질이다. 그리하여 성남의 원도심, 신흥동 이주민이자 이방인으로서 작가가 지역을 마주하는 방법은 ‘맛’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었다.
작가가 식재료 탐구와 방법론을 각각 날실과 씨실로 삼아 작업을 본격적으로 직조하기 시작한 것은 2022년 진행된 ‘페스토 에디션’부터다. 이 주민참여 워크숍에서는 바질 대신에 깻잎을 재료로 하여 페스토를 만들었다. 향과 맛이 강한 깻잎은 유독 한국에서만 자주 소비되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고기와 곁들이는 쌈이나 장아찌의 주재료로써,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작가는 이 식물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길들이며 문화를 함께 만드는 상생적 관계에 주목한다. 한편 재료를 찧고 으깨며 만드는 페스토 제작방식은 꽤나 원시적인 속성을 가진다. 유년시절 소꿉놀이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가는 참여자 간의 근원적인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고자 했다.
2023년 ‘신흥 식용식물을 찾아서’로 작가의 작업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식용식물’은 여전히 <리히카세>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음식을 만드는 식재료(맛)이자 지역 골목에서 자생하는 식물(장소성)이라는 교차점에서 식용식물은 의미를 발생한다. 신흥 1~3동 골목의 후미진 담벼락이나 전봇대 아래에는 야생 고춧잎, 깻잎, 까마중, 호박, 쑥, 민들레, 로즈마리 등이 있다. 이들은 맛을 구현하고 골목을 나름의 방식으로 점유하는 주체이다. 아름드리 보호수와 같이 유일무의한 존재감도 없고 식사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는 역할도 없지만, 가녀린 몸으로 굳건히 거리에 버티고 있는 이들을 작가는 바라본다. 그리고 사진으로 기록하고 GPS로 매핑한다. 미미한 것들이 작가에 의해 그 존재가 확인되는 순간은 이것들을 만나며 ‘지금-여기’의 작가가 확인되는 순간과 맞닿는다.
이러한 리추얼은 한 가지 방식으로 더 진행되는데, 바로 '네이버 스마트렌즈'로 식물명을 찾는 과정이다. 작가는 골목의 식용식물을 꾸준히 채집하여 보존액에 담가 보관하는 한편, 식물명을 정리하여 아카이빙한다. 그러나 AI가 검색을 포기하거나 옥잠화를 블루베리라고 알려준 에피소드처럼, AI라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려 그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빈번히 미끄러진다. 이처럼 작가의 시도는 기록되지 않은 것의 기록을 찾으려는 노력에 가깝다. 그리운 엄마의 손맛 레시피가 엉뚱한 것처럼, 이주로 시작된 근본없는 개인의 역사는 쉬이 휘발된다. 그래서 신흥동 골목에서 식용식물을 찾으려는 이 여정은 결국 무위에 그치게 될지 모른다. 이 마이너한 존재들은 눈앞에 있지만 마치 신기루와 같이 그 실체를 증명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작업은 이 지점에서 ‘실재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로 이행된다.
애초에 본 작업은 이방인으로서 작가가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는 시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 태도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선 작업에서 골목의 식용식물을 데려와 소재로 삼으며 주민과의 소통에 집중했던 반면,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일련의 작업에서는 식용식물이 머무는 골목에서 인간 대신에 식물이라는 비인간 존재와 관계맺음을 시도한다. 인간에서 환경으로, 인간-비인간의 조우로 그 시야가 확장되는 과정은 <리히카세>의 여정이 앞으로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
※ 본 아티클은 <고도를 기대하며 (looking forward to [ɡɔ.do])>(기획: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전시정보는 인스타그램 @publicartstudio_sn, 네오룩 전시아카이브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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