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외로움
높은 천정과 커다란 창이 있는 윌리엄 오르펜의 <A window in London street, 1901> 작품은 요즘 우리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통하는 고풍스러운 카페 같다. 탁 트인 전망을 한 이곳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아름다운 장식의 샹들리에, 일정한 높이에 맞춰 전시된 액자들, 고풍스러운 테이블, 도자기 화병에 꽂힌 탐스러운 꽃으로 장식이 되어있다. 이렇게 멋진 곳에 심해처럼 푸른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창가에 기대어 서있다. 한 손은 장식품 위에, 다른 한 손은 모자를 잡은 채 창틀에 올렸다. 창밖을 보는 여인의 시선을 따라 가보니, 회색빛 벽에 창문 마다 빨간 포인트를 준 높은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파랑, 초록, 연두, 노랑으로 그라데이션 된 하늘이 있다.
조금 전까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은 여인은 고개만 옆으로 돌려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저 건너편 아파트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저 사람들은 위해 저렇게 바쁘게 다니는 걸까?’ 골똘히 생각하는 여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에드워드 호퍼의 <Morning sun, 1952> 작품을 떠오른다. 서로 다른 작품 속의 두 여인의 옆모습이 참 많이 닮았다. 그림자를 넣어 더 날렵해 보이는 턱선, 창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참 외롭게 느껴진다. 사교적 모임 공간처럼 보이는 곳에 서있는 여인과 지극히 개인적인 침실에 있는 여인에게서 외로움이라는 공통된 감정을 느껴지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나는 무언가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그녀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그녀들의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그녀들의 외로움에 사랑하는 사람(남편, 남자친구, 아들, 딸, 부모님, 친구 등)을 대입시켜보았다. 아닌 것 같다. 그녀들의 꿈, 희망을 넣어보니 외로워 보이는 모습과 어울린다. ‘나는 무언가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본다. 문득 나에게도 창밖의 세상을 내다보며, 내 미래를 꿈꾸고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음이 기억났다. 첫째 아이를 키우며. ‘둘째를 언제 낳으면 좋을까?’ 매일 생각했다. 머리를 굴려가며 둘째 계획을 하다보면, 그 다음에는 어김없이 ‘나는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을까?’였다. ‘서른다섯에는 둘째를 낳아야겠어!’ 결심한 나는 신랑에게 이야기했고, 난 계획대로 서른다섯에 둘째를 낳았다. 잠자는 것을 별로 안 좋아했던 아이를 키우다보니, 모두 잠든 늦은 밤 나는 둘째와 단둘이 거실에 있었다. 둘째를 안고 자장가를 부르며 거실을 걷다 창가에 잠시 멈춰 섰다. (몸은 계속 바운스 중) 그리고 나는 <A window in London street> 속 여인처럼 창밖을 바라보며 ‘난 언제부터 일을 할 수 있을까?’, ‘일을 할 수는 있을까?’ 내 미래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 누구도 나한테 일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남편도 아이들에게 엄마가 중요하니, 육아에 힘쓰기를 바랬다. 그냥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픈 꿈, 희망을 품고 기다렸다.
새장 밖의 세상
윌리엄 오르펜의 <A window in London street> 작품의 첫인상은 ‘가슴이 탁 트이네!’였다. 다시 작품을 봤을 때 ‘새장’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여인을 바라보며 외로움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비치는 내 삶의 첫인상은 그저 좋아 보이기만 할 수도 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주체적인 삶도 원한다. <A window in London street, 1901> 속 그녀에게도 ‘너의 삶을 찾아봐!’, ‘너의 삶을 모험해봐!’ 소리쳐주고 싶다. 그 외침은 내 안에 들어와 나를 흔든다. 새장 밖의 세상이 무척 궁금해진다. 기대된다.
나랑 함께 세상으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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