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새해가 된지도 어느덧 2주일이 지났어~! 뭐하고 지내? 난 요즘 일거리가 들어와서 기쁜 마음으로 외주일을 하고 있어~! 요즘 나의 일(work)에 대해 생각이 많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죄다 수입이 불안정한 것들이라 경제적 안정을 위해 또다른 일을 구해야 하거든. 일을 고를 때 경제적 안정과 하고 싶은 것에 균형을 맞춘다는 건 언제나 까다로운 문제인 것 같아. 오늘은 내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디자이너로 일했던 직장 이야기를 하려고 해.
준비 과정
때는 2014년 4월. 워킹홀리데이로 영국에 온 지 7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어.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완성한 포트폴리오로 그래픽 디자인 일을 지원하고 있었어. 다행히 영국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쓰는 자기소개서나 나이, 얼굴 공개는 할 필요가 없어. 지원하는 방법이 비교적 쉬운 편이지. 구직 사이트에서 광고를 보고 이메일로 이력서와 커버레터, 포트폴리오 파일을 보내면 끝이야. 그래픽 디자인 포트폴리오 만드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때 나는 PDF파일로 내 작업 몇 가지를 넣고 작업 컨셉, 과정 및 의도 등을 적었어. 근데... 지금 다시 보니까 진짜 어이 없게 만들어놨더라고..ㅋㅋ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모두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했는데 굉장한 흑역사야 ㅎㅎㅎ 영국의 대표가수 데이빗 보위의 트레이드 마크인 번개 페이스페인팅을 내 얼굴 일러스트에 따라 새겨놓고, 내 워홀 비자 유효기간을 머리 위에 붙였어. 그때의 나는...내가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고 2년 유효기간이 있으니 '나=인스턴트'라고 생각했나봐. 지금 생각하면 정말 쓸데없는 TMI에다가 단점으로 보이는 유효기간까지 썼다는 게 이해가 안 돼... 날 뽑아준 사람이 신기할 정도야.. 'Just add me and stir.'라니... ㅋㅋㅋㅋ 인스턴트 커피처럼 날 넣고 저으라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실제 영국인에게는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을까...😂 뽑지는 않아도 튀기는 했을 듯...
어찌됐든 이렇게 준비한 나만의 요상한 구직 세트를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보냈어. 한국에서도 경력이 없으면 잘 뽑지 않는데 영국에서는 심지어 거기서 학교도 안 나왔으니 내게 선택권은 없었지. 무급 인턴직이든 신입직이든 다 지원했어. 예상대로 수많은 거절 답장을 받거나 읽씹을 당했지. 하루하루 기가 팍팍 죽어갔지만 그래도 지원하는 걸 멈추지는 않았어. 지원한지 한 달이 지났을 즈음, 한 가닥 희망이 보이는 답장을 받았어. 며칠 전 지원했던 ‘월드 위클리’라는 곳이었어.
드디어 커리어 시작
기회에 굶주리고 있던 내게는 이마저도 단비 같은 소식이었어. 바로 약속을 잡고 사무실을 찾아갔어. 사무실은 웨스트런던의 그 유명한 노팅힐 근처, 세련된 건물에 있었어. 건물의 거대한 문을 열자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광장이 눈에 들어왔어. 요즘은 익숙한 ‘위워크(WeWork)’ 같은 공유 오피스 건물로, 힙하고 젊은 에너지가 흘러넘치더라구. 그곳엔 스타트업 회사들을 위한 작은 사무실이 모여 있었어. 파릇파릇한 기운에 눈이 초롱초롱해지더라고🤩🌱
월드 위클리는 2층 방 한 칸에 자리 잡고 있었어.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많이 얼어 있었지만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어. 회사대표 리안은 30대 중반에 키가 크고 건장한 백인 남자였어. 금발 머리에 속눈썹이 길고 푸른 눈동자에 목소리가 매력적이었어. 웃는 얼굴이라 첫 인상이 좋더라고. 큰 입으로 씨익 웃는 그의 미소에 긴장이 풀려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날 바로 인턴십 제안을 받았어. 비록 살고 있던 집에서 1시간이 걸리고 급여도 교통비만 받는 조건이었지만 내 분야의 일을 구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어. 불가능할 줄 알았는데 드디어 커리어에 작은 구멍을 뚫었구나!
