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칼 하인리히 블로흐_어부의 아내로 살아갈 삶을 상상하며

#김혜정

2024.04.21 | 조회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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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관찰자 시점, 단순히 내 눈에 들어온 것들

일요일 오후. ‘이제 슬슬 적어 볼까?’ 생각하며 그림을 열었다. 지난 시간 한 번 해 봤으니 빨리 끝낼 거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몇 시간을 계속 보고 또 보고 있다. 격자창 넘어 환한 곳에 커다란 눈으로 무표정한 소녀가 서 있다. 집게손가락을 창문 유리에 대고 조심스레 콩콩노크하며 다른 한 손은 샤워 캡처럼 생긴 무언가를 들고 있다.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어둡게 처리된 그림이다.

어두움의 공간에 보이는 것들은 꽃병도 있고 생선도 있지만 한 곳에 모아 놓고 그린 정물화 느낌은 아니다. 보이는 것들을 천천히 살펴본다. 마치 현장 감식 나온 형사의 눈에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는 느낌으로. 창가의 화병, 시든 꽃의 줄기가 끊어져 떨어지며 흩어진 꽃잎, 생선 상자에 담긴 몇 마리의 생선, 시스루 스타일의 커튼처럼 보이는 물고기 낚는 그물. 그림에 보이는 부분은 소녀의 눈에 담긴 일부 장면이다. 소녀의 눈에는 그림에 담기지 않은 부분까지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왜 소녀는 저리 소심하게 노크를 하는 것일까? 수줍음 많아 조심스러움의 몸짓인 것인가? 상대에게 내가 있음을 알리려면 주먹으로 똑똑똑명확한 노크 소리를 들려 줘야 할 텐데 말이다.

 

소녀의 눈에 들어온 미래의 내 모습

그림에 보이지 않는 장면. 소녀의 눈에만 들어오는 장면은 미래의 내가 서 있을 곳이지 않을까 싶다.

귀어를 하고 싶다는 신랑이 그 소원을 이루는 날이 온다면 말이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도시를 떠날 거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시골살이를 막연하게라도 꿈 꿔 본 적이 없다. 조용하고 적막해서 심심한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다. 그렇지만 힘든 외벌이 월급 생활자의 삶.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정신이 피폐해져가는 신랑의 소원이란다. 20년 넘게 가족을 위해 버티어 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앞으로의 시간은 배려 차원에서 신랑의 마음 안정을 위해 따라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 시점을 언제로 할까 고민하며 시골살이로 눈을 돌리는 중이다.

혼잡하지 않은 여유로운 어촌에 터를 잡고 싶다.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아 줄 마음 좋은 이웃들이 많은 동네로.

창문 안의 풍경은 식당과 카페를 겸한 나의 일터의 모습이다. 똥머리를 틀고 세상 편한 원피스에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호호아줌마 스타일. 밖에서 보여 지는 나의 뒷모습이다. 다듬은 생선으로 초밥도 만들고 매운탕도 끓이며 몇 가지의 반찬까지 혼자 불 앞에서 바쁜 손놀림이다. 주인 맘대로 식당. 정해진 메뉴 없이 당일에 신랑이 잡아 오는 것들이 재료가 된다. 오픈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맘이 분주하다. 밖에 선 소녀는 몇 분 안남은 입장 대기 시간을 채우며 식당 안을 탐색 중이다. 혹시 미리 입장 가능한지 묻기 위해 조심스러운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으니 돌아서서 바쁘게 움직이던 나에게 소녀의 신호는 알아 챌 수 없었다. 오픈 시간이 되어 문을 열기 위해 돌았을 때 머쓱하게 그녀와 두 눈이 마주친다.

나의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밖에서 먹는 음식이지만 집 밥 같고 엄마 밥 같은 따뜻함과 정성이 넘쳐나는 식탁을 차려 주고 싶은 맘이 있다.

난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식구(食口)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밥 때에 함께 입을 벌리고 입 안으로 음식을 같이 넣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그들과 식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식당을 거치는 이들은 모두 나의 식구가 되는 것이다.

밖에서 안을 조심히 쳐다만 보지 말고 내가 있는 공간으로 서슴없이 들어와 앉아도 뭐라 하지 않을 식구들을 많이 만들고 싶은 나의 맘. 엄마의 맘 담은 식당 주인. 어부의 아내로 살 나의 미래다.

 

내다보기

소녀는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라면 안에서 밖을 보는 것은 내다보는 것이 된다.

나는 내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115동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위치 해 있고 큰 나무가 거실 앞에 손 닳을 듯 가까운 거리에 있다. 사계절의 흐름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저층이라 창문을 열어 두면 사람들의 시끌벅적 얘기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봄이면 연둣빛의 새싹이 움트는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벚나무의 연한 핑크빛, 새하얀 팝콘 같은 꽃이 만발하기도 한다.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면 녹음이 푸르른 나무를 마주하기도 한다. 가을이면 노랗게 단풍이 든 잎들이 낙엽이 지고 쌓인다. 겨울에 들어서면 앙상한 가지에 소복히 쌓인 흰 눈을 마주하며 사계절의 풍경을 내다보게 된다.

또 내다보기 좋아 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안방에서 보이는 바로 앞 초등학교 운동장의 풍경이다.

봄이면 새내기들의 웃고 떠드는 모습. 체육시간 아이들의 활동적인 움직임. 음악시간 창문을 열고 수업 할 때면 맑고 예쁜 오카리나 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들린다. 눈에 보여 지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미소 짓게 하는 장면들이고 귀가 정화되는 소리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디를 가는 것인지 궁금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어떤 맛있는 것들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주변 사물과 사람들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그것들을 애정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지 않고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내다보기와 들여다보기가 적용된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너는 속내를 너무 다 보여준다며 너의 그런 점을 악용한다고 했었다. 난 사람을 대할 때 가식 없이 대하려고 한 것 뿐 이였는데...... 이것은 나에 대한 들여다보기와 내다보기 무엇이 안 된 것인지 모르겠다.

 

*글쓴이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살롱드까뮤 #미술에세이 #그림에세이 #공저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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