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떠난 다음에 남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내 주위를 떠나가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크고 작은 기회들과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 들도 가끔 나를 떠나간다.떠난 다음에 는 무엇이 남겨 질지 그때에는 모르지만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꽤 묵직한 것이 그 자리에 남아 홀로 울먹이게 하기도 하고 즐거움이 남아 웃음 짓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가장 외로운 시절 내게 와주었던 고양이 러시안 블루가 그렇다.내가 집에 없을 땐 하루 종일 창가에 걸 터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우주같이 깊고 신비한 푸른 초록빛 눈동자에 하루의 시간을 담아 놓고 있다가, 저녁 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내 고양이의 눈에 비친 하루를 들여다보면 , 그 눈동자가 너무나 맑아서 그 모든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나의 하루를 채워주던 너와의 시간들은 10여 년이란 세월 속에서 고롱 고롱 숨소리를 내며 덧 없이 행복한 시간들이였다.은회색 코트를 예쁘게 입고 부르면 대답해주며 나와 눈을 마주치던 나의 고양이. 그 보드라운 털이 은빛으로 뒤덥힌 귀가 더욱 더 쫑끗 해지며 깊은 눈동자가 하루 종일 바라보았을 그 시절의 창문을 떠올리면 아직도 목이 메어 오는 것을 느끼며 서늘한 바람이 부는 창가에 서서 밤하늘을 한번 바라본다.
나의 블루 ,여전히 나를 기다리며 그 곳에서도 잘 지내고 있지?
episode2. 마지막 잎새를 그려놓고 기다렸을 삶의 희망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인물인 화가 지망생 존시는 생존률 10%밖에 안되는 악명높은 폐렴에 걸려 병실에서 누워 창밖에 보이는 담쟁이 덩쿨의 낙엽들처럼 나도 이제 곧 죽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 존시를 걱정하는 친구 수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지만 병 때문에 몸이 약해지니 삶에 대한 의지 마져 자포자기하면서 하루 만큼 씩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침대 밖 창문으로 보던 옆집의 담장이 덩굴들이 하나 둘 씩 떨어 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이제 곧 저 담쟁이 잎새 처럼 자기도 죽을 것이라 말하던 존시. 몸이 아프면 우울이 짙어진다.내가 오 헨리의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열살 이였다. 고작 열살의 소녀인 내가 주인공이 처한 죽음이나 우울을 얼마나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을 보며 확실하게 이해 한 것이 있다. 바로 누군가의 희생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으로 남는다 는 거였다. 그 누군가는 바로 아랫 집에 살던 화가 아저씨이다. 소설에는 폭풍우가 매섭게 몰아치며 창문을 거세게 때리며 혹독한 겨울이 왔음을 알리고 침대 밖 창문으로 보던 옆집의 담장이 덩굴을 보는데 이 제 잎새 들이 다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존시의 눈앞에 마지막 잎새가 끝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하나 남은 마지막 잎새를 보고 존시는 삶에 대해 의지를 얻고 완전히 회복된다.그러나 그 마지막 잎새는, 사실 아랫 집에 사는 화가인 베어먼 아저씨가 존시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날 밤, 존시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고 정작 자신은 빗물에 젖어 폐렴이 걸려 사망 하게 된다. 베어먼이 언젠간 걸작을 그릴 것이라고 했던 그 작품이 바로 죽어가는 존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그렸던 자신의 대 작품, 그것이 바로 마지막 잎새 였던 것이다.
대가 없이 진정성으로 행하는 마음과 그 행동은 누군가 에게 진심으로 삶의 위로가 되어준다. 문학 소녀였던 덕분에 나는 그림이나 문학 같은 작품을 마주 할 때, 이러한 것 들을 느낄 수가 있다.때로는 내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작가가 되어보기도 하면서 작품 속으로 흠뻑 빠져드는 경험을 종종 한다. 열살의 내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보고 느꼈던 삶의 희망의 색처럼 말이다.
