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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영국에서 맨땅에 헤딩하기

디자인 인턴십을 구하기까지 7개월

2023.11.07 | 조회 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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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영국에서 워홀 2년, 취업 5년 살며 겪었던 문화충격 및 소소한 에피소드

안녕 구독자😁 주 1회로 바꾸니까 진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잠깐 여행도 다녀오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왁자지껄 보냈어. 이제 이번주부터는 다시 루틴으로 돌아가려고! 

자, 오늘은! 영국에 가서 어떻게 맨당에 헤딩했는가에 대해 얘기하려고 해! 아마 이게 가장 궁금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얘기가 좀 길어질수도 있으니 스크롤 주의~😆

 

2013년 9월 1일, 덜덜 떨며 영국땅을 밟았어. 만 24세의 나는 왼쪽 팔에 새긴 ‘초월’이라는 타투가 무색하게 걱정과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지. 

영국에서 유학을 해 본 적도 없어, 한국에서 일한 경력도 없어, 영어도 잘 못해.그렇다고 디자인 실력이 좋은가? 아직 학생티를 벗지도 못했어.영국에 혈연, 지연이 있는 것도 아니야...이런 내가 진짜로 영국에서 일을 구할 수 있을까?

 

1_어학연수 2개월

첫 두 달 동안은 옥스포드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어학원을 다녔어. 오기 전 알아봤을 때 어학원을 너무 오래 다니는 게 별 효과가 없다고들 하더라고. 원어민 딱 한 명에 나머지는 다 외국 학생들에, 한국학생까지 있을 터이니 영어를 늘리기엔 돈만 나간다고 하던데 맞는 말 같았어. 그래서 짧고 굵게 2개월로 잡았어. 동시에 내 전공을 살린 그래픽 디자인 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어. 나의 계획은 낮에는 학원에서 영어공부를, 저녁에는 집에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었어. 참고로 여기서 포트폴리오는 내가 작업한 대표적인 디자인을 PDF형식으로 모아놓고 설명하는 형식이었어. 어학원 끝날 때까지 포트폴리오를 완성한다면 런던으로 이동해서 바로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결과는...

엉망진창😵‍💫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외톨이를 자처했고 영어 숙제만 집에서 했어. 영어공부편에서 말했듯이 전형적으로 ‘책으로 배웠어요’ 행동을 하고 만 거야. 그 덕에 회화 실력은 제대로 늘지 않았어. 그렇다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느냐? 하.나.도 못했어😰 ‘아,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완벽하게 해야한다는 스트레스로 자꾸만 미뤘어.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몽땅 놓치고 말았어😂

 

2_본격 런던 라이프🏙️

11월, 어학연수가 끝나고 옥스포드에서 런던으로 이사갔어. 홈스테이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4명의 사람들과 낡은 2층집에서 같이 살았어. 월세는 약 100만원,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고 내가 점찍어 놓았던 동네 달스턴에 위치해있었지. 화장실은 1개뿐이었고, 걸어다닐 때마다 복도 계단은 삐걱거렸어. 하우스메이트는 모두 20대 중후반에 한국 여자 2명, 영국 남자 1명, 이집트 남자 1명이었어. 특히 한국인 하우스메이트는 모두 워킹홀리데이로 온 친구들이라 쉽게 친해졌어. 우리는 밤마다 마실 나가듯 동네 클럽이나 바를 배회하고 다녔지. 우리 셋 모두 머나먼 땅에서 많이 외롭고 불안했었지...그래서 안타깝게도 놀던 그 순간을 즐겼던 적이 별로 없었어. 집에서 한껏 꾸미고 왔으면 그저 재밌게 춤을 출 만도 한데 음악이 별로라는 이유로, 귀여운 남자가 없다는 이유로 인상을 팍 쓰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있는 경우가 많았어. 

