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022.03.10 | 조회 1.1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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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탕 폭격수

1948년 7월, 독일 서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미 공군 수송대 파일럿 게일 할보르센(Gail S. Halvorsen, 당시 27세) 중위가 철조망 너머 20여 명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군 기지여서 그랬던지 다소 겁먹고 주눅 든 표정의 아이들에게, 할보르센은 호주머니에서 껌 두 개를 꺼내 네 조각으로 나눠 건넸다. 행운을 얻지 못한 아이들도 빈 껍데기를 돌려가며 냄새 맡으며 입맛을 다셨다고 한다. 오히려 미안해진 그는 불쑥 '내일 다시 오면 비행기로 과자를 잔뜩 뿌려주겠다'고 약속해버렸다. 아이들은 '아저씨 비행기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느냐'고 반문했고, 할보르센은 '과자를 뿌리기 전에 비행기 날개를 흔들겠다(wiggle the wings)'고 말했다.

기지로 복귀한 할보르센은 껌과 사탕, 초콜릿 바 등을 잔뜩 모은 뒤 손수건으로 만든 낙하산에 매달아 다음날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날개 흔드는 아저씨(Uncle Wiggly Wings)'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점차 늘어났다. 그의 비밀 사탕 투하 작전을 알게 된 미 공군당국은 뒤늦게 '리틀 비틀스 작전(Operation Little Vittles)'이란 명칭의 공식 작전으로 승인, 이듬해 9월까지 14개월간 소련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던 서베를린의 아이들에게 23톤의 과자를 비행기로 뿌렸다. 폭탄이 아닌 사탕을 퍼붓는 미군 수송기는 서베를린 시민들, 특히 아이들에겐 희망과 믿음의 작은 상징이 됐다. 패전국 시민인 자신들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희망. 고통으로 응징 당해야 할 나치 지지자가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 바라봐주는 이들이 있다는 믿음.

"상대방이 공포와 절망으로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감사와 희망과 나를 뛰어넘는 헌신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베를린 공수작전을 통해 배웠다."

원문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최선 옮김, 민음사, 1997

 

# 책 <빼앗긴 자들> 어슐러 르 귄

“진화의 법칙은 적자생존이에요!” “그래요, 그리고 사회적인 종 안에서 적자란 가장 사회적인 자들인 거예요. 사람의 말로 표현하면 가장 윤리적인 자들이죠.

그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끝은 없었다. 과정이 있을 뿐, 과정만이 있을 뿐. 약속된 방향으로 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는 있어도, 중간 어디에선가 멈추리라는 생각으로 길을 떠나지는 않았다. (…) 결국 그들이 뒤쫓은 것은 기쁨이었다. 존재의 완성이었다.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기쁨의 기회 또한 외면하는 것이다.

“우라스가 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압니다. 인간의 부정함, 탐욕, 어리석음, 낭비로. 하지만 또한 선과 아름다움, 생명력, 업적으로도 가득하지요. 세계란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나요! 우라스는 살아 있어요, 기막히게 생생한 모습으로, 그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희망으로 살아 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처벌을 받을 만한 사람도 보상받을 만한 사람도 없다.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그래도 싸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때, 생각을 할 수 있기 시작하리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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