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많은 분들은 쏟아지는 할일을 끊임없이 저글링하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 수많은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또 시달리면서 살아가지요. 지금의 개인적/직업적 삶이 지루해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도 하고, 또 원치 않는 일을 상사나 동료가 떠넘기는 바람에 일에 깔려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해치워야 하는 오만 가지 할일 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요, 그래서 시중에는 할일 목록을 정리한다거나, 순서를 정해서 효율적으로 해치우는 법을 가르치는 자기계발서가 까마득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할일 관리의 가장 어려운 지점 중 하나는 바로 '긴급하지는 않지만 어렵고 중요한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일 거예요. 당장 하루이틀 안에 해치우지 않는다고 큰일나지는 않지만 일 년 안에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프로젝트일 수도 있고, 하기 싫은 입시 수학 공부일 수도 있고, 커리어를 위해 따려고 하는 자격증 공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당장 급하지 않으니까 차일피일 미루기 쉬운데, 사실 어렵고 중요한 과업을 달성했을 때야말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큰 성취를 이루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기한이 촉박한 잡일 틈에서 중요하지만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을 골라내 해결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지요.
2021년 3월 15일, 과학잡지 <Nature> 인터넷 판에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바드레(David Badre) 교수가 기고한 칼럼이 한 편 실렸습니다. "어려운 일에 집중하도록 돕는 신경과학의 팁(Tips from neuroscience to keep you focused on hard tasks"라는 제목입니다. 데이비드 바드레는 미국 브라운 대학교 뇌과학센터 소속의 교수로, 다양한 의사결정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인지적 자원을 배분하고 활동하는지를 연구하는 뇌과학자입니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연구를 정리한 대중서 <On Task>도 출간했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것 같네요.
우선 그의 문제의식을 같이 살펴볼까요? 우리는 수많은 할일 더미 중에 지금 당장 할 일을 골라낼 때, 일종의 가성비를 고려한다고 합니다. 바로 '노력 대 성취비'를 본능적으로 계산해서 할 일 목록 중에 가장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성취감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을 골라낸다는 겁니다. 문서 양식을 예쁘게 수정한다거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의 그림을 완벽하게 정렬하는 데 집착한다거나, 괜히 캘린더나 다이어리를 정리한다거나 같은 일들이지요. 더 중요한 일 놔두고 왠지 이런 잡일에 집착적으로 매달려 본 경험, 다들 있으시죠?
잡일을 해치운 것도 분명 '목표 달성'이니까 성취감도 들고 뿌듯합니다. 하지만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우리는 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어렵고 중요한 일도 해치워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들고 인지적 자원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 바드레는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1. 시간과 장소를 최우선적으로 마련하자.
우선 우리 뇌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알아볼까요? 신경과학자들은 흔히 우리 뇌에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편하게 '단기 기억'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마치 컴퓨터의 RAM처럼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한 공간이예요. 여기서 반복적으로 다루어 본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서 오래도록 남기도 하지만, 그냥 잊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와 관련된 이런저런 정보의 조각을 장기 기억에서 꺼내와 작업 기억에 올려야 합니다. 한 편의 글을 쓴다고 하면, 글을 어떤 식으로 구성할지, 글에는 어떤 정보를 담을지, 또 내용과 관련 있는 참고자료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를 전부 작업 기억에 올려놓고 작성하면 짜임새가 좋은 유기적인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이런 정보 조각 모음을 인지과학자들은 '작업 집합(task set)'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사람의 작업 기억이 굉장히 작다는 겁니다. 작업 기억에 올려둘 수 있는 정보는 애초에 그렇게 많지 않아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다루기는 아주 어려워요.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에게 아무 맥락 없는 숫자를 주루룩 읊어주면서 외우라고 하면 7개 정도 외울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수학 문제를 풀다 말고 갑자기 글쓰기에 착수하면, 작업기억에서 수학 작업 집합을 전부 내리고 글쓰기 작업 집합을 다시 로딩해야 합니다. 이처럼 작업기억 공간을 '재부팅'하는 시간과 비용이 너무 커서, 어려운 일을 집중해서 하려면 독립된 시간과 장소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합니다.
바드레 교수의 세부적인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가능한 많은 시간을 한 덩어리로 확보할 것. 이메일 답장, 책상 청소, 별로 안 중요한 