 

포트폴리오 + 봉사활동 루틴

애써 마음을 다잡고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동안 영어실력을 늘려봐야겠다고 마음 먹었어. 옥스포드 홈스테이 아주머니가 추천하셨던 ‘옥스팜’이 마침 동네에 있었어. 이전 레터에서 언급했듯이 옥스팜(Oxfam)은 중고물품을 판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선 가게였어. 용기 내서 지원서를 냈고 다행히 주 2회씩 그곳에 가서 일하기 시작했어. 그곳에는 중년층의 봉사자가 많았어. 악센트가 다 달라서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지만 다들 친절하셨구. 가나출신 아저씨, 이스트 런던출신 아주머니, 스페인출신 아주머니 등 정말 다양했어. 신기했던 건 다들 부유하기보다는 빈곤층에 가까워보였어. 허름한 옷에 투박한 말투를 썼지만 그들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

이와 동시에 단기 알바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어.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참... 하나만 집중해서 못 하는 것 같아. 불안하니까 여러개를 동시에 함... 😅 조금이라도 용돈을 벌어야겠다는 압박감이 들었어. 부모님이 집세는 지원해주셨지만 이제 대학도 졸업했고 죄책감이 들더라고...  단, 아무리 일을 못 구해도 절대 한국 가게에서 일을 찾지는 않기로 다짐했어. 일회성으로 한국 명품 구매대행 알바를 해보긴 했지만 계속 하지는 않았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한국에서와 ‘다른’ 경험이었기 때문에 한국 문화 속에서 한국어를 하며 일을 하고 싶지 않았거든. 아무리 돈이 필요할지언정, 이왕이면 내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

“I’m a fast learner!(나는 습득력이 빨라!)”

영어 못하는 내가 일 구하느라 힘들어하자 하우스메이트 카림이 알려준 표현이었어. 알바를 지원할 때 그집 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하더라고. 서투르지만 계속해서 저 문장을 읊조렸어. 동네 근처의 레스토랑과 카페, 펍을 돌아다니면서 이력서를 돌렸지. 하지만 영어도 서툴고 자신감도 없으니까 계속해서 떨어졌어. 디자인 인턴은커녕 서비스 직업까지 안되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하더라. 내 마음은 점점 더 영국의 겨울처럼 흐리고 어두워졌어.

어느 날, 술을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고 펍문화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지만 집근처 펍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어. 사장은 없고 직원만 있었는데 내가 알바를 하고 싶다고 하자 덜컥 기회를 주는거야. 손님이 왔고 나보고 손님에게 맥주를 줘보라고 하더라고. 덜덜 떨며 맥주탭에서 맥주를 내렸어. 초보티 팍팍 나게 컵에는 맥주거품이 수북이 쌓여 있었지. 손님에게 천천히 컵을 내밀었어. 펍 직원은 사장이 지금 CCTV를 통해서 나의 트라이얼을 보고 있고 결과는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어. 문을 열고 나갔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어. 이번에도 망한 것 같았어.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기분인거야~! 지금 한 트라이얼은 분명히 떨어질 것 같았지만 묘하게 조만간 일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싹 텄어. 사람은 바닥 끝까지 실패하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까? 비를 오롯이 맞으며 알 수 없는 낭만을 느끼며 걸어갔어. 

역시나 펍 알바는 떨어졌어.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상을 이어나갔어.  그날 이후 묘하게 믿음이 생긴 건지 담담한 마음이었어. 옥스팜으로 봉사활동을 가고, 영국 드라마를 보며 영어공부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 어느 오후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발품을 팔러 나갔어. 그때 집근처 ‘오이시이’라는 일식집에 갔는데 동유럽계 젊은 여자애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더라고. 

"너네 혹시 알바 구하니?"

"음... 잘 모르겠지만, 사장님한테 말해볼게. 아마 구할 것 같아!"

그 아이는 밝게 미소를 지으며 내 전화번호를 받았어. 드디어 일이 풀리려나?

 

처음으로 돈을 벌다!

