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微生物, microbe)이란 말은 말 그대로 아주 작은 생물이란 뜻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매우 작은 생물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나오지요. 미생물 하면 보통 세균을 떠올리는데, 대표적인 세균인 대장균은 1~2마이크로미터 정도 크기라 과연 맨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세균은 왜 그렇게 작을까요? 모든 세균은 한 개의 세포만을 갖고 살아가는 단세포 생물입니다. 인간과 같은 다세포 생물은 수많은 세포가 모여 협력하면서 생명 기능을 유지하는 반면, 단세포 생물은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을 세포 하나가 처리해야 하지요. 때문에 세포가 너무 커지면 여러 가지로 생존에 불리해지는데, 무엇보다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게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혈관과 같은 순환계를 이용해서 영양분과 노폐물을 옮겨다닐 수 있지만 단세포 생물은 그럴 수 없으니까요. 집이 너무 크면 장본 음식을 냉장고로 옮기기도 힘들어지고 안방에서 생긴 쓰레기를 내다버리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입니다.
때문에 학자들은 세균의 크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22년 2월, 생물학자들이 기존의 상식을 깨는 거대 세균 한 종을 발견했습니다.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졌는데도 무려 2센티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는 세균이 발견된 거예요.
이 세균이 처음 채집된 것은 10년 전입니다만, 당시에는 아무도 이 생물이 세균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카리브 해의 어느 늪에서 썩어가던 망그로브 잎 위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실 같은 생물이 떠 있길래 채집하고 기록은 해 두었지만 제대로 된 분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최초 발견으로부터 5년이 지나서야 이 ‘커다란’ 미생물이 세균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자세한 분석을 마치고 나서 5년이 더 지나 2022년에야 논문으로 보고된 거죠.
2센티미터 길이의 망그로브 세균이 얼마나 큰 건지, 다른 생물과 비교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대표적인 대장균은 1~2마이크로미터 정도의 크기입니다. 대장균보다는 10,000배 더 크지요. 이전까지 발견된 가장 큰 미생물은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서 채집되었는데, 이 녀석도 1밀리미터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미생물 크기 기록을 열 배 갈아치운 거고요. 무엇보다, 초파리의 크기가 2~3밀리미터 정도입니다. 세포 한 개로 이루어졌음에도 초파리보다 다섯 배는 큰 세균인 거예요.
초파리보다 큰 세균이라고 하면 충분히 신기하긴 합니다만, 과학자들이 거대 세균의 발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을 비롯한 복잡한 생물도 모두 태초의 세균으로부터 진화했는데, 그 진화 과정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예요. 구체적으로는 세포의 핵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물의 세포 안에는 핵이 있습니다. 핵은 DNA를 꽁꽁 감싸서 숨겨두는 세포 소기관으로, DNA가 손상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잘 감춰 두는 금고와 같은 기능을 하지요. 세포 안에서 DNA에 기록된 정보를 사용해야 할 일이 생기면 DNA를 핵에서 직접 꺼내는 게 아니라 DNA의 사본만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원본은 계속 금고 안에 남겨둡니다. 이 원리를 응용한 기술이 mRNA 백신이라고 설명한 적도 있었지요.
세포에 핵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서 DNA를 보관하는 형태의 생물을 진핵생물(eukaryote)이라고 합니다. 반면 세균을 포함한 좀 더 원시적인 생물들은 핵이 없어서 DNA가 세포 내에서 아무렇게나 둥둥 떠다니는데요, 이런 생물을 원핵생물(prokaryote)이라고 하지요. 그리스어에서 pro-는 ‘이전’을 뜻하고, karyon은 ‘씨앗’을 뜻하기 때문에 ‘핵이 생기기 이전의 생물’이란 뜻입니다.
진핵생물은 원핵생물에 비해 좀 더 복잡한 세포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최초의 생물은 당연히 핵막을 갖지 않았을 테고, 진화 과정에서 언젠가 핵이 생겨나면서 진핵 생물이 뒤늦게 나타났을 거예요. 그런데 현대의 생물들은 거의 모두 원핵생물 아니면 진핵생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이 진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생물 진화 과정의 ‘잃어버린 고리’인 셈이지요.
과학자들이 망그로브 세균의 발견에 흥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잃어버린 고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망그로브 세균의 거대한 필라멘트 안에는 몇 개의 물주머니가 들어 있는데, 이 중에 DNA가 떠다니는 작은 주머니도 한 개 있다고 해요. 인간과 같은 진핵생물처럼 본격적인 핵 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DNA를 별도의 공간에 분리해서 보관한다’는 개념이 원시적인 형태로 나타난 겁니다.
복잡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망그로브 세균은 지금까지 발견된 박테리아 중 가장 복잡한 종 중 하나입니다. 위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일반적인 세균은 영양분과 노폐물을 제대로 옮길 수 없기 때문에 절대 2센티미터 크기까지 성장할 수 없어요. 망그로브 세균은 여러 개의 물주머니를 만들어서 세포 기능을 나눠 두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이 과정에서 유전체의 복잡성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통의 박테리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유전자를 갖고 있거든요.
물론 유전자 개수가 많다고 꼭 ‘고등’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2만 개 정도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3만 개 이상의 유전자를 가진 물벼룩이 발견된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려면 유전자 개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는 합니다. 단세포 생물이 점차 복잡성을 얻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를 이 망그로브 세균이 쥐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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