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너의 걸음을 걸어 봐
못 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초등학교 (그 당시엔 국민학교) 5학년 여름 방학. 세류동에 살다 화서동으로 이사를 하며 전학을 했다. 여름 방학을 끝내고 개학하던 첫날이었다. 아빠의 근무지를 따라 움직인 것도 아니고 집안 형편 때문에 갑자기 정해 진 일이었다.
방학이어서 다니던 학교 친구들과 헤어짐의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새로운 학교는 큰 학교였다. 그날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외모가 기억에 생생하다. 키도 체형도 자그마하고 단발 파마에 투피스를 입고 ‘달려라 하니’에 나왔던 고은애 마냥 꽃분홍 립스틱을 바르셨던 선생님. 그러나 고은애처럼 투박한 외모는 아니었다.
책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들고 쫄래쫄래 선생님 뒤를 쫓았다. 5-4 교실 앞에 섰다. 앞문이 열리고 들어선 교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칠판에 쓰라고 했다. 김혜정 석 자를 적고 간단한 내 소개를 했다. 키도 작은 나는 제일 뒤에 앉게 되었다. 전학생의 비애랄까. 며칠 전 전학을 왔다는 키도 크고 예쁘장한 친구 옆에 앉게 되었다. 그 친구는 67번, 나는 68번이었다.
67번의 친구는 나보다 먼저 왔다고 적응하고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짝꿍과 점심 도시락까지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시간에 사건이 생겼다.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서 놀았다. 다들 철봉에 다리를 걸치고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리거나 철봉을 잡고 뱅글뱅글 몇 바퀴식 돌았다. 보여 주더니 “너도 할 수 있지?” 물었다.
띠로리. 난 철봉에 매달릴 수는 있는데 저런 묘기를 보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무슨 근자감 (근거 없는 자신감) 이였을까. 나는 “그럼 할 수 있지.”하며 그 친구들을 따라 했다. 철봉에 두 다리를 꼬아 올라타는 것까지는 했으나 발을 걸치려 앞으로 돌다 '퍽'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져서 운동장 모랫바닥에 떨어졌다. 옆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아이들이 내려와 내 옆으로 왔다. “괜찮아?”라고 물었다. 속으로 ‘안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애써 웃으며 “괜찮아”라고 했다. 머릿속과 입속엔 모래가 들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손목이 부었다는 거였다.
전학 첫날의 이미지
학교가 끝날 때까지 참았다. 나의 상태를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음 날 깁스를 하고 붕대를 감은 팔로 나타나면서 전날의 일을 알았다. 골절은 아니었지만, 인대가 늘어났다.난 내 의도와는 다르게 말괄량이 이미지가 되었다.
지금도 못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일과 매달려서 뱅글뱅글 도는 일. 그때의 아픔이 있어 해 본 적도 없고, 거꾸로 매달리면 어지러움을 느껴서 하고 싶지 않다. 사진을 찍어 단순히 위아래를 바꾸면 거꾸로인 세상이 보인다. 다만 내 눈에 직접 담았을 때의 느낌을 받을 수는 없겠지. 그 느낌이 어떤지 궁금은 하지만 자신이 없다.
밤의 괴물들
내 과거 철봉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나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왜 철봉운동을 하느라 매달린 여성들의 눈이 흠칫 놀란 눈일까? 마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다 걸린 사람들처럼 아니면 무언가 마주하지 말아야 할 상대와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조용해야 할 밤에 운동하며 시끄럽다 민원이 들어간 걸까? 아니면 눈앞에 없었던 동물이나 사람이 나타났나? 많은 정황 들을 추측 해 본다.
그림이 <밤의 괴물들> 시리즈 중에 한 작품이다. ‘내 나니 여자라’ 전시에서 본 기억이 있다. 전시가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은 나약한 여자 이면에 강함과 그 시대에 무쳐 버리지 않는 여인들의 노력을 보았었다. 한 여자의 약함과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여자의 약함은 근본적으로 달라 보였다. 작가가 보여 준 <밤의 괴물들>은 범죄의 표적이 되는 여자의 느낌 이였다.
그 전시에 작가는 “여성의 해체를 시도한다. 약한 존재로 인식되던 술에 취한 여자들, 나혜석 삽화 속 인물과 문자들은 강한 존재감이 드러나게 형상화되어 익명성, 수동성, 비존재성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대상화를 도발적으로 경계한다”라고 했다.
철봉운동을 하는 장소, 애 띤 얼굴, 아마도 그녀들의 앞에 나타난 건 그녀들을 위협하는 남성이지 않았을까? 두렵다고 움츠러들지 말자. 위험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갇혀 있지 말자. 세상은 그 두려움을 깨고 나오는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
까뮤의 많은 선생님을 보니 더 그렇다. 그들의 보폭이 아닌 내 속도 내 보폭대로 걸어 보자 다짐 하는 아침.
*글쓴이 - 김혜정
두 아이를 힘차게 키워내는 한국의 엄마입니다. 요리하길 좋아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어 나누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또 다른 쓰임을 찾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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