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사유입니다~ 🍵
오늘은 오랜만에 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위타드 오브 첼시(Whittard of Chelsea)는 1886년 런던에서 문을 연 차 상점입니다.
지금은 차와 커피, 핫초코를 함께 팝니다. 사실 저는 위타드를 차보다 핫초코로 먼저 알았습니다. 😅
핫초코 종류가 꽤 많습니다.
럭셔리 밀크, 솔티드 캐러멜, 오렌지, 헤이즐넛. 여기까지는 좀 익숙한 편이죠?
조금 더 보면 라즈베리 리플, 스티키 토피 푸딩, 루바브 앤 커스터드가 있습니다.
심지어 당근 케이크 맛 핫초코도 있습니다!

(실제 제품명은 'Carrot Cake Flavoured Hot Chocolate'. 화이트 초콜릿에 시나몬과 달콤한 프로스팅 풍미를 더한 제품입니다.)
1886년 차 상점으로 시작한 브랜드가 왜 당근 케이크 맛 핫초코를 팔고 있을까요?
1. 위타드는 차에서 시작했습니다
1886년, 스물다섯 살의 월터 위타드가 런던 플리트 스트리트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는 열일곱 살에 집안의 가죽 사업을 잇지 않고 런던의 차 무역상에 취직했습니다. 당시 런던의 차 거래는 민싱 레인(Mincing Lane)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식민지에서 들어온 차가 경매에 붙여지던 거리입니다.

간판에 내건 말은 "Buy the Best"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사라.
커피가 위타드의 상품 목록에 들어온 것은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입니다. 2000년대에는 차와 커피, 핫초코, 티웨어가 한 매장에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위타드는 어느 날 차 브랜드에서 핫초코 브랜드로 바뀐 회사가 아닙니다. 140년 동안 파는 품목을 조금씩 늘려온 회사입니다.
이름도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2. ‘첼시’는 처음부터 있던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회사를 'Whittard of Chelsea'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첼시에서 시작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위타드가 첼시에 자리 잡은 것은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1940년, 독일군은 런던을 대규모로 폭격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시기를 'The Blitz'라고 부릅니다. 밤마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고 주택과 상점, 창고가 잇따라 파괴되던 때였습니다.
그해 말 위타드의 창고도 폭격으로 무너졌습니다.
월터의 아들 딕과 휴는 상점과 본사, 창고, 커피 로스터리를 모두 옮겼습니다. 새로 자리 잡은 곳이 첼시의 풀럼로드(Fulham Road) 111번지였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 'W.H. Whittard & Co.'라는 이름은 지금의 'Whittard of Chelsea'로 바뀝니다.
전쟁 때문에 옮겨간 동네의 이름이 수십 년 뒤 브랜드 이름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사이 첼시라는 동네가 가진 이미지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첼시는 오래전부터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던 지역이었습니다. 16세기에는 토머스 모어를 비롯한 왕실 인사와 귀족들이 템스강변에 큰 저택을 세웠고, 한때는 '궁전들의 마을(Village of Palaces)'로 불렸습니다. 킹스로드는 원래 찰스 2세가 이용하던 왕실 전용 도로였습니다.
하지만 첼시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돈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예술가들이 모였습니다. 템스강변의 체인 워크에는 화가 로세티와 휘슬러가 살았습니다.
그리고 1955년,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킹스로드 138번지에 부티크 '바자(Bazaar)'를 엽니다.
바자는 당시의 고급 매장과 달랐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손님에게 음료를 내주고,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열었습니다. 주변에는 젊은 예술가와 영화감독,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첼시 세트(Chelsea Set)'라고 불렀습니다.
메리 퀀트는 짧은 치마를 대중화했고, 킹스로드는 1960년대 '스윙잉 런던'을 상징하는 거리 중 하나가 됩니다.
오래된 부(올드 머니)와 새로운 취향이 한 동네에서 만났습니다.

