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16조 원짜리 틈새 시장, 소변 재활용

2022.03.07 | 조회 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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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 댁 화장실에는 소변기가 한 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삼촌이 구입한 물건이었어요. 양변기에 소변을 본 다음 물을 내려 흘려보내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물이 소비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보통 가정용 변기 물을 한 번 내리면 10리터 정도의 물이 필요한데, 소변기는 법정 기준상 2리터 이하의 물을 소비하지요.

현대의 중앙집중형 하수처리 시스템에서, 변기에 버려지는 물질은 기본적으로 대변과 소변, 그리고 물에 녹는 화장지입니다.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다양한 이물질이 섞이기도 하지만요. 변기에 버려진 물질은 중앙 처리 설비로 옮겨져서 화학적, 생물학적 방법을 동원하여 정수 과정을 거칩니다.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과정입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대변과 소변을 이처럼 묶어서 처리하지 않았어요. 특히 소변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발효시켜 비료로 사용하거나 가죽 제품을 태닝하는 데도 사용했고, 전시에는 화약을 만드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때문에 소변을 대변과 섞지 않고 따로 모아 두는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도시의 하수 시설을 만들면서 변기에 버려진 모든 물질을 종합해서 처리하는 시스템이 완성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소변의 재활용은 거의 명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을 소변 맹시(urine blindness)라고 부릅니다.

최근 스웨덴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도시 하수 처리 시스템을 변혁하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의 중앙집중형 하수처리 시스템에서 소변을 따로 모아 재활용하려는 기획이지요. 현재는 컨셉 검증 단계에 머무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단위의 하수 처리 시스템을 모두 바꾸려는 야심찬 움직임이지요.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nviron. Sci.: Water Res. Technol.7, 1161 (2021). CC BY 3.0.
Environ. Sci.: Water Res. Technol.7, 1161 (2021). CC BY 3.0.

소변이 도대체 어떤 물질이길래 이런 특별 취급을 받는 걸까요? 대변과 소변은 생리학적 관점에서 상당히 다릅니다. 대변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소화시키지 못하고 남은 찌꺼기예요. 입으로 들어간 음식물이 위와 장을 통과하며 소화된 끝에 우리 몸에 흡수되지 않은 물질이 대변입니다. 반면 소변은 인체의 생화학적인 활동에서 발생한 노폐물을 몸 바깥으로 내보내는 수단이예요. 특히 단백질을 몸에서 분해하면 암모니아처럼 질소계 유독물질이 발생하는데, 이를 안전하게 요소로 바꾼 다음 소변에 실어 몸 밖으로 내보냅니다.

때문에 소변에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인체에서는 쓰레기이지만 약간의 발효 과정을 거치면 식물의 생장에 필수적인 비료로 바뀌는 거예요. 소변에는 질소·인산·칼륨이 많이 들어있는데, 바로 ‘비료의 3요소’입니다. 비료 목적으로 소변을 전용할 경우 연간 136억 달러, 우리 돈으로 16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갖는다고 해요.

하지만 대변과 소변을 섞어서 하수관으로 흘려보내게 되면 소변은 단순히 정화해서 배출해야 할 오수에 불과합니다. 소변을 따로 분리해서 처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하는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실에서는 대부분 불가능하지요. 가정에서 개인이 요강에 소변을 받아서 처리 시설에 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소변을 받아서 분리할 수 있는 설비의 직관적인 예시 중 하나는 우주정거장의 화장실일 겁니다. 우주정거장에서는 당연하지만 물이 대단히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의 모든 수분을 재활용하는 설비가 필수적이지요. 때문에 우주정거장의 변기는 애초에 소변을 받아내는 호스와 대변을 받아내는 관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소변은 시설을 거쳐서 정수하여 식수로 재활용합니다.

하지만 모든 변기에 대소변 분리관을 설치하는 것은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이미 기존의 변기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에게 갑자기 대소변을 따로 회수하도록 하는 것은 반발이 심할 수 있지요. 사람은 당연히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고 싶어할 테니 도시 규모에서 완전히 새로운 설비를 설치하고 그 사용법을 전파하는 건 어려울 일입니다.

때문에, 공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이 힘을 합쳐서 사용 요령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소변 자체를 효율적으로 분리해낼 수 있는 변기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오스트리아의 디자인 회사 EOOS에서 개발한 ‘소변 트랩(unine trap)’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 변기와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변기의 구조를 조금 비틀어서 소변만 별도의 탱크로 빠져나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요.

Design by EOOS. Environ. Sci.: Water Res. Technol. 7, 1161 (2021). CC BY 3.0.
Design by EOOS. Environ. Sci.: Water Res. Technol. 7, 1161 (2021). CC BY 3.0.

소변을 분리하여 상업적 비료로 재활용하는 프로젝트, 특히 여기에 필요한 소변기 설계 등은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게이츠 재단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비료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소변 재활용에 따르는 환경적인 이익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수처리에 들어가는 물 비용과 에너지가 감축되고, 기존 방식으로 더 이상 비료를 제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원 소비가 줄어들게 되지요.

한 연구에서는, 소변을 분리하여 비료로 재활용하는 설비가 기존 하수 체계를 100% 대체했다고 가정하고 그 효과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47%, 에너지 소비량은 41%, 하수 오염이 64% 감소하고, 물 소비량도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소변 재활용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결국 한 지역에서 물과 영양분이 버려지지 않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수관에서 수집한 소변을 처리하여 만든 비료를 지역 농장에 공급해서 농작물을 생산하고, 그 농작물을 다시 식품으로 만들어서 지역의 소비자들이 먹고, 그 결과 발생한 노폐물이 다시 비료가 되는 사이클을 설립하는 거죠. "소변을 비료로 바꾸어 보리를 키우고, 그 맥주를 소비자가 다시 마시는" 시스템이지요. 현재 진행 중인 소규모 실험이 완성되고 시스템이 확산되면 더욱 지속 가능한 도시 생활이 가능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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