첫 직장, 월드 위클리
이 회사는 그 당시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온라인 뉴스 매거진이었어. 매주 금요일 전세계 정치와 문화, 사회문제 등에 대한 소식을 발행했어.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였고, 그래픽 디자이너, 개발자, 뉴스 에디터 등 총 7명의 직원이 일하는 아주 작은 스타트업이었어. 일하고 있던 직원들도 나보다 겨우 한두 달 전부터 시작했더라고.
인턴으로서 내 역할은 기사에 들어갈 작은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것이었어. 인포그래픽(Infographic)이란 정보를 그래프나 아이콘 등으로 시각화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 디자인이야. 대학교 졸업할 때쯤부터 인포그래픽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터라 이렇게 내가 원하던 일로 경력을 시작해서 너무 기뻤어. 내가 작업한 방식은 다음과 같아. 먼저 에디터로부터 시각화할 자료를 받으면 구글 문서로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정보의 우선순위를 나누었어. 모르는 영어단어나 잘 모르는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사이트에서 검색해보곤 했어.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담당 에디터에게 물어봤어. 부족한 영어실력을 감안해서 몸짓, 낙서 등 의사소통 수단을 최대한 동원해서 얘기를 나누었어. 그렇게 정보를 흡수한 뒤, 이것을 어떻게 단순화할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구상한 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어. 아이콘을 만들고, 월드위클리 브랜드에 맞는 색과 글씨체를 써서 다양한 인포그래픽을 만들었어.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재밌었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평소 관심 없었던 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까지 배우니까 성취감이 더 크더라고. 다행히 회사 내 평가도 긍정적이었어. 특히 리안이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볼 때마다 칭찬을 쏟아부었어. 근데... 솔직히 그 칭찬이 진짠지 가짠지 의심스러웠어.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아리송했어.
알면 알수록 믿을 수 없는 대표
왜냐하면... 리안은 알면 알수록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유형이더라고. 처음에는 그가 맘에 들었었어. 정장재킷에 청바지를 입은 점잖은 차림새와 대조적으로 엉뚱하게 행동해서 피식 웃음이 나는 사람이었거든. 일하는 중에 짜증나는 일이 생기면 커다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프랑스욕 ‘퓨땅'을 중얼거리곤 했어. 프랑스에서 10년정도 살다 와서 프랑스어로 욕을 하는 게 웃기더라고. 건물 복도에서 나랑 마주치면 늘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락앤롤 제스처를 취하면서 지나갔고. (😉🤘)
그런데 점점 그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인턴으로 월급이 없는 대신 교통비 정도를 주급으로 준다고 했었어. 금요일마다 현금으로 £50(약 8-9만원)를 준다고 약속해놓고서는 매번 잊어버리는거야🤯 풋내기였던 내가 방 한칸짜리 작은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다 듣는 와중에 매번 돈을 달라고 말을 꺼내는 게 너무 거북하고 불편했어.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요구하는 것인데 나를 사채업자처럼 굴게 하는 그의 불성실함에 너무 화가 나더라고. 그는 늘 ‘아차차! 까먹었다.’고 하며 다음에 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했어. 아무리 인턴에, 영어가 서툰 외국인 노동자라 해도 이런 식으로 대우받는 건 더이상 못 참겠더라. 3개월동안 인턴십으로 경험을 쌓았으니 더 이상 이런 사장과는 얽히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만두겠다고 이메일을 보냈어. 그러자 리안은 뜻밖의 기회를 제안하는 거야. 현재 뽑은 그래픽 디자이너보다 내가 더 마음에 든다며 그를 자르고 나를 풀타임으로 앉혀주겠단다😳
인턴에서 풀타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그렇게 얼떨결에 3개월의 인턴기간을 보내고 내 인생 첫 번째 공식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어. 이제는 주급이 아니라 적지만 월급을 계좌이체로 받게 되었지🤣 작은 회사에서 유일한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하는 게 아쉬우면서도 좋았어. 배울 수 있는 사수는 없지만 내게 주도권이 있으니 좀더 넓고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였지. 매주 주제에 맞게 표지를 디자인하고, 기사에 쓰이는 작은 인포그래픽과 메인 인포그래픽을 만들고, 기사용 사진 편집까지 하게 됐어. 전공(모션그래픽)을 살려서 회사 소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도 했고. 단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정보를 명쾌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업무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웠어.
