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야(아), 잘 있었어???
진짜 진짜 오랜만이지 ㅜㅜ 마지막 레터를 보낸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더라고. 그런데도 신기하게 구독자가 한 명도 안 줄고, 오히려 한두명 늘어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야🥹 보통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잖아. 근데 이번에 새삼 깨달은 게 있어. 사람이 잠수 타는 이유는 그 사람이 힘들기 때문이더라고. ^^^^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만큼, 서론 길게 안 하고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나 드디어… 런던에서 풀타임 취업했어!!! 그것도 무려 1년 반 만에…^^

작년 이맘때쯤, 런던에서 취업이 너무 안 돼서 이것저것 단기 알바도 해봤다고 했었잖아. 그 이후에도 시간이 주르륵 흘러서, 2026년 2월이 되어서야 겨우 풀타임 브랜드 디자이너가 됐어. 와 진짜… 이 한 줄 쓰려고 마음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돌아온 기념으로, 지난 1년 동안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조잘조잘 풀어보려고 해.
영국인 듯 영국 아닌 영국 같은 생활
처음 내 레터를 읽는 구독자도 있을 수 있으니 아주 짧게 설명해볼게.
나는 영국에서 7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가서 3년 살고, 2024년 9월에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어. 이번에는 한국인 남편까지 +1로 데리고 말이야.
오기 전엔 남편 앞에서 아주 당당했지. “걱정 마~ 내가 가면 금방 취업할 거야. 너는 천천히 적응해.”
왜냐면 나름 근거가 있었거든. 예전에는 비자가 약점이었어도 영국에서 스폰서십 받아서 결국 일을 구했거든. 그때는 영어도 지금보다 못했고, 경력도 더 적었고, 조건도 훨씬 불리했어. 그런데도 해냈으니, 이번엔 영주권자에, 경력도 많고 영어도 더 익숙하니까 솔직히 3개월 안에는 취업할 줄 알았어.
근데… 이게 웬걸?
진짜 안 되는 거야.
예전에는 100군데 지원하면 그래도 몇 군데서는 면접 제안이 왔거든. 그런데 이번엔 300군데 넘게 지원했는데도 연락이 거의 안 왔어. 와도 1차에서 끝. 아니면 그놈의 자동 거절 메일.
“Thank you for your application, unfortunately…”
이 문장만 수십 번 본 것 같아. 이제 폰 화면 미리보기에 unfortunately가 뜨면 제대로 읽지도 않았어. 답장도 없이 잠수 타는 회사는 또 얼마나 많고👻
그렇게 3개월, 6개월, 9개월…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대체 영국에 사는 게 맞나 싶더라고.
왜냐면 생활도 너무 한국식이었거든. 처음엔 6개월 안에 취업할 줄 알고, 공유하우스 말고 방 2개짜리 집을 단독으로 빌렸어.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잘 살아보자~ 했지. 근데 현실은?
집에서 한국 음식 해먹고, 친한 친구들은 거의 한국인이고, 저녁엔 ‘나는 솔로’, ‘결혼지옥’, ‘이숙캠’ 같은 자극적인 한국방송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거야.
이쯤 되면 말이야. 내가 런던에 사는 건지, 한국에 사는 건지 헷갈리더라고.

영국 물가가 워낙 살인적이라 외식은 거의 못 했고,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났어. 이건 한국에서 방구석에 콕 박혀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어. 그러니 뉴스레터에 쓸 말도 1도 없었고...
그렇게 1년이 더 지나버렸지 뭐야🍂
낭만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로
요 몇 년 동안 뼈저리게 깨달은 게 있어.
예전의 나는 진짜 낭만주의자였거든. 늘 자유를 꿈꾸고, 회사에 안 다녀도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회사를 다니는 삶은 boring하고,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영국 클라이언트와 원격으로 일하면 잘 먹고 잘 살 줄 알았어. 일당이 훨씬 높으니까!
근데 말이야… 그 낭만, 현실 앞에서 와르르 무너졌어.
