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퍼블릭의 PPP(PUBLIC-PARTICIPATORY-PROGRAM)는 실험적인 관객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과 관객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매개하고자 합니다. 2023년에는 프로젝트팀 ‘타.원’이 기획한 예술작업과 함께 합니다. 이 작업들은 땅을 둘러싼 성남 원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여기’의 삶 안에서 벌어지는 사적-공적 영역, 가상-현실 세계에 관한 감각을 재맥락화 해보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PP PICK에서는 프로그램에 앞서 전시 <고도를 기대하며(looking forward to [ɡɔ.do])>(2023년 5월 22일-6월 8일, 성남공공예술창작소 전시장 외 1곳)의 작품들에 관한 아티클을 총 다섯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 비행기 소리의 소리의 소리 - 타.원 <반투명 비행>
- 덧붙이고 다시 쓰는 룰 - 남소연 <GranGran>
- 이곳에 발을 딛는 그녀와 함께 걷기를 - 김양현 <에너지(진동)으로 보는 신흥동>
- 미미한 것들의 이름을 찾는 여정 - 리히 <리히카세>
- 신흥동과 피어나는 존재들 - 박진아X지평선 <어스름한 곳, 어스름한 때, 피어나는 이야기>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성남 신흥동의 특정한 구역 한편에 출몰한 그곳의 모습을 닮은 생명체, (그녀들의 언어로) 토템이라는 존재들을 발굴한다. 성남 신흥동은 50여 년 전 서울에서 강제로 이주당한 철거민들이 정착해 낳은 지역으로, 오늘날의 도시환경정비사업, 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이다.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멀끔하게 정비돼 ‘부흥’하기를 열망하는 신흥동이라는 지역을 구석구석 누비며 우악스럽고 곰삭힌 이질적인 존재들에 애정을 쏟는다. 이 존재들은 그녀들이 발굴한 하나의 생명체로 사실상 신흥동과의 관계 맺는 방식을 이야기해준다.
현대식 시설로 탈바꿈을 꾀하는 성호시장은 슬레이트 지붕에 천막과 노끈, 전깃줄로 덧대어 있고, 기름때가 묻은 수저와 냉장고 등의 치열한 삶의 흔적들로 각인돼 있다.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돼지부속 냄새와 지린내로 진동하는 거리에서 보물이라도 발견하듯 재료를 찾아 나선다. 내가 만난 그녀들은 국밥집 앞에서 양파 망을 획득해 서로 힘을 겨루어내듯 양파 망을 찢고, 어슬렁대는 행위 탓에 일부 상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욱이 그녀들은 전기가 나간 빈 점포에 진입해 자신들의 작업 공간으로 상상하며 겁 없이 점유한다. 임시시장으로 옮겨간 상인들의 자리에는 땅거미가 기어오르듯 '곰삭물'이 신성하게 내려앉는다. 시장 내 온갖 재료와 얽혀 살아가는 '곰삭물'은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상인들의 염원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와 함께 성호시장의 또 다른 이야기를 닮은 '늘팽이'는 눅눅하고 갈라진 바닥 틈사이로 출몰한다. '늘팽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 촉수를 늘어뜨린 채 성호시장에 새겨진 시간만큼 느린 속도로 움직인다. 그녀들이 '늘팽이'를 발견한 곳에 “촉촉하게 물렁하게 오랫동안 느린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늘팽이'의 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박진아, 지평선 작가는 이런 기이하고 진귀한 존재들을 토템이라 여기며 쫓아다닌다. 그녀들은 성호시장의 '곰삭물'과 '늘팽이'라는 생명체 뿐 아니라 각기 다른 구역을 반영하는 네 개의 존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녀들을 더욱 북돋은 건 '싸제비'와의 마주침이었다. 짙은 붉은색으로 물든 이 토템은 유흥 주점과 점집이 즐비했던 골목에 깃든 영성적 존재로서 '싸제비'는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연소하듯 이곳의 생태계 역시 사라졌다. 그녀들이 처음 마주한 점집 골목은 상가 세입자들이 죽을힘을 다해 외친 개발에 대항한 토악질이었다. 빨간 글자로 적힌 적나라한 언어는 살던 장소에서 이탈 당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제는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높은 펜스와 천막 위에 ‘출입금지’ 현수막이 나불거리는 골목에 몇몇 사람들만 걷고 있을 뿐이다. 점집 골목을 지나서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사람들은 파편만 남겨진 '싸제비'를 흘겨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친다. 그 밖에도 상가 구역의 얼룩덜룩한 아스팔트 바닥에는 온갖 욕망에 빗대어 사는 '미련껌탱이'와 현란한 네온사인을 뿜어내는 '삼폭둑이'라든가, 빼곡하게 들어선 다세대 주택 골목에서 덩굴처럼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신흥련초'와 같이, 신흥동만의 독특한 시간과 장소의 특징을 다층적인 구성물이자 실체로서 현현한다. 그녀들은 신흥동 지역에서 조우한 사람들, 각종 냄새와 소리, 그리고 거리의 촉감 등이 들러붙어 신성하리만치 진귀한 존재들과의 생태계를 구상한다.
※ 본 아티클은 <고도를 기대하며 (looking forward to [ɡɔ.do])>(기획: 타.원(남소연, 이원호), 후원: 성남문화재단 공공예술창작소)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 전시정보는 인스타그램 @publicartstudio_sn, 네오룩 전시아카이브 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희진 / 연구자, 솔방울커먼즈 feelingshj@snu.ac.kr
서울대학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솔방울커먼즈’의 일원으로서 활동 중이다. 종로구 송현동(2019-2020)과 경남 창원의 수정마을(2021)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도시 개발과 공동체 갈등을 다루며 다양한 연대를 통해 공동의 것(commons)을 추구하고 제안하는 활동과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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