1년여의 시간이 흘렀어. 동료들과의 관계가 끈끈해지고 직장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동시에 초조한 마음도 들기 시작했어. 당시 내 계획은 워킹홀리데이 비자에서 취업비자로 전환해서 영국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이었거든. 하지만 월드위클리에 계속 있으면 그 계획이 불투명해질 것 같았어. 사장 리안의 성격으로는 그렇게 꼼꼼한 절차가 필요한 취업비자를 성사시킬 수 없을 게 분명했거든. 워킹홀리데이 기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좀더 든든한 회사로 이직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았어. 또다시 그만둔다고 말했어. 그것도 두 번이나! 그때마다 그는 매번 취업 비자를 해주겠다고 해서 찝찝한 마음으로 꾸역꾸역 일을 하게 되었어.
쓰디 쓴 결말
2015년 9월에 비자가 만료되는데 리안은 3월에서야 취업비자를 위한 스폰서십을 신청하고 있다고 했었어. 사실 취업비자 받는 과정이 적게는 3개월~6개월은 걸리는 일이라 내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조급해졌어. 내가 비자 진행이 어떻게 되가냐고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어. 그런데 내 서투른 영어표현 - "How's my visa going?"에 리안이 나한테 덜컥 화를 내는 거야. 무례하다고. 그의 입장에서는 부하직원이 자기의 권위를 떨어트리고 감히 그에게 보스처럼 물어봤다고 느껴졌나봐. 그때의 나는 한없이 연약한 어린 양이었으니 대적할 생각조차 못했어.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기다렸어. 그렇게 8월이 되었어. 비자가 만료되기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이었지. 그제서야 그는 스폰서십이 떨어졌다고 하는 거야. 자기가 어제 그 소식을 듣고는 집에서 스탠드를 부숴트렸단다. 자기는 나를 잃는 게 너무너무 아쉽지만 회사에 돈이 없어서 더이상 비자를 지원해줄 수는 없대. 하~ 하~
그런데 그때의 나는 리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순수하게 받아들이고는 오히려 괜찮다고 그를 위로했어. 동양인 특유의 순종적인 태도로 가만히 있었지. 동료들은 그의 말은 하나도 믿을 수 없다고, 분명히 내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나를 이용해먹은 것이라고 했어. 그동안의 행적으로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지만 그게 진짜 현실이 되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어. 영국에서의 삶을 ‘내'가 끝낸 게 아니라, 영국으로부터 차인 느낌이 들어서 자존심이 상했어. 펑펑 울면서 남은 한 달 동안 다른 곳에 일을 찾아보았지만 취업비자를 해줄 수 있는 곳은 찾을 수 없었어.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9월 1일 한국으로 돌아갔어.
첫 경험의 가치
영국에서의 첫 직장 경험은 이렇게 달콤하게 시작해서 쓰디쓰게 마무리되었어. 월드 위클리는 몇 년 전에 폐업했더라. 솔직히 좀 고소했어. 그래도 내 경력에 씨앗을 심어준 점에는 여전히 감사해. 무엇이든 처음 할 때는 설레면서 서툴잖아. 그런데 그 신선함 덕에 더 크게 배울 수 있는 것 같아. 지금 보면 흑역사인 10년 전 포트폴리오도 뭣 모르고 덤빈 덕에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고, 뭣 모르고 당했던 경험 덕에 이제는 부당한 대우에 당당하게 싸울 수도 있게 되었거든. 결국 두렵지만 무엇이든 일단 도전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국엔 어떻게든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니까😉
오늘 얘기 재미있게 읽었기를 바라! 이번 한 주도 잘 보내고 다음 주에 또 보자구~!!!
2024년 1월 15일
수수로부터
(등장한 사람들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하였습니다.)
혹시 런던에 살 예정? <런던 생생정보통> 한 번 읽어봐봐!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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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씨
제가 다 화가나네요. 외국에서는 아니다 싶을때는 발을 빨리 빼는게 안전하겠어요.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107)
ㅎㅎㅎㅎ 맞아요. 특히 비자와 관련되어 있는데 불안하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빼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반가워용!! 미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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