일단 요 몇 년 사이 영국 원격근무 조건이 까다로워져서 시차 2시간 이상 차이 나는 곳과는 아예 프리랜서로도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영국으로 돌아갔는데, 또 하나의 장벽이 있었어. 바로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일당을 제값으로 주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그렇게 나는 지난 몇년간 경제적으로 허덕이게 되었어.
MBTI로 말하면 난 정말 초 N, 초 F였어. 상상과 느낌으로 사는 인간. 끌어당김의 법칙, 확언, 마음 훈련, 좋은 기운… 이런 건 열심히 했는데 정작 현실적으로 필요한 일은 자꾸 미뤘거든. 근데 몇 년을 궁상맞게 살았더니 사람이 바뀌더라🤣
아침에 눈이 절로 떠지고, 예전엔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야만 뭐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집 책상에 바로 앉아서 제일 중요한 일부터 했어. 나는 원래 미루기의 대가였는데, 생존 모드가 켜지니까 우선순위부터 찾게 되더라고.
소비 습관도 완전히 바뀌었어. 예전 같으면 불편한 게 생기면 아마존이나 쿠팡으로 바로 해결템부터 샀거든. 근데 이제는 참고 또 참았어. 이게 진짜 필요한 건지, 없어도 버틸 수 있는 건지, 한참 고민했어.
내가 한국에 살 때는 돈도 안 벌면서 꽃 구독서비스도 해봤던 인간이거든. 근데 런던에 다시 와서는 커피캡슐 구독도 끊고, 단백질 쉐이크도 끊고, 외식도 끊고, 최대한 집밥만 먹었어. 친구를 만나는 대신 통화로 수다를 떨었지.
가장 힘들었던 건 공과금이었어. 정말 한국 공과금은 양반이었어.. 우리 집세는 런던에서 방 2개짜리치고 아주 비싼 편은 아니었거든. £1525 (약 300만원, 보통 방1개짜리 가격^^;). 문제는 그다음이었지.
구청세금이 £260~290(약 50-57만원). 겨울 전기세는 월 £400 (약 78만원).

심장이 덜컥했어. 집세도 큰데 공과금이 이렇게 붙으면, 저축해 둔 돈으로 버티는 사람은 진짜 숨이 막힐 일이잖아 ㅜㅜ 우리 부부가 돈을 적게라도 벌고 있다만 이건 너무 타격이 큰 돈이었지.
그래서 결국 1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다시 공유하우스로 옮겼어. 지금은 방 4개짜리 집에 총 6명이 사는 하우스에서, 우리 둘이 가장 큰 방 하나를 쓰면서 공과금 포함 월 £1000 (약 196만원)을 내고 살고 있어. 중요한 건 더이상 공과금을 따로 낼 걱정이 없다는 점. 공과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제서야 실감했어. 물론 더 북적이고, 더 좁고, 이상적으로 보자면 한참 후퇴한 것 같지. 근데 마음은 훨씬 가벼워졌어. 우리 부부가 만약 겨울에 그 집에 그대로 살았다면 집세로 낸 총 가격이 얼마였을지 상상조차 하고싶지도 않아.
고정지출을 아끼는 게 얼마나 안도감을 크게 주는지 배우는 계기가 됐어. 이걸 줄이면 얼마를 아낄 수 있는지, 저축이자가 높은 은행이 어디인지 보고, 무료 전자도서관에서 경제책을 빌려 읽고, 유튜브로 경제 관련 콘텐츠도 자주 보기 시작했어. 그렇게 나는 어느덧 꽤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지. 부작용으로 일상이 좀 건조해졌지만… 생존할 땐 낭만보다 고정수입이 먼저더라구😭
이번엔 될까? 안 되겠지? 그래도 해 보자
사실 완전히 돈을 못 번 건 아니었어. 작년 8월부터 사이버보안 스타트업에서 파트타임 브랜드 디자이너 일을 하기 시작했거든. 원격으로 주 2~3일 정도.
처음엔 너무 감사했지. 이 와중에 나를 써주는 회사가 있다는 게 어디야 싶었거든. 근데 문제는 돈이었어.