창 밖을 보며 희망을 꿈꾼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 올지라도 내일 아침이면 마지막 잎새를 볼 수 있을 테니. 창밖에 기다리고 있을 나의 잎새, 그 잎새를 보기 위한 삶은 긍정적인 의지는 더욱 값진 것이다.
episode3. 기다림은 나를 성숙하게 하며 정제된 시간속에 머물게한다.
우연인지 필연 인지 모르겠지만 제일 높은 층에 살고 있다. 아파트 탑 층의 특징은 다른 집의 구조와는 다르게 발코니의 창문이 다른 집보다 높이가 높게 설계되어있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 부모님과 살고 있을 적에 발코니 창에 커텐을 따로 맞추기 위해 길이를 재려고 내가 의자를 밟고 올라섰다. 그때 처음으로 창가에 올라 서서 밖을 내려다 보았다. 무섭기 보다는 높은 창은 하늘과 가까워 더 푸르러 보였고 아래는 초록빛 호수 위에 반짝이는 캐슬( 매직 아일랜드라는 놀이동산의 성)이 한눈에 보였다. 그 당시의 내가,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성을 멀리서 라도 보고 싶어 발끝을 들고 내려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높은 창문에 도달하려면 내가 키가 더 컸어야 했다.
더 이상 크지 않는 키로 인해 나는 조금 빨리 성숙해졌고,몸은 빠르게 컸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나는 늘 이런 저런 상상 속에서 긴 모험을 하며 적당히 커가길 바래왔는데, 내게 주어진 현실은 결과를 빠르게 내어야 하는 그런 삶의 연속 이였다. 그냥 나를 내버려 두었으면 좋을 텐데 .. 나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로 하고 더 자라고 싶은데.. 하는 어린 마음이 내게 가득했다. 하루 종일 저기 저 호숫 가 의 반짝이는 성으로 놀러 가 친구들과 간식을 먹으며 흩날리는 바람에 머리가 엉망진창이 되도록 휘날리며 이리저리 좌충우돌 여행을 하듯 시간을 보내며 집으로 돌아 왔을 텐데.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는 저 꼭대기에 환하게 켜진 창문을 바라 보며 안도감을 느꼈을 텐데.. 언제 쯤 이면 나는 저 성에 닿을 수 있을까.
그렇게 10 여 년이 흘렀고, 나의 기다림은 10 여 년 동안 한결 같았다. 가족이라는 나의 성을 쌓아 올린 나는 여전히 아파트의 탑 층에 살고 있다. 커텐을 달기 위해 창가에 올라서면, 나의 기다림 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내가 10여 년 전 높은 창가 앞에 섰을 때와 지금의 나. 나는 그간 긴 모험을 하진 않았다. 다만 기다렸다. 그 시간 동안 나의 마음도 몸과 같이 성숙 해져 갔고, 창 밖의 성을 보고 놀러 가고 싶었던 어린 마음의 내가 멀리 서 발끝을 들고서 담고 싶었던 그 캐슬 을 이제는 발끝을 들고 내려다 보지 않고 창가에 잠시 기대어서도 볼 수 있는 중년의 넉넉한 품으로 바라 보고 있다. 창 밖을 바라다 보았던 10년의 시간들은 나에게 정성이 깃든 시간이 무엇임을 알게 해주었고.창밖의 정성 어린 시간들 은 잘 정제 (精製) 되어가는 시간들의 연속으로 이어 지게 한다.
앞으로 내게 올 시간들에게 조금 더 정성을 들여서 맞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나는 창문 앞으로 가서 밖을 내려다본다. 그 시간 속에 기다릴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있기에.
국어사전 정제 (精製)
명사
1.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듦.
2.물질에 섞인 불순물을 없애 그 물질을 더 순수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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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다이어리의 그림속 키워드
#창문#기다림#희망#성숙#가족#의지
글쓴이 - 도슨트 다이어리 docent diary
미술관과 학교에서 그림을 나누며 인문학과 예술을 기록해나가고 있습니다. 도슨트로서 사실적인 작품 해설 이외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해서 혼자 다이어리를 쓰듯이 개인적인 감상을 그림 에세이로 남기는 공저 작업중입니다.
눈길이 닿는 그 곳 에서부터 시작되는 사유의 공간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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