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

영국 화가_휴 골드윈 리비에르 (1860-1956)

소울메이트

2024.03.27 | 조회 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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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휴 골드윈 리비에르Hugh Goldwin Rivière /The Garden of Eden/1901
휴 골드윈 리비에르Hugh Goldwin Rivière /The Garden of Eden/1901

 

우리가 그때 만났더라면

매일 그림을 본다. 어떤 정보도 찾지 않은 상태에서 무연히 바라볼 수 있는 그림들을 찾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생각나는 그림이 생긴다. 휴 골든 리비에르의 <에덴의 정원>이 그랬다. 남편과 내가 시절을 거슬러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머리 위 나뭇가지에 맺힌 빗방울을 무심코 맞아가며 그의 손을 잡고 서로의 수업이 끝난 후, 우리가 정해놓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는 추억이 있다면 어땠을까? 모든 것이 부족한 유학생의 결핍을 우리가 서로 보듬고 채워줬다면 어땠을까? 우리에겐 있지도 않은 추억인데 마치 있었던 것처럼, 새벽 향기, 스산한 바람, 축축한 비 내음, 주변의 움직임, 얼굴에 한두 방울 맞은 비의 촉감이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더 이상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반복되는 단순하고도 단조로운 날들이 쌓여만 간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모든 순간은 아름다움을 가졌으리라. 사랑의 진실은 단순한 형태가 아닌 다양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수없이 변화하는 시간 속에 있는 서로의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있지도 않은 그 시절을 그림을 통해 마치 있었던 것처럼 그리워하는 것은 내가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여러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일지도 모를 일이다. 새벽녘 서로의 길을 가기 전에 내 호주머니에 모르게 찔러 넣은 예이츠의 하늘의 천이라는 시를 나중에야 읽고서 다음 날 더 굳세게 손을 잡아 주고 더 맑은 눈빛으로 그를 보내는 그림. 우리가 그때 만났더라면 그런 추억 하나쯤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하늘의 천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으로 수놓은
파랗고 검은 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리​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꿈을 그대 발밑에 깔았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당신의 눈빛이 그리울 때

몇 해 전부터 사극을 찾아서 보고 있다. ‘달의 연인’은 이하이의 ‘내 사랑’이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고 드라마를 찾아보게 된 케이스다. 츤데레 ‘광종’ 앓이를 한참이나 했고 밤마다 드라마 주제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후궁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덕임과 나랏일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이산(정조)의 밀당 로맨스로, 여전히 찾아보곤 한다. 최근에는 ‘밤에 피는 꽃’이라는 판타지 사극을 정주행하고 있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눈빛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듬직한 ‘수호’와 외계인 같은 ‘여화’의 매력에 빠져서 보고 있다.

드라마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영상을 봐야 한다면 영화를 선호하는 쪽이었다. 그런 내가 로맨스 사극을 보며 가슴 설레게 된 이유가 있다. 남편은 츤데레 스타일이다. 속 깊은 사람이라 겉으로 내색을 안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챙기는 타입이다. 말없이 묵묵히 상대방의 마음을 잘 읽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우리가 마주 앉거나 걸으며 눈빛을 교환할 일이 별로 없어졌다. 연애 때 주고받았던 따뜻한 눈빛을 사극의 비슷한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셈이다. 자꾸만 사극을 찾아보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진 않는다. 그저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길, 주말에라도 함께 어디라도 갈 수 있기를. 매일 새벽에 나가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만 하다. <에덴의 정원>을 계속 보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을 것 같다. 출근길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 줄걸. 비 오는 날 우산 한번 챙겨줄걸.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하는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사줄걸. 하면서 말이다. 

 

아이와 함께하게 될 소울 메이트

내가 남편과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얘긴 연애 때 서로 주고받던 말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소울 메이트가 된 것처럼(지금은 잠시 아이와 소울 메이트) 아이에게도 언젠가 소울 메이트가 생길 것이다. 제법 따뜻한 성품을 타고 난 아이, 타의 모범이 되는 대장 보다는 조금 겁이 많고 수줍음이 있지만 정의감이 살아 있고 친구들의 말에 공감을 잘해주는 우리 아이는 어떤 사람과 소울 메이트가 될까. 누가 우리 아이의 손을 잡고 투명한 눈으로 바라봐 줄까. 우리보다는 조금 더 적절한 시기에 큐피드의 금화살을 맞고 사랑의 싹을 틔워 가면 좋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영국의 어느 공원 앞에서 어두운색의 바바리코트를 입고서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는 믿음직한 아이를 떠올려 보게 된다. 

 

* 글쓴이 - 김상래

아뜰리에 드 까뮤 대표/작가/도슨트, 학교와 도서관 및 기관에서 성인 대상으로 미술 인문학, 미술관 여행 강연 및 글쓰기 강의를 한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그림과 글쓰기, 전시 감상 하는 '살롱 드 까뮤'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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