프리랜서처럼 쓰는데, 프리랜서 일당이 아니라 pro rata 방식으로 주는 거야. 쉽게 말하면 “연봉 기준 하루치 돈”으로 계산해서 주는 구조. 그 말은 즉슨…
프리랜서의 리스크는 다 내가 지는데, 페이는 회사원 기준이라는 뜻. 적어도 회사원은 주 5일 다니니까 월급이 나보다 훨씬 많겠지, 난 주 3-4일 하니까 당연히 페이가 적었어.
내가 원래 받던 프리랜서 일당의 반값이었어. 그러니 동기부여가 안 되더라고. 내가 원래는 이거의 두 배는 받았어야 했는데..나의 가치를 반값으로 내리다니. 자존심도 상했지만 클라이언트가 없다보니 그만둘 수도 없었어.
한편으론 “고정 수입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엄청 소중했어. 그래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되, 얼른 더 나은 풀타임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9월, 10월, 11월, 12월… 계속 지원했어. 면접 제안은 간간이 왔지만, 대부분 면접과정은 3단계 이상이었고 항상 1단계에서 떨어졌어. 이쯤 되면 면접도 패턴이 보이더라고...
이 루트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몰라. 하도 1차에서 떨어지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열심히 준비하는 것도 독이 되는 것 같았어. 며칠 내내 공부하고 준비한 만큼 “이번엔 제발 잘해야 해”라는 압박감이 오히려 너무 커지는 거야. 그래서 나중엔 태도를 바꿨어.
어차피 안 될 확률이 크니까 할 만큼만 하자.
묘하게 그게 더 낫더라고. 막 미친 듯이 공부하고 집착하면 오히려 더 떨었어. 차라리 “뭐, 안 되면 말고” 모드로 갔을 때 말이 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구.
그런데도 탈락은 계속됐지.
특히 12월에 한 회사는 진짜 좀 기대하게 만들었어. 프랑스에 본사를 둔 테크 회사였는데, 이상할 정도로 절차가 빨랐거든. 1차 통과, 2차도 통과, 과제 발표도 통과. 무려 5단계 프로세스 중 3단계를 넘었어.
그때부터 심장이 뛰기 시작했지. “어? 설마 이번엔 진짜 되나?”

연봉 범위도 상당히 높았고, 면접관 분위기도 좋았어. 그렇게 다다른 4단계 컬처핏 면접....근데 여기에 3명의 면접관이 있었는데 한 명이 유독 기술 질문을 하는 거야. 그 회사는 웹3, 미래 금융테크에 대한 곳이라 그 세계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 나는 배우는 중이고, 들어가면 열심히 익히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는데… 계속 질문하던 그 사람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어.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Unfortunately 메일을 받고 말았어.

그게 바로 1월 중순이었어. 한 달 동안 공부하고 연습하고 희망 품고 있던 시간이 또 한 번 허무하게 끝난 거지. 하도 떨어져서 좀 덤덤할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나더라.
“아니 진짜 왜 이렇게까지 안 되지?” “1년 반이면 이제 뭐라도 돼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뭐 먹고 살지?” “그냥 한국으로 가야 하나?” "나만 뒤쳐진 기분 언제까지 느껴야 하는 거야 대체..."
포기하려던 순간, 반전은 제일 가까운 곳에
쓰라린 탈락을 겪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어. 아까 말했던 파트타임 회사와 여전히 일은 하고 있었어. 그들과 풀타임 전환 관련해서 얘기하기로 한 날이 있었거든.
사실 별 기대를 안 했어. 요즘 그 회사에서 내게 시키는 일거리가 많지 않았고, 커뮤니케이션도 뜸했거든. 그래서 속으로는 '풀타임 제안 안 할 것 같은데? 그럼 차라리 일당이라도 올려달라고 해야지. 가만, 그냥 나 자르는 거 아냐?' 이러고 있었어.
근데 그날 아침, 또! 미팅이 미뤄졌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어. 원래 1월 초에 얘기하기로 한 게 밀려서 온 건데 또 이틀 뒤로 미루는 거야. 짜증이 확 올라왔지. 그래도 최대한 공손하게, 그러면 힌트만 좀 줄 수 있냐고 메시지를 보냈어.
