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펠릭스 발로통/추억의 소환시점_김경진

펠릭스발로통 <오렌지와 보랏빛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

2024.03.05 | 조회 1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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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 /191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 /1918년,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팰릭스 발로통의 노을

팰릭스 발로통이 산 중턱에 턱을 괴고 앉아 노을을 응시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물감에 담아 덧입혀가며 태양에 대한 찬사를 한껏 아끼지 않았을까 싶다. 오렌지로 물든 하늘과 맞닿은 보라와 푸름의 대비는 태양만큼이나 발로통 자신도 이글거리는 열정으로 살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저 노을은 누군가에게 일출로, 누군가에게는 일몰로 보였다. 나에게는 이 작품이 하루의 아쉬움, 서운함을 동반한 선셋의 클라이막스로써 나의 추억을 소환했다기억의 여러 장면들은 당시에 그곳에서 내가 어떤 감정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는지 감정의 소환까지도 끌어들였다.

 

그리고 나의 노을

여러 여행지를 다닐 적마다 태양이 머물다간 자리에 뿌려진 노을이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모든 것을 멈추고 사진을 연신 찍었다. 지나간 사진첩을 꺼내보니 그 때 느꼈던 감정들도 잊지 않고 뇌리에 떠올랐다. 앞뒤로 흐려졌던 장면들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노을이 하늘을 적실 무렵이면, 덜컹덜컹 좁은 길에 적막을 깨는 차의 엔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숙소를 향해가는 나를 따라오던 해는 오렌지색 바탕물을 뿌려 놓는다.

창가를 통해 보이는 광경들은 가장 화려한 색들의 조용한 춤사위같다.

6시간을 내달려 갔던 청산도의 마지막 배를 기다리며 해변가에서 노을을 만난다. 스물스물 내려가는 태양빛은 바다빛과 절묘하게 만나 보랏빛 바탕물을 들였고 그 바다는 나에게 가지 말라하는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여행은 꼬박꼬박 불편한 허락을 받아내야 가능했던 20대 초반의 불안한 여행이다. 그래서 노을이 이별하는 마음처럼이나 애잔한 구슬픈 보랏빛이였으리. 안타깝게도 기억에만 있고 아무리 뒤져도 이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더 아련하다.

 

꽃지의 기억

11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안면도로 달려갔다. 차디찬 바람이 얼굴에 휘감고 점퍼 속으로 자꾸만 몸이 기어들어가던 때이다. 주말이면 밀리는 이 구간은 매번 마음을 먹어도 쉽사리 출발하게 되지 않는 목적지지만, 오후 2시에 출발해 닿은 안면도 꽂지에서 도착과 동시에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았다.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피었다고 해서 꽃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오렌지색 물이 하늘, 바다, 갯벌까지 진하디 진하게 스며들었다. 그곳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정지 상태였다.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멈춤 버튼이 있다면 그걸 누르고 잠시 감상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는 해는 속절없이 더 빨리 내려간다. 갯벌에서 바삐 가던 게 한마리를 집어 들었는데 집게다리가 눈부신 노을빛에 반사되어 붉은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반포대교 아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려 한강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217월 어김없이 찾아온 더위에 돗자리 하나 차에 태워 반포대교로 향했다. 다리 밑에 모여든 인파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 였지만 앞에 펼쳐진 낭만 노을앞에 와글와글 한 여름 밤의 수다도 잠시 멈추고 고요하게 모두가 한 곳을 응시했다.  반포 대교 주변을 물들인 노을은 맞은편 너머의 블랙의 도시에 핑크 뮬리를 끼얹은 듯 했고 난간에 붙은 그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놓칠 새라 열심히 찍고 또 찍었다. 나 또한 자리를 잘 잡아야 명장면을 뽑을 수 있으니 비집고 들어가 한 자리 차지했다. 몇 분 안에도 장면은 달라진다. 하강하는 태양의 속도에 바람의 속도까지 더해져 노을은 구름을 따라 색을 달리한다.

 

아슬아슬 카약 속에서

제주를 궁금해하는 아이들의 성화에 234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다에 둥둥 뜬 투명카악은 우리의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

기우뚱하는 순간 빠질까 아이에게 당부를 해둔다. 노를 번쩍 들어 내려가는 해를 향해 인사하는 듯 보이나 내맘대로 가지지 않는 아슬아슬 카악에 몸을 싣고는 긴장된 숨을 크게 쉬어가며 노가 무거운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뭐 제주의 노을은 특별히 다를까? “이 바다는 노란데 회색이야”하며 오묘하게 섞인 이 색을 무어라 단정하지 못하고 나누었던 투명 카악 속 우리 둘의 대화는 참으로 시적이였다.

 

가방과 노을

가장 가까운 오이도의 노을은 감귤을 쭈욱 짜놓은 듯하다. 우리 집에서 마음만 먹으면 30분 만에 당도하는 오이도. 바다는 일을 다한 해에게 저녁을 내어주고 진하게 회색빛을 남겨갔다.

예전에 신혼여행을 가기 위해 들린 공항 면세점에서 셀린느 브랜드의 옐로우과 그레이가 교차된 소가죽 네모진 가방이 눈에 딱 들어왔는데 그때는 내가 남편에 대한 배려로 사달라고 안했다.

하지만 오는 내내 노랑과 그레이가 눈에 선하더라. 그 가방과 오이도 노을이 교차하던 날이다. 은근한 세련미 엘로우 앤 그레이의 조화. 사달라고 할 껄 그랬나, 지금 생각해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오이도의 노을만 보면 그 가방이 생각나네.

 

늘 같은 패턴으로 묵묵히 도는 지구의 공전만큼 내 일상도 그리 돌아간다. 리프레쉬가 필요한 시점에는 멀 던 가깝던 내달려간다. 하루의 끝에 만나는 노을 앞에선 나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며 감정선이 최대치로 끌어올라온다. 유난히 여행이 아름다워지고, 내 감정도 촉촉해진다.

함께 느끼고 이야기했던 모든 순간은 또 다시 어느 시점에 소환이 되어 추억에 웃겠지. 때론 장렬하게, 때론 은은하게 내려가는 태양은 희노애락의 화려한 컬러를 한 가득 머금고 내일을 또 기대하게 할테지

 

 

*글쓴이-김경진

문화예술기획/큐레이팅/아트딜러

문화.예술이 사람들에게 주는 엄청난 힘을 알고 있다. 그 옆에서 열심히 서성거리고 있다. 그림과 글쓰기, 전시 감상으로 삶을 촉촉이 하는 중이다. 

*'살롱 드 까뮤'는 그림 감상과 글쓰기로 이어 가는 인문.예술 커뮤니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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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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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cbm39

    0
    8 months 전

    이상하게 글을 읽고 있는데 경진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때론 장렬하게, 때론 은은하게. 선생님 분위기인것 같아요. 멈춤 버튼까지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느껴지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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