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물은 H2O인가?> 장하석
- 나의 목표는, 아무리 단순하고 당연시되는 과학 지식이라 하더라도 그 지식의 형성에 수반되게 마련인 어려움들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우리는 과학의 성취들에 대한 참된 인정에도 도달할 수 없고 과학의 주장들에 대한 적절한 비판적 태도에도 도달할 수 없다.
- 당신이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게 될 가능성을 열어놓아라.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지만, 당신이 눈을 뜨고 있다면, 결국 역사가 당신을 사로잡을 것이다. (…) 나의 글을 쓰도록 나를 강제한 매혹을 당신도 그 글을 통하여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의 것이다.
- 과학의 삶의 많은 부분은 합의의 순간들이 아니라 더 지저분한 단계들로 채워져 있다. (…) 찬란한 통일과 합의의 순간은, 기초적인 수준의 통찰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구체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그리 유용하지 않은 깨달음의 순간epiphany moment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 순간은 과도한 단순화와 과도한 확신의 순간이며, 그 다음에 과학자들은 대개 더 현실적이고 노련한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 다시 난점들, 예외들, 문제들, 흠집들, 숨어 있는 개념적 불합리들, 역설들, 실패한 예측들, 수수께끼 같은 새로운 현상들을 다룬다. 분자유전학이 성숙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왓슨과 크릭의 ‘중심 교리central dogma’를, 곧 정보가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로 흘러간다는 과도하게 단순화된 생각을 벗어난 덕분이었다. 기본입자 물리학은 전자, 중성자, 양성자만 다루면 되는 즐거운 상태에 안주할 수 없었다. 만약에 코페르니쿠스적 천문학이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등속원운동에 대한 황홀한 애착에 머물렀다면, 그 천문학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 이상화는 끝내 완전히 세밀하게 실현되지 않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 수 있다. 순수한 맑스주의 경제는 결코 존재한 적 없으며 완전한 자유시장 자본주의 경제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이상화들은 경제 정책 및 실천을 위한 막강한 이상과 틀로서 구실해왔다.
- 자연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가로막는 손은 우리가 경계를 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자연의 안내는, 우리가 그 안내를 아주 쉽게 간과하거나 오해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지막하다. 때때로 우리는 자연선택의 처분에 맡겨지겠지만, 꽤 많은 경우에 우리는 터무니없는 것들을—그것들을 치명적인 방식으로 실천하지 않는 한에서—계속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덜 부드러운 힘들에 의해 제거되지 않는 한에서 늘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다. 언젠가 행운이나 천재가 찬란하게 개입하여 우리가 선호하는 실천 시스템의 운명을 바꿔놓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이다. 삶에서도 그렇지만,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성공을 증가시키리라고 스스로 진지하게 믿는 바를 실천하면서 최선의 결과를 바랄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전망이 암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그러나 보장의 포기는 우리가 보장 없이 성취해온 바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 대목에서 ‘불가피한’을 뜻하는 영어 ‘inevitable’에 들어 있는 ‘able’(할 수 있음)을 잠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접미사는 다른 무엇에 못지않게 우리 자신의 능력이 관건임을 넌지시 일깨운다. 불가피성은 피할 수 없음을 뜻하며, 무언가를 피할 수 없는지 여부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피하는 시도를 해본 연후에야 말할 수 있다.
-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같은 논점을 더 시적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는 우리의 가장 과격한 상상을 능가할 정도로 풍요롭다. 나무들, 꿈들, 일출들이 있다. 뇌우들, 그림자들, 강들이 있다. 전쟁들, 벼룩에게 물림들, 연애들이 있다. 사람들의 삶들, 신들, 온 은하들이 있다. (…) 어떤 현상에도, 아무리 제한된 현상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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