그리고 답장이 왔어.
…뭐라고? 순간 눈을 의심했어. 내가 전혀 기대 안 하고 있던, 심지어 '여긴 아닐 수도 있겠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있던 그 회사에서 풀타임 전환이 가능할 것 같다고 한 거야.

대박사건… 바로 기뻐하진 못했어. 왜냐면 또 다른 걱정이 있었거든. 얘네가 주는 일당을 보자니 연봉을 엄청 짜게 줄 것 같았거든... 가슴 졸이다가 드디어 금요일에 미팅을 했고, 그들이 제안한 연봉은...다행히 내가 처음 말했던 희망 범위의 최저선이었어.
그 말은 즉, 2년 전 내 연봉보다 35% 높은 수준이라는 사실! 물론 내 주변 프로덕트 디자이너나 개발자 친구들 연봉에 비하면 아직도 높다고 하긴 어렵지. 근데 남이 아닌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게 좋다고 하잖아? 비교는 끝이 없으니까... 감사하며 안도했어.
'아, 이제 나도 숨 좀 쉬겠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지난달부터 풀타임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됐어.
다시 사회에 들어간 기분 실감
집에만 있으면서 고독하게 지내던 시간이 길었잖아. 그래서인지 출퇴근을 시작하니까, 진짜로 다시 영국 사회 안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어.
나 빼고 다 한국인 아닌 환경. 사무실에서 오가는 영국영어. 점심시간. 회의. 동료들과의 스몰토크.
이 모든 게 너무 오랜만이었어. 따지고 보면 내가 마지막으로 영국 회사에서 풀타임 직장인으로 살았던 게 2021년이니까, 거의 5년 만에 다시 그 세계로 들어온 거더라고. 근데 웃긴 건, 금방 적응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나 다시 내향인 됨😳
사무실이 크지도 않아서 내가 하는 말을 다른 동료들이 다 들을 것 같고, 괜히 내 영어를 더 의식하게 되고. 남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듣겠는데, 내 스피킹은 좀 퇴보한 느낌이었어. 원격으로 일할 땐 GPT한테 문장 다듬어달라고 해서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었는데, 오프라인에서는 그런 거 없잖아ㅋㅋㅋ 내 허술한 영어가 생으로 튀어나오니까 괜히 머쓱했어.
그래서 퇴근하면 기가 다 빨려. 요즘은 밤 12시도 되기 전에 정신없이 잠들고 있어.
구독자는 어때? 버티다 보니까 어느 순간 풀린 경험 있어?
돌아보면 나는 그냥… 눈 질끈 감고 눈물 흘리면서도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아. 그냥 계속 지원하고, 계속 떨어지고, 계속 버텼어. 그러다 진짜 이제 떠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풀리고 말았어. 사람이 내려놓아야 잘 된다는데 그 법칙이 적용된 걸지도...😌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어쨌든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건 맞나봐!!!
이제서야 다시!
신기하게 취업하고 나니까 제일 먼저 떠오른 게 뉴스레터였어.
그동안은 영국에 있어도 영국 같지가 않아서 할 말이 없었거든. 근데 이제는 다시 영국을 관찰할 여유가 생겼어. 출퇴근길, 회사 생활, 동료들, 런던 물가, 구직 시장,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감정들까지. 다시 적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지 뭐야.
벌써 메모장에 적어 둔 주제가 한가득이야. 당분간은 비정기로 보낼게. 언제 올지 모르는 깜짝 편지처럼. 이번엔 1년은 잠수 안 타도록 해볼게ㅎㅎ
그때까지 구독자(이)도 잘 지내고 있어!
2026년 3월
수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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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
쑤쑤 ❤️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쑤수 뉴스레터가 떠올랐는데, 오늘 받게 되어서 마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에요 ☺️☺️ 직장 구하느라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요! 새로운 회사에서 좋은 경험 많이 쌓아서 앞으로 쑤쑤가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되길 바라요 ❤️❤️😊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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