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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 참여작품(3)

2023.06.22 | 조회 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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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퍼블릭 퍼블릭의 PPP(PUBLIC-PARTICIPATORY-PROGRAM)는 실험적인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매개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프로젝트팀 ‘타.원’이 기획한 예술작업과 함께 합니다. 이 작업들은 땅을 둘러싼 성남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여기’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영역, 가상-현실 세계에 관한 감각을 재맥락화 해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PP PICK에서는 프로그램에 앞서 전시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6월 8일까지,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전시장 외 1곳)의 작품들에 관한 아티클을 총 다섯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1.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타.원 <반투명 비행>
  2.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GranGran>
  3.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4.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리히 <리히카세> 
  5.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X지평선 <어스름한 곳, 어스름한 때, 피어나는 이야기>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2022-2023 (디자인: 소장각)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2022-2023 (디자인: 소장각)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행위는 낭만적이고 기분 좋은 작업일 테지만 도시 거리를 맨발로 걷기는 어떨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바닥이라는 차가운 혹은 뜨거운 거친 표면을 맨발로 걷는 상상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거리에 맨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이질감과 이물감으로 낯설게 느껴질 테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이미 성남 신흥동의 골목을 걷고 있으리라.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영상 스틸컷, 2022-2023 ⓒ타.원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영상 스틸컷, 2022-2023 ⓒ타.원

김양현 작가는 맨발로 내딛는 행위를 통해 땅과 함께 자신을 감각한다. 그녀의 발은 단숨에 새까맣게 변하지만 처음 땅과 마주했을 때의 울컥한 마음은 이내 상쾌함으로 변한다. 그녀는 땅을 딛는 과정을 수행함으로써 내면에 솟구치는 불안함과 우울함,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던 자신을 성찰하며, 그러한 감정들과 마주할 용기를 낸다. 붕 떠다니는 것만 같던 작가의 삶은 요가 6년 차로서 땅을 딛는 감각을 통해 버틴다. 이것이 바로 그라운딩(Grounding)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신체로 땅을 딛고 걷기를 반복하는 수행의 과정은 작가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단지 하루에 만 보 걷기와 같이 걸음 수를 숫자로 치환하는 것보다 온전히 자신의 신체에 집중해서 지금 여기서, 땅을 딛고, 발끝에서부터 단전, 그리고 머리의 숨구멍을 열어 숨을 쉬는 것이다.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영상 스틸컷, 2022-2023 ⓒ타.원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영상 스틸컷, 2022-2023 ⓒ타.원

걷기를 수행하는 김양현 작가는 자신의 시선을 발로 옮겨간다.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만 좇는 게 아닌 타자의 발걸음과 마주한다. 발의 시선에서 사람들은 마치 어딘가에 떠있는 듯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공기층 위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한달음에 나아가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면 그녀는 오히려 발걸음을 더욱 늦추고 숨을 더욱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더욱이 땅을 딛는 과정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뿐 아니라 타자를 감각하는 즉, 이 땅을 매개로 자신과 동시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도전적인 수행이다.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복합매체, 가변설치, 2022-2023 ⓒ타.원 (사진: 정정호)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복합매체, 가변설치, 2022-2023 ⓒ타.원 (사진: 정정호)

이번 전시에서 김양현 작가는 신흥동의 땅을 매개로 걷기와 명상을 수행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신흥동은 산을 평평하게 깎아낸 곳이기보다 좁고 굴곡진 형태로 삶의 고행과 닮아있다. 작가는 신흥동의 땅을 딛고 오르내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치유뿐 아니라 이 땅의 존재와 에너지를 감각한다. 그녀의 수행적인 행위는 이 지역의 파동을 담아내면서 그라운딩의 감각을 타자와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번 전시장에는 작가의 발걸음과 속도를 따라 걸어보고 호흡해 볼 수 있다. 이 땅을 매개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을 함께 수행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다시 걸음을 내딛는 에너지를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발걸음이지만 어느 순간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열기로, 이 땅을 함께 데워보자.

땅을 딛는 과정은 자신의 신체와 마음 뿐 아니라 타자를 감각하는 즉, 이 땅을 매개로 자신과 동시에 타자를 받아들이는 도전적인 수행이다.


※ 본 아티클은 <고도를 기대하며 (looking forward to [ɡɔ.do])>(기획: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전시정보는 인스타그램 @publicartstudio_sn네오룩 전시아카이브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희진 / 연구자, 솔방울커먼즈 feelingshj@snu.ac.kr

서울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솔방울커먼즈’의 일원으로서 활동 중이다. 종로구 송현동(2019-2020)과 경남 창원의 수정마을(2021)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도시 개발과 공동체 갈등을 다루며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것(commons)을 추구하고 제안하는 활동과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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