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을 품는 시간
집마다 햇살을 품는 시간은 다르다. 우리 집은 남서향으로, 지금처럼 추운 겨울이면 ‘저녁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생각하는 오후 5시 무렵부터 거실 창으로 석양이 한가득 들어온다. 이 시간만큼은 하늘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거친 미세먼지로 파아란 하늘이 기분 좋았던 오늘은 홍시처럼 자리 잡은 붉은 태양과 은은한 오렌지 빛 햇살이 한가득 들어와 따스하게 나를 감싼다. 아이들 방, 거실에 있는 작은 식물, 소파, 책장, 식탁 너머 냉장고가 있는 주방까지 길게 들어오는 햇살은 하나하나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어 준다. 오래 머무를 것 같은 태양은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늘은 은은한 오렌지 빛에서 솜사탕처럼 달콤한 핑크빛 보랏빛 다양한 색만 남겨놓는다. 펠릭스 발로통의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1918) 작품 속 석양은 내가 지금 보는 있는 창밖의 석양만큼이나 빛깔이 정말 예쁘다. 아름답다. 그리고 따뜻하다.
# 석양과 함께한 추억여행
이렇게 감탄하는 사이, 난 잠시 시공간을 넘나들며 추억 여행을 다녀온다.
아이들과 그림책을 함께 보며 읽어주던 때로 잠시 떠난다.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 속 보랏빛 노을과 노오란 태양은 한 마리 ‘악어’로 변신해 나에게 인사한다. 악어 빌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읽었던 <꼬마제인이 없어졌어요.> 그림책의 주인공 빌이 나타 난거다. 사촌동생 꼬마제인이 없어진걸 알게 된 악어 빌과 악어새 피트가 꼬마제인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지만, 그 안에 환경보호 내용도 있는 그림책이다. 그림책 안에는 오렌지색, 보라색, 핑크색, 청록색 등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 속 색들이 들어있다. ‘7~8년 봤던 그림책을 떠올리다니!’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며, 그림책 속 이야기 뿐 아니라 색감도 내 안에 스며들어와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어릴 적 아이들과 함께 한 순간순간이 나에게도 스며들어 있다면, 아이들 또한 그 순간순간들이 스며들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 어릴 적 시간을 떠올리며, 난 어느새 미소를 짓는다. 이게 행복이지 않을까?
이번에는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으로 떠난다.
펠릭스 발로통의 작품 속 오렌지, 보랏빛, 핑크빛 하늘과 황금빛 저녁 햇살은 여유로운 초원, 청록빛 물과 검은 땅과 나무는 고요하면서 긴장감이 감도는 초원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얼룩말, 코끼리, 기린 등 초식 동물들 푸르른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저녁 노을빛에 감싸여 한가로운 시간, 어디선가 와니니 무리가 기지개를 켜며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하는 낮은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는다. 이현 작가의 <푸른 사자 와니니>책은 삽화가 있는 장편소설이기에 삽화와 더불어 상상을 마음껏 하며 아프리카 초원을 내 머릿속에 그렸는데, 오늘은 펠릭스 발로통 작품을 통해 아프리카 초원을 다녀온다.
잠시 귀를 기우리니 청록의 녹음 속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느새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담소 나누는 여인들 옆에 있다. 아름다운 노을은 우리나라 옷 한복의 고운 색 같다. 최근에 보았던 MBC 드라마 <연인>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 길채와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있다. 나도 곱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그들과 함께 맑은 물소리 가득한 자연 속에서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 희망을 꿈꾸는 시간
마지막으로 필리핀 보라카이로 떠난다.
2005년 겨울 신혼여행을 온 나는 반짝이는 보라카이 바다에서 금빛 햇살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동반자와 함께 가만히 미래를 상상해본다. 그 때 함께한 석양은 나에게 희망이었다.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이렇게 펠릭스 발로통의 <오렌지와 보랏빛의 하늘, 그레이스에서의 노을> 그림으로 난 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전애희도슨트 #살롱드까뮤 #그림에세이 #미술에세이 #공저도전기
#펠릭스발로통 #오렌지와보랏빛의하늘,그레이스의노을
*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수업, 창의융합독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장르로 통하는데,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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