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후 지구의 기온은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에서 방출된 온실가스 탓에 기후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지요. 기후 재앙을 막아내기 위해 파리 협정이나 유엔 기후 변화 회의(COP26) 등 국제기구를 통한 노력도 진행 중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도 탄소 순배출량을 없애기 위한 ‘넷 제로’ 계획을 발표 중이기도 하고요.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기술적 발전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석탄이나 석유 등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대 문명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으니 우리는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전기 형태로 소비하게 될 거예요. 휘발유나 디젤 자동차를 전기 자동차로 바꾸고, 도시가스나 LPG를 사용하는 난방 설비를 전열 장치로 바꾸는 식이지요. 석탄을 태워서 돌아가는 화력 발전소를 없애고 풍력 발전과 태양광 발전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이 움직임을 모든 것의 전기화(electrification of everything)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전기화 흐름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전기 자동차는 리튬이온전지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저장하기 때문에 전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튬이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또 전기 설비를 운영하는 데는 강력한 자석이 필요하기 때문에 네오디뮴, 프라세오디뮴, 디스프로슘 같은 희토류 원소(rare earth element)가 많이 들어가지요. 국제에 에너지 기구(IEA)에 따르면, 대표적인 희토류 금속인 네오디뮴의 수요만 따지더라도 2040년까지 600% 이상 증가할 거라고 합니다.
문제는 희토류를 정제하고 분리하는 과정이 상당히 유독하다는 데 있습니다. 희토류는 말 그대로 땅 속에 희박한 양만 존재하는 원소입니다. 또 희토류 금속끼리는 화학적인 성질이 비슷하여 고순도로 정제하는 것도 어렵지요. 때문에 아주 많은 양의 광석을 파내야 하고, 공장에서 정제할 때도 고농도 염산이나 독성 용매를 사용해서 분리합니다. 당연히 환경에는 악영향을 미치겠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면, 기존에 채굴한 희토류를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것도 좋은 접근법일 것입니다. 특히 폐가전제품이나 폐건전지에서 귀금속과 희토류를 분리해서 재활용하는 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지요. 이번 글에서는 이런 “도시 광산” 연구를 소개하겠습니다.
도시 광산은 말 그대로 금광에서 금을 채굴하는 것처럼 도시의 폐가전제품에서 귀금속을 추출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보통 금광에서 1톤의 광석을 정제하면 5그램이 채 되지 않는 금이 얻어집니다. 그런데 폐스마트폰 1톤에는 대략 150~200그램의 금이 들어 있지요. 경제성 분석은 이것보다는 복잡합니다만, 이 정도면 웬만한 광산에서 금을 채굴하는 것보다도 낫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희토류 역시 마찬가지라, 적절한 재활용 기술을 개발한다면 전기화 과정에 필요한 금속 채굴량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배터리 재활용 사례를 볼까요? 배터리를 재활용할 때는 완전히 방전시킨 다음 케이스를 뜯어내어 플라스틱, 알루미늄, 구리를 분리합니다. 그 다음 남아 있는 모든 물질은 잘게 갈아서 블랙 매스(black mass)라고 불리는 검은 가루로 만드는데요, 여기에는 흑연, 코발트, 니켈, 리튬 따위가 뒤섞여 있습니다. 블랙 매스는 광산에서 캐낸 광석과 마찬가지라, 야금술의 용어를 빌려와서 정제 기법을 설명하곤 하지요. 두 가지 방법이 널리 쓰입니다.
첫째는 건식 제련(pyrometallurgy)입니다. 영단어를 잘 보시면 불을 사용해서(pyro-) 금속을 얻는다(metallurgy)는 뜻이지요. 광석을 용광로에서 녹여내는 것처럼, 블랙 매스를 고온에서 녹인 다음 금속을 분리하는 방식이지요. 둘째는 습식 제련(hydrometallurgy)입니다. 역시 영단어를 보시면 물을 사용해서(hydro-) 금속을 얻는다는 뜻이지요. 황산과 같은 용매를 사용해서 다양한 물질을 차례대로 분리합니다.
배터리 재활용의 관점에서는 습식 제련이 조금 더 유망한 것 같습니다. 배터리는 재료 특성상 건식 제련에서 분리하기 어려운 성분이 많아요. 우선 음극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흑연은 고온에서 불타 날아가기 때문에 회수할 수 없습니다. 리튬을 분리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어서, 결국 건식 제련이 끝나고 남은 찌꺼기에서 추가 분리 공정을 진행해야 하지요. 용광로의 고온을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도 단점이라, 최근의 배터리 재활용 기업들은 대부분 습식 제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재활용 배터리의 성능은 어떨까요?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 배터리의 출력이나 수명이 눈에 띄게 떨어진다면 사용할 때 많이 곤란하겠지요. 그런데 2021년 11월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외로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 배터리의 성능이 시판 배터리에 비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수명은 50% 이상 늘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재활용 재료에는 몇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잔뜩 뚫려 있다고 해요. 덕분에 전류의 흐름이 더 효율적으로 바뀌어 오히려 전지 성능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지요.
한편, 희토류 재활용은 어떨까요? 2022년 3월에 흥미로운 연구가 하나 발표되었는데요, 급속가열(flash heating)을 이용하여 광산 찌꺼기나 폐가전제품에서 희토류를 분리해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면 비산재(fly ash)라고 불리는 찌꺼기가 발생합니다. 비산재에는 아주 적은 양의 희토류 금속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분리하기가 상당히 어렵지요. 연구진은 비산재를 숯의 일종인 카본블랙과 섞은 다음 고압 전류를 흘려보내 순간적으로 온도를 섭씨 3,000도까지 가열했습니다. “줄 가열법(Joule heating)”이라는 기술인데, 1초 이내에 섭씨 3,000도까지 가열할 수 있는 급속 가열 기법이지요.
비산재 내부의 희토류 금속은 보통 미세한 유리 입자에 갇혀 있어서 분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고압전류를 가하자 유리 입자가 깨졌고, 고온에서 희토류가 산화되면서 분리하기 쉬운 산화물로 변한 거죠. 보통 희토류를 추출할 때는 아주 강하게 농축된 염산을 사용하는데, 연구진은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염산보다 120배나 묽은 용액을 사용해서도 희토류를 추출할 수 있었다고 해요.
위에서 배터리 폐기물의 건식 제련을 설명할 때, 건식 제련은 고온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급속 가열의 경우, 3,000도의 고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온도를 높였다가 식히는 과정에서 분리가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지 않아요. 사이언스 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연구진은 기존에 폐타이어를 급속 가열하여 재활용하는 공정을 개발하여 사업화를 준비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번 논문 역시 규모를 키워 사업화할 생각을 하는 것 같고요.
재미있게도, 연구진은 비산재 이외에도 알루미늄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인 적니(red mud), 그리고 낡은 노트북을 갖고도 비슷한 실험을 했고 모두 희토류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비산재, 적니와 폐가전제품은 모두 산업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부산물이지요. 광산을 사용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산업의 폐기물까지 흡수하여 재활용할 수 있는 등 확장 가능성이 좋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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