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쉬자.
"아~~~~~~~~~함" 입이 찢어지게 하품이 나온다.
잠시 쉬자.
약 24시간 동안 창의융합독서 수업 준비, 수업 진행, 유아미술수업 연간 계획안과 상반기 도서관 문화강좌 수업계획안을 작성했다. 물론 몇 시간 잠도 잤지만, 지금 나에게는 휴식이 더 필요하다. 몸은 쉬는데 머릿속은 쉬질 않고 계속 움직인다. '머리야~ 너도 잠시 쉬자!' 마음속으로 외치지만, 머릿속에서는 소파에 누워 쉬고 있는 그녀가 자꾸 생각난다. 물미역 같은 초록색 벽지, 물풀 같은 초록색 소파. '얼마나 피곤했으면 외출복을 입은 채 소파에 온 몸을 던졌을까?' 그녀에게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던져본다. 수업 준비 하다가 소파에 풀썩! 앉았다. 앉으니 눕고 싶다. 누워보니 몸은 좀 편해졌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 수업 준비 중이다. "안 돼~ 지금은 쉬어야해." 자신에게 이야기 하며, 잠시 초점을 흐려본다. 그녀는 지금 깊은 바다 속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 몸도 어느새 깊은 물 속 적막함 속에 있는 듯하다.
“미술은 육체적인 피곤으로부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좋은 안락의자 같아야 한다.”라고 앙리 마티스가 이야기했다. 나에게 라몬 카사스의 <무도회가 끝난 후> 그림은 잠시 나를 쉬게 만든다. 그녀가 누워있는 저 소파는 어느새 내 마음에 휴식을 가져다주는 안락의자가 된 것만 같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라몬 카사스의 <무도회가 끝난 후>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무척 궁금해졌다.
#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선, 그 속에 스며든 각자의 삶
먼저 아이들에게 프린트 된 그림을 보여주며, 생각나는 느낌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신랑과 그림에 흥미를 보일 거 같은 몇 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결심하고, 문자로 그림을 전송했다.
‘그림을 보고 생각나는 거나 느낌 적어서 보내줘.’
‘카톡!’ ‘카톡!’
우선 가족들 이야기를 들어보자.
첫째 아들(예비중2)은 그림을 보자마자 "공부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누워있는 장면을 상상 중이야."라고 이야기 한다. 공부하며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둘째 딸(예비초6)은 "학원 끝나고, 숙제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것 같아서 누워있어."라며 자신의 힘든 상황을 그대로 투영한다. 방학이라 많이 놀고 싶은데 생각보다 놀 시간이 없으니, 학교 다니는게 더 나은 것 같다고 이야기 하던 딸의 모습이 생각난다. 학교 다닐 때랑 큰 차이 없는 학원 일과인데 '방학'이라는 타이틀에 공부가 더 힘겹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엄마 생각에는 주말이나 틈틈이 학교 다닐 때 못했던 것들을 하는 거 같은데, 그게 충족되지 않는 모양이다. 신랑(76년생 회사원)은 그림을 보자마자 "우와! 내가 저렇게 있고 싶다!" 강한 공감을 표한다. 진심이 느껴지는 외침이었다. 요즘 회사 일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힘든 모습을 보였다. 안쓰럽기도 했지만,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응원을 보내주는게 전부였다. 여동생(80년생 준공무원)은 만사 귀찮아 보인다며, "나도 하루 종일 저렇게 있고 싶다."라고 이야기 한다. 새로 들어간 직장인데 연말연초 업무가 많아져서 힘들다고 하는가 싶어서 곧 설 연휴가 있으니 힘내보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매제(77년생 사업가)는 "피곤해보이네!", 조카1(예비고1)는 "일하고 와서 피곤한가?", 조카2(예비중2)는 "귀찮아 보이네."라고 이야기 한다. 짧은 소감에 더 묻고 싶었지만, 그것조차 귀찮고 피곤해 할까봐 그만 뒀다.
