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끝을 알리는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시끌벅적했던 하루가 저무는 해 질 녘이면 낮과 밤이 뒤엉켜 요란한 불꽃놀이가 한판 벌어진다. 뜨겁게 달아오른 해를 달고 온 낮과 세상을 적막으로 뒤덮을 냉기 서린 어둠을 끌고 온 밤이 맞닿는 짧은 순간, 대기는 온통 오렌지빛과 분홍빛으로 물든다. 낮과 밤이 교차해 밤이 깊어지면 하늘은 이내 옅은 보랏빛에서 검푸른 빛으로 색을 갈아입는다. 밤이 인제 그만 가서 쉬라며 낮을 완전히 밀어내면 세상은 그제야 침묵으로 가득한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파티는 끝났다
밤이 내려앉을 무렵의 하늘은 화려하지만 왠지 처연하다. 밤이 자신의 도착을 알리며 하늘에 흩뿌린 너울거리는 아름다운 빛은 오늘이라는 파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다. 축제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져 나오는 오색찬란한 불꽃이 축제의 끝을 알리듯 하늘을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 역시 하루의 끝을 예고한다. 끝나가는 오늘이 서글픈 것은 별 볼 일 없이 흘러간 오늘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고 한없이 충만하고 벅찼던 오늘 같은 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안타까움 때문일 수도 있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17세에 프랑스로 건너간 펠릭스 발로통은 고갱의 영향을 받은 젊은 예술가 그룹인 나비파(Les Nabis,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뜻)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희곡과 소설을 발표하는 등 예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2,000여 점에 가까운 그림과 수백 점의 판화, 1,000여 점에 달하는 삽화를 선보이며 미술계에서는 제법 유명세를 얻었지만 대중에게는 그리 널리 각인되지 못한 화가였던 발로통에게도 불꽃처럼 타오를 뻔한 순간이 있었다.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을 그리기 전이었던 1907년, 그에게도 피카소나 마티스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릴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거장을 알아본 거장’이라고 불리는 미술 수집가였다.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도 불리는 자신의 살롱에서 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후원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발로통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기품이 없다고 혹평했다. 당시, 미술계 역시 발로통이 그린 스타인의 초상화를 보고 무감각하게 기교를 뽐낸 그림에 불과하다는 신랄한 비판을 내놓았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이후 전쟁을 겪으며 발로통은 사실적인 화풍을 버리고 단순하고 장식적인 화풍을 받아들인다. 화려한 색감으로 지는 해를 그리며 발로통은 무엇을 아쉬워하고 무엇을 안타까워했을까? 화려할 뻔했던 오늘이 사그라들고 있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또 다른 하루가 펼쳐진 내일을 기대했을까?
우리는 매일 오늘이라는 파티를 맞이하고,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이 모여 인생이 된다. 파티를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오늘의 파티가 끝나면 내일의 파티가 시작된다. 오늘의 파티가 벅찼든 실망스러웠든 그 파티가 끝나가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유럽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기독교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며 지금 우리가 마주한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영원회귀’와 그렇기에 우리의 삶 전체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사랑해야 한다는 ‘아모르 파티’를 강조했다. 우리의 오늘도 마지막 불꽃을 피우는 노을과 함께 막을 내리지만 우리 앞에는 무한히 반복될 내일이 놓여 있다. 우리에게 다가올 내일은 어제와 같을 수도, 어제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뜻밖의 난관과 예상치 못한 설렘으로 가득한 파티(fati, 운명)를 긍정하며 또 하나의 즐거운 파티(party)로 받아들이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에 대한 사랑)가 우리의 내일을 더욱 즐거운 파티로 만들어줄 것이다.
* 글쓴이 - 김현정
예술을 사랑하는 번역가. 꿈은 내 글을 쓰는 김작가. 남의 글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무수히 많은 말을 잘 꿰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글을 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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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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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39
요정 할머니처럼 잘 꿰어주세요. 그런데 할머니는 좀 그럴 수 있으니까.. 요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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