다음날 전화가 왔고 2014년 3월,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돈을 받으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 사실 그 레스토랑은 음침했어. 일본식당이지만 일본인이라곤 웨이터 1명뿐인 야매 냄새폴폴 나는 곳이었지. 쉐프는 인도, 러시아에서 온 교육수준이 낮아보이는 남자들이었고 매니저는 태국인이었어. 당시 최저시급은 £6.31이었는데 나한테 그것보다도 낮은 £5로 시급을 준다는 거야😠 내가 발끈하자 매니저는 내게 가까이 와서 속삭였어. ‘대신 현금으로 줄게!’

일을 구하기 힘든 외국인 노동자를 이용해먹는 곳이 확실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뻤어. 대학을 졸업하고 드디어, 영국에 와서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시작한 내가 자랑스러웠어. 그동안 발품 팔며 고생하고 겨우 얻어낸 씨앗이니까 이것마저 소중하더라고..

 

알바 + 디자인 인턴십 루틴

이 기세를 몰아 드디어 디자인 일자리에서도 좋은 신호가 오기 시작했어. 이때쯤 드디어 포트폴리오를 완성했거든😂 일식집 알바를 하면서 디자인 전문 구직사이트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보내기 시작했어. 주니어 디자이너나 그래픽 디자인 인턴십 자리가 보이면 모조리 지원했어. 계속 떨어진지 두 달정도 되었을 무렵 딱 두 곳에서 연락이 왔어. 두 곳 모두 스타트업이었어. 첫번째 회사는 인터뷰를 했지만 떨어졌고 두번째 회사는 아슬아슬하게 내게 기회를 주었어. 대표는 내가 지원했던 주니어 디자이너는 이미 뽑았지만 내 포트폴리오가 인상 깊다며 인턴십을 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어. 그렇게... 그곳이 내 첫 직장이 되었어!!🥹 그곳은 ‘월드 뉴스’라는 온라인 뉴스매거진 회사였어. 인턴으로 한 일은 기사에 필요한 인포그래픽(지도, 그래프 등)을 만드는 일이었어. 드디어 내가 하고 싶어하던 디자인일까지 내 일상에 포함된 거야🎉  사실 여기도 따지고 보면 돈을 정말 조금 주고 이용해먹는 느낌었지만,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뭐든 좋았어. 게다가 당시 인포그래픽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곳에서 내 실력을 성장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이후 낮에는 디자인 인턴십을, 저녁에는 일식집에서 알바를 하였어. 

드디어 커리어 시작!

어렵게 바위에 금을 냈더니 결국 바위는 서서히 갈라지더라. 3개월 뒤 7월, 나는 월드뉴스에서 정규직 디자이너가 되었어!  직원이 총 8명인 작은 회사였지만, 유일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디자인 관련된 모든 작업을 하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어! 점심 시간에 엄마한테 전화로 이 소식을 전하며 방방 뛰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봉사활동에서 일식집 알바로, 일식집 알바에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장작 7개월이 걸렸어. 마치 지도에 표시된 동그라미를 하나씩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한 느낌이랄까. 불안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결과였다고 생각해. '이때 좀 덜 불안해하고 좀더 여유롭게 그 과정을 즐겼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한 적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렇게 능글맞게 변한 건 그때의 서툰 내가 있었기 때문이야'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어. 모든 것이 처음이라 소심하고 풋풋했던 그때의 나에게 고마워. 나 정말 고생 많았다! 

구독자는 과감하게 도전해본 적 있어? 인생에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원하던 꿈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영국에 오기 전 내가 자주 보던 웹툰 '펭귄 러브스 메브'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었어.

마음을 따르고 용기를 내었더니 정말 재빠르게 멋진 기회들이 찾아와 준거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도전하고보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얘기였어. 그걸 보고 나도 용기가 나더라구🥹. 이번 레터도 내가 본 웹툰처럼 구독자에게 영감이 되었기를 바라.

그럼 다음주 화요일에 또다른 이야기보따리 안고 돌아올게!

이번 한 주 잘 지내😊

 

*본 레터 속 등장인물과 회사 이름은 가명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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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영국생활에 대해 궁금한 게 있거나 피드백을 주고 싶다면 연락줘~!

- 이메일: bravekima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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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느리

    0
    11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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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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