이번엔 친구 및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친구1(중고등학교 동창)는 슬퍼 보이고 지친 모습에 장례식을 다녀온 것 같단다. 제목을 알려주니 "예전에 무도회 같은 거 하면 춤추고 싶은 여자에게 이름표 주고 차례를 기다렸던 거 같은데, 그 종이를 들고 있는 거 아닐까?"라고 이야기 한다. 그림에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 더 흥미롭다. 친구2(고등학교 동창)는 "책보다 지친건줄 알았는데"하다가, “완전히 편해 보이는데 신발 벗고 발을 올리면 더 편하지 않을까? 음, 갖춰 입고 바른 자세로 손님맞이 하고나서 최대한 내려놓은 모습일까?”이야기 한다. (친구들 얘기를 듣다보니 처음에 책이라고 생각했던 게 수첩처럼 보인다.) 친구 옆에서 함께 그림을 보던 친구1의 딸(예비초5)은 퇴근한 직원의 모습이 생각나고, 주말에 자기 모습이라고 덧붙여준다. 친구3(15년지기 동네친구)은 “쉬고 있는 모습 같기는 한데, 정말 편안한 자세와 달리 표정은 그다지 편하지 않은 느낌도 있어서 뭔가 다른 고민거리가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있지만 생각은 딴 데 있는 거 아닐까?”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직업이 있을까? 아님 집에서 곱게 교양 쌓으며 지낼까? 결혼은 했을까?” 그림 속 그녀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았단다.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가 그녀의 자세를 따라해 봤다. 직접 해보니 편하기도 하면서 팔이 아팠다. 친구3은 이야기를 더 덧붙인다. “책을 읽다 잠든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어디서 피곤한 일을 하고 들어온 직후 같아.”, “예전에 퇴근하고 오면 딱 저 자세가 되는 경우가 있었거든.”, “머리스타일이나 패션은 되게 우아해 보이기도 해서 책과 함께하는 여자의 우아함과 교양미가 느껴지기도 하고, 완전 블랙이라 단순 드레스일 수도 있지만, 혹시 장례식에 참석했던 것일 수도 있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친구1도 '장례식'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고 했는데, 친구3도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하며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평상시에 생각을 많이 하고 글을 쓰는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네 동생(7년 지기)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손 하나 까딱 하기 싫어!”, “내 몸이 땅으로 기어들어갈 만큼 지쳤어!”, “나 잘 한 거야?”, “잘 한 거야!”, “ 괜찮은 거야?”, “괜찮은 거야! 아니 안 괜찮아, 나 지금 안 괜찮아!” 그림 속 여자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주었다. 열심히 사는 동네 동생의 고민이 엿보였다. 마지막으로 여동생 동네 동생(81년생 이후)은 "왜 저래?"하다가, 잠시 생각을 하고 난 뒤 "책보고 생각하나보네. 책 보느라 힘들었나?"라고 했다며, 동생이 이야기를 전해온다. 자기가 평소에 책을 잘 안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 까지……
자기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 이게 그림을 보는 진정한 감상 자세가 아닐까?
이렇게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후 그림을 다시 보고, 난 또 묻는다.
“그녀처럼 힘들고 지칠 때, 쉼이 필요할 때 어느 장소가 가장 편한지,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할까?”
우리 신랑은 집에 편하긴 한데 아이들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마냥 편하지는 않다고 한다. 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다른 일정이 없을 때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신랑은 늦은 퇴근 후에 집에서 짧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아이들 교육 상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즐거움을 잠시 접어뒀던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부모로써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틋해졌다. 집에서 거실이 가장 편하다는 신랑을 위해, 텔레비전은 못 보더라도 거실 환경을 좀 더 쾌적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 했으니, 꼭 실천하자!) 아이들은 "내 방!"이라고 외친다. 역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십대 아이들이 맞구나. 딸은 가족이랑 친한 친구랑 있을 때 편한데, 혼자 있는 게 제일 편하단다.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까!”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아들이 "똥 쌀 때 편해!"라고 한다. 웃으면서 "혼자라서?" 되물었다. "혼자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큰일을 볼 때면 근심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한다. 이 말에 아빠도 "동감!"이라 외치며, "배설의 기쁨이 있지!"라고 아들 말에 맞장구를 친다. 역시나 호캉스(호텔 바캉스) 보다 화캉스(화장실 바캉스) 인가!!! 친구2(고등학교 동창)는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 일 때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다고 한다. 모두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런 이야기는 얼굴보고 해야 하나?’ 다들 답장이 없다. 그렇다고 계속 묻기도 해서, 궁금하지만 참기로 했다.
뜬금없이 그림 한 장을 보내며 어떤 느낌인지부터 이것저것 묻는 나에게 대답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그리고 그림 하나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삶을 좀 더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 이제 나를 바라보자.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제 내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제 나를 바라보자."
"내 마음을 바라보자."
"내 삶을 바라보자."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나는 유치원 원감선생님이었다.
나는 창의융합독서 선생님이다.
나는 미술관 도슨트다.
곧 수원특례시 청개구리 교실 문화예술 선생님이 될 거다.
유·아동 미술 선생님도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유치원 선생님으로 열심히 지내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말은 "전 선생!" 어쩜 그 말이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시절 공부를 잘 했던 건 아니지만,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학생이었다. 이런 모습은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 속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현재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것 같다. '내가 잠시 쉬어도 세상은 돌아가.' '너무 동동거리며 살지 말자.' ' 내가 즐거워야 아이들도 즐겁지.' 결혼 초에는 친정에 가야만 편하게 느껴졌는데, 결혼 18년차가 되니 내 집, 우리 집이 가장 편하다. 가족이 있는 우리 집. 물론 내 집에서 나 혼자 있는 고요한 집은 짧은 쉼을 줄 수는 있지만, 가족과 시끌벅적하게 사는 게 나에게 에너지를 준다. 이 공간에 초록의 싱그러움과 가족들의 웃음이 있다면 난 또 힘을 얻고 내일을 살아갈 거다. 지금의 지쳐있는 나는 어느새 에너지 충전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그림으로 글쓰기를 하며, 나에게 힘과 용기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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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수업, 창의융합독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장르로 통하는데,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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