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을 좋아합니다. 떡볶이, 튀김, 순대, 김밥, 어묵, 떡꼬치, 붕어빵… 보통 때도 맛있지만, 멘탈이 갈린 날 먹으면 특히나 맛있습니다.
왜 그럴까. 분식이라는 말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런 날과 퍽 어울릴 수밖에 없다고 느껴집니다.
가루 분. 먹을 식. 가루로 만든 음식.
기반이 가루이며, 그 가루가 물을 먹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 그 지점이 분식을 찾는 제 하루 운세와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분식. 오늘날 분식은 꼭 밀가루로 만든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 길거리 음식을 아우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열량 대비 영양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포만감 하나는 끝내준다는 점은 높이 삽니다. 그 장점을 극대화하기 좋은 최상의 입지는 바로 학교 앞.
얼마 전 동네 학교 앞 분식점에 갔습니다. 방과 후 속셈학원과 태권도장을 다녀온 듯한 두 아이가 나란히 서서 떡볶이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누나와 초등학생 동생. 우물우물 볼 안쪽 떡을 씹으며 메뉴판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떡볶이 얼마, 컵볶이 얼마. 요즘 비싸다. 그래도 여기 정도면 저렴한 편이다. 대화 끝 나란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컵 안에 든 어묵 국물을 홀짝이며 들이키고는 쓰레기통을 찾아 입가를 닦던 냅킨을 버렸습니다. 사장님께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자리를 뜨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경쾌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바라본 분식집 한쪽 벽면. 그곳을 다녀간 아이들이 남긴 메모가 한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사장님 착해요. 사장님 아프지 마세요. 사장님 맛있어요. 학교 앞 분식 너무 좋아요. 떡볶이 맛있어요. 하트. 똥강아지가 인정하는 맛집. 느낌표 두 개. 귀여운 낙서들.
어느덧 찾아와 곧 떠날 봄. 어쩌면 마지막 붕어빵을 주문하고 서 있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컵볶이를 내미셨습니다. 주문할 때 가게 앞으로 버스가 요란하게 지나갔는데 아마도 그 바람에 분식점 사장님이 잘못 들으시고는 컵볶이와 붕어빵을 준비해 주신 듯했습니다. 잠시 당황하다가 엉겁결에 모든 값을 치르고 두 손 가득 분식을 들고 나왔습니다.
집에 온 저는 혈당 스파이크에 멍해지는 몸을 뒤척이며 침대 근처에 두고 사는 책 속에서 다음 문장을 만났습니다.
- 구름은 얼마나 높이 있어, 라이너스?
- 아, 구름마다 각각 달라…. 어떤 것은 ‘아득히 높이’에 있고 어떤 건 ‘바로 위 높이’에 있지.
- 설명이 그게 뭐야?
- 때로는 비전문적 언어를 고수하는 게 가장 좋은 법이거든!
『피너츠』의 세 인물. 샐리의 질문과 라이너스의 답변, 찰리의 반문과 라이너의 답변으로 이어진 짤막한 대화에서 요즘 제게 필요했던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정확한 설명보다는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는 것. 한동안 그러한 일에서 멀어졌고 그 때문에 기분 좋은 긴장감을 못 느끼고 지냈다는 것을 자각한 봄입니다.
이 봄, 가능하다면 떨어지는 꽃잎 하나 잡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떨어진 꽃잎을 주워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 앞 분식집 벽에 붙어 있던 메모들. 신속 정확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주린 배를 채워주는 사소한 일들. 생활에 밀착한 시시콜콜한 일을 다시금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메일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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