1970년대에는 첼시의 슬론 스퀘어(Sloane Square) 일대 상류층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슬론 레인저(Sloane Ranger)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1982년 앤 바와 피터 요크가 펴낸 《공식 슬론 레인저 핸드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이 말은 특정한 계층과 생활방식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위타드는 그때 이미 첼시에 있었습니다.
회사가 첼시의 이미지를 노리고 이름을 바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Chelsea'라는 지명은 위타드의 브랜드 이미지와 잘 어울렸습니다.
오래된 부와 예술, 패션, 새로운 취향이 함께 쌓인 동네였기 때문입니다.
전쟁 때문에 옮겨간 곳이 시간이 지나 브랜드 이름이 되었고, 그 이름은 위타드에 단순한 주소 이상의 이미지를 더했습니다.
3. 2008년, 오래됐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위타드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것은 2008년 금융위기보다 전이었습니다.
1990년대 빠르게 매장을 늘렸지만, 2000년대 들어 성장이 둔화됐습니다. 온라인 사업에도 큰돈을 들였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고, 한동안 적자가 이어졌습니다.
2005년에는 매출도 다시 줄고 있었습니다. 위타드는 런던 중심부와 공항, 관광지에 매장이 많았는데, 그해 7·7 런던 테러 이후 외국인 방문객이 감소하면서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해 12월, 아이슬란드 투자회사 바우거(Baugur)가 위타드를 약 2,150만 파운드에 인수합니다.

하지만 주인이 바뀐 뒤에도 실적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2007년 3월 결산에서 위타드는 320만 파운드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도 판매 부진과 수익을 내지 못하는 매장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그 상태에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위타드에 자금을 지원하던 아이슬란드 은행 Landsbanki가 무너졌고, 자금 지원도 끊겼습니다. 이미 판매 부진과 적자를 겪고 있던 위타드로서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2008년 12월 23일, 위타드는 법정관리에 들어갑니다.
당시 영국 전역에 약 130개의 매장이 있었고 500명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위타드는 같은 날 사모펀드 EPIC에 인수됐고, 영업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때 위타드는 122년 된 회사였습니다.
122년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사업이 유지되지는 않았습니다.
4. 매장은 줄이고, 브랜드는 다시 정비했습니다

2008년 이후 위타드는 매장을 크게 줄였습니다. 법정관리 당시 약 130곳이던 영국 매장은 지금 40여 곳입니다.
매장 수만 줄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팔 것인지도 다시 정리했습니다.
위타드가 주목한 고객은 새로운 맛을 시도하고, 좋은 제품에는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건강과 웰니스에도 관심이 많은 도시의 젊은 소비자였습니다.
제품도 이에 맞춰 손봤습니다. 전통적인 홍차만 강조하는 대신 차와 허브 인퓨전, 커피, 핫초코 등 다양한 음료를 함께 보여줬습니다.
매장도 바뀌었습니다. 회사는 당시 변화를 설명하면서 제품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매장 디자인과 동선, 고객 경험까지 다시 정비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시장도 넓혔습니다.
2016년에는 중국 티몰에 입점했습니다. 이때 위타드는 130년 넘게 차와 커피, 코코아를 다뤄온 영국 브랜드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웠습니다.
2017년에는 변화가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매출은 전년보다 20.5% 늘어난 3,470만 파운드가 됐고, 140만 파운드 적자였던 순이익은 25만 1천 파운드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해외 매출은 51%, 영국 매출도 18% 늘었습니다.
당시 CEO 마크 던힐은 이 결과를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의 성과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위타드는 2019년 대만, 2022년 한국으로 시장을 넓혔습니다.
그 변화는 지금의 핫초코 진열대에서 가장 선명하게 보입니다.
5. 맛이 왜 이렇게 많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맛이 많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씩 읽어보면 조금씩 역할이 다릅니다.
먼저 럭셔리 밀크, 럭셔리 화이트, 70% 코코아처럼 기본이 되는 맛이 있습니다. 핫초코를 사러 온 사람이 가장 쉽게 고를 수 있는 제품들입니다.
그다음에는 솔티드 캐러멜, 오렌지, 헤이즐넛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핫초코보다는 새롭지만, 이름만으로도 어떤 맛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티키 토피 푸딩, 루바브 앤 커스터드, 블루베리 치즈케이크, 통카 빈, 당근 케이크처럼 조금 낯선 맛들이 나옵니다.

