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퍼블릭의 PPP(PUBLIC-PARTICIPATORY-PROGRAM)는 실험적인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매개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프로젝트팀 ‘타.원’이 기획한 예술작업과 함께 합니다. 이 작업들은 땅을 둘러싼 성남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여기’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영역, 가상-현실 세계에 관한 감각을 재맥락화 해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PP PICK에서는 프로그램에 앞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6월 8일까지,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전시장 외 1곳)의 작품들에 관한 아티클을 총 다섯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타.원 <반투명 비행>
-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GranGran>
-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리히 <리히카세>
-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X지평선 <어스름한 곳, 어스름한 때, 피어나는 이야기>
남소연 작가는 성남 신흥동의 언덕배기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앉아 모여 있는 할머니들을 조우했다. 해질녘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할머니들은 좁고 가파른 골목 언덕에 앉아 계셨다. 가파른 경사 탓에 잠시 쉬어가다 삼삼오오 모이게 되었으리라. 건물과 도로가 만나는 면에 단차로 생긴 턱이나 계단 등에 앉아있던 할머니들은 금세 대화의 장을 펼쳤다. 작가는 도시 공간을 사용하는 할머니들의 방식을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으며, 도시 공간 구조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특히 그녀는 도로와 건축물 사이에 있는 공간을 유심히 살피며 할머니들의 소통 공간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모색한다.
남소연 작가는 ‘할머니들을 (도시의) 개발자이자 사용자’로 상정하고 ‘유즈맵(Use Map)’을 통해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유즈맵은 게임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게임 틀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주어진 환경이나 도구의 기능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를 유즈맵과 같이 구성한다는 것은 사용자 입장에서 도시 공간 구조를 재편하는 발칙한 상상이자 실천이다. 이는 기존의 도시 체계의 규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관점에서 공간 활용의 방식과 규율을 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유즈맵 워크샵>은 신흥동의 지리적 특성과 할머니의 신체 조건을 고려해 소통 구조를 생산하는 과정을 담는다.
남소연 작가의 <GranGran Inventory>에는 할머니 개발자이자 사용자를 위한 아이템으로 그득하다. 작가는 이 세상에 쓸모없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와 닿는 도구를 창작하는 데 몰두한다. 마찬가지로 <GranGran Inventory>에 있는 오브제는 유즈맵을 활용하는 할머니들에게 와 닿는 아이템이자 자산임에 틀림없다. <GranGran Inventory>에 담긴 자산은 <유즈맵 워크샵>에서 계단의 높이와 같이 형태와 기능을 마음껏 재구조화할 수 있으며, 바닥에 붙어 있거나 평면적인 모양의 형태라기보다 위, 아래, 옆면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형태를 취한다. 또한 이 자산은 누군가의 손때가 담긴 흔적을 쉽게 지워버리거나 납작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새로 짜인 선반에 자기만의 멋으로 움직이기를 반복한다.
이번 <GranGran> 프로젝트의 유즈맵과 3D오브제는 가상-현실 체계의 연결을 통해 할머니 사용자에 의해 짜인 도시 공간의 형식을 보여준다. 할머니 개발자가 언덕배기에서 한 폭의 도로를 점유해낸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조화하듯이, 남소연의 작업은 특정 공간의 구획과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공적-사적 영역을 교란시키는 방식이다. 더욱이 그녀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면서 (탈)영역화된 도시 공간을 상상한다. 특정 민원인이 기존 규율에 의해 공간을 이용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이 필요한 공간과 장치를 적극 배치하고 새롭게 수정과 보완을 거듭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한다. 그녀의 시선 덕분에 우리는 일상의 터전을 기반에 두고 도시 공간 구조를 자신만의 문법으로 짜임새를 갖춰보는 방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본 아티클은 <고도를 기대하며 (looking forward to [ɡɔ.do])>(기획: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전시정보는 인스타그램 @publicartstudio_sn, 네오룩 전시아카이브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희진 / 연구자, 솔방울커먼즈 feelingshj@snu.ac.kr
서울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솔방울커먼즈’의 일원으로서 활동 중이다. 종로구 송현동(2019-2020)과 경남 창원의 수정마을(2021)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도시 개발과 공동체 갈등을 다루며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것(commons)을 추구하고 제안하는 활동과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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