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기다려주자_전애희

에곤 쉴레_네 그루의 나무들, 1917

2024.11.20 | 조회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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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에곤 쉴레_네 그루의 나무들, 1917  캔버스에 유채, 140.5×110cm 오스트리아 미술관
에곤 쉴레_네 그루의 나무들, 1917  캔버스에 유채, 140.5×110cm 오스트리아 미술관

머물러있는 시간과 감정

아버님을 현충원에 모시고, 남은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낸 후 집에 돌아왔다. 괜찮은 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슬픔’이라는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눈물이 나왔다. 집안의 공기는 11월 4일 새벽 4시 30분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갔다. 짐을 싸고, 아이들을 깨워 출발하기까지 그 시간의 긴박함, 간절함이 오랜만에 온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아주버님 말씀처럼 아픔이, 슬픔이 덮어져 있다 바람에 살짝살짝 들춰질 수 있다. 슬프면 슬퍼하며 그 슬픔에 빠져 살지는 말자 다짐해 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슬퍼하고 함께 살아가자 마음을 붙잡아보았다.     

공허한 마음

<생각이 열리는 미술 이야기> 밴드에 그림과 짧은 메시지가 올라왔다. '요즘 가을 날씨도 좋고 가을 풍경도 멋진 날들입니다. 곧 추워지기 전에 가을을 많이 즐겨야 할 것 같은 요즘입니다. 에곤 쉴레의 <네 그루 나무들>을 감상하며 사색에 잠겨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맞다. 지금은 가을로 물드는 날들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10일 전 광주로 향하던 그날, 노랑으로 물들어가는 은행나무들을 지나쳤는데 이제 나무에 매달린 잎들이 모두 노랗다. 그림 속 주인공인 네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하늘과 땅을 보았다. 해를 보았다. 웃어도 웃음의 끝이 공허한 지금 내 마음 같았다. 이별과 상실의 아픔은 내 안에 방을 마련했나 보다. 짧게 있다 떠날 게 아닌 듯하다. 장기 투숙객으로 자리 잡은 슬픔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나를 설득해 본다. 스스로 웃을 거리를 만들고, 문득문득 나오는 눈물도 받아들였다. 화사한 핑크색 셔츠를 입고 거울을 보며 한 번 웃고, "애희, 잘하고 있어!"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에 눈물을 흘렸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 준 승희를 안으며 웃다가 따뜻한 커피 마시며 대화하다 울었다.     

다음 행선지를 가기 위해 걸으며 11월의 자연을 느끼며 조금 전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운 문장  Journey makes us humble.(여행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을 “Natural makes us humble.(자연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로 바꾸어 입안에서 되뇌어보았다. 지현선생님의 아이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숲길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서 천정을 바라보니 하늘이 보였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활짝 웃고, <Big Mind Art> 아이들과 도서관 수업으로 만난 아이들의 작품을 만났다. <물꼴 그림책 전시회>에 들어서자마자 알록달록한 색감,  천진난만한 스케치와 글들이 나를 반겨주는 거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지현 선생님과 인사도 나누고, 전시회에 찾은 꼬마 작가님도 만났다. 꼬마 작가님을 살피는 지현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살롱드까뮤에서 준비하고 있는 공저책이 곧 세상에 나오기 전이라 꼬마 작가님이 더욱더 대단해 보였다. ‘책이 나오면 나도 꼬마 작가처럼 활짝 웃겠지?’

출렁이는 마음

운동을 하고 집 근처 서점을 잠시 들러 유아책 코너로 갔다. <감정 호텔> 샘플북 책장을 넘겼다. ‘슬픔이 찾아오면 조용히 기다려 줘야 해요.’ 나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이었다. 뒤이어 한 번 더 나에게 슬픔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오래 머무른다고 알려주었다. 상실의 슬픔이 나에게 찾아왔다. 난 조용히 기다려주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면 울면 된다. 일상을 보내며 웃고, 떠들다가도 슬픔이 밀려올 수 있다는 것, 슬픔 속에서도 일상의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남편이게도 전하고 싶다. 조용히 책을 읽는 남편도 책 속에서 위로로 받고 있는 듯하다. 마음이 조금 놓인다. 

오늘도 내 마음은 에곤 쉴레의 <네 그루 나무> 속 풍경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출렁거린다. 11월 한가운데 서 있는 우리 마음처럼 출렁거린다.

<영어, 영화로 만나다>_영어교육 강연, 유승희  망포글빛도서관
<영어, 영화로 만나다>_영어교육 강연, 유승희  망포글빛도서관
<감정호텔>_저자, 리디아 브란코비치/출판, 책 읽는 곰
<감정호텔>_저자, 리디아 브란코비치/출판, 책 읽는 곰

글쓴이 전애희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다 보면 '세상 모든 게 예술이구나!' 생각이 든다. 브런치 작가로, 삶 속에서 만난 예술을 글에 담으며 행복을 쌓고 있다. 예술과 함께하는 삶은 유치원 교사(8년 차), 원감(6년 차) 경력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었다. 현재 미술관 도슨트, 수원시 초등학교에서 수원문화와 연계된 예술 수업을 하며 문화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유아동예술교육가, 독서지도사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아이들과 만나고 예술을 매개체로 소통하는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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