실제로 위타드는 핫초코 선물세트를 '클래식 컬렉션'과 '큐리어스 컬렉션'으로 나눠 판매합니다. 익숙한 맛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을 따로 묶어놓은 것입니다.
공식적인 구분은 두 가지지만, 진열대 전체를 보면 저는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준이 되는 맛,
익숙한 맛의 변주,
그리고 호기심을 만드는 맛.
당근 케이크가 실제로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제품이 하나 있으면 진열대를 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당근 케이크?"
한 번 더 읽게 됩니다. 옆에는 어떤 맛이 있는지 보고, 다른 제품도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새 위타드의 핫초코 전체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매출을 만들고, 낯선 제품은 브랜드를 구경하게 만듭니다.
모든 제품이 같은 역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6. 차는 설명이 필요하고, 핫초코는 이름만으로도 고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차를 생각해 봅니다.
차는 알아갈수록 재미있는 상품입니다. 다즐링과 아삼이 다르고, 산지와 등급이 있고, 물의 온도와 우리는 시간에 따라 맛도 달라집니다.
알고 마실수록 보이는 것이 많아집니다.
반대로 처음 사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다즐링과 아삼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에게 두 통을 보여주면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솔티드 캐러멜 핫초코'는 이름만 읽어도 대략 어떤 맛일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차는 설명을 들을수록 매력이 커지고, 핫초코는 이름만으로도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둘 중 하나가 더 좋은 상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처음 고르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위타드처럼 차와 핫초코를 함께 파는 브랜드에서는 핫초코가 더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상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에 대해 잘 몰라도 고를 수 있고, 맛을 상상하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7. 한 통의 핫초코를 선물로 만듭니다

위타드는 핫초코를 한 통씩만 팔지 않습니다.
세 가지 맛을 묶은 트리오가 있고, 여러 맛을 한 상자에 담은 클래식 컬렉션과 큐리어스 컬렉션도 있습니다.
한 통을 살 때는 하나의 맛을 고릅니다.
하지만 여러 맛을 묶는 순간 상품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솔티드 캐러멜 한 통을 주는 대신, 여러 종류의 핫초코를 하나씩 맛보는 재미를 함께 줄 수 있습니다. 받는 사람은 그중 어떤 맛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골라볼 수 있고, 평소라면 사지 않았을 맛도 한번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위타드처럼 맛의 종류가 많은 브랜드에는 이런 구성이 잘 맞습니다.
익숙한 맛만 묶을 수도 있고, 일부러 낯선 맛을 골라 'Curious Collection'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낱개로 놓여 있을 때는 각각의 제품이지만, 한 상자에 모이면 하나의 테마가 생깁니다.
위타드는 여기서 핫초코의 쓰임을 한 번 더 넓힙니다.
내가 마시는 음료였던 것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선물이 됩니다.
크리스마스, 생일, 집들이, 감사 인사처럼 핫초코와 직접 관계없는 순간에도 제품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한 통일 때는 음료에 가깝지만, 여러 맛이 함께 놓이면 선물하기 좋은 구성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고르고, 비교하고, 나눠 마시는 재미가 함께 들어갑니다.
8.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위타드를 기억합니다

위타드는 자신을 핫초코 회사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차와 커피, 코코아를 오랫동안 다뤄온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성장 전략을 설명할 때도 차와 허브 인퓨전, 건강과 웰니스에 관심이 많은 젊은 소비자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위타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꼭 회사가 강조하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는 차 때문에 위타드를 알게 됩니다.
누군가는 런던 여행에서 산 틴케이스를 기억하고, 누군가는 선물세트를 받으면서 처음 이름을 알게 됩니다.
저처럼 핫초코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에서 본 첼시 이야기와도 비슷합니다.
위타드는 플리트 스트리트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Chelsea'라는 이름이 브랜드의 일부가 됐습니다.
차에서 시작한 회사지만, 지금은 핫초코 때문에 위타드를 알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는지와 사람들이 실제로 기억하는 모습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그런 기억이 하나만 남는 것도 아닙니다.
차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핫초코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무리

1886년의 위타드와 지금의 위타드를 나란히 놓아봅니다.
한쪽에는 런던에서 차를 팔던 작은 상점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차와 커피, 수십 가지 맛의 핫초코와 선물세트를 파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가 한 번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차를 팔던 가게에 커피가 들어왔고, 전쟁 때문에 옮겨간 첼시는 훗날 브랜드 이름이 됐습니다.
핫초코와 티웨어가 더해졌고, 매장을 늘렸다가 다시 줄였습니다.
해외 시장으로 나갔고, 익숙한 맛 옆에 당근 케이크 같은 낯선 맛도 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140년의 헤리티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 이 모든 시간이 쌓인 결과일 것입니다.
헤리티지는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그때 내린 선택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도 있고, 새로 시작한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마치 처음부터 그 브랜드의 일부였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Chelsea'라는 이름이 그랬고, 어쩌면 핫초코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는처음 무엇을 팔았는지를 끝까지 지키는 브랜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새로운 이유를계속 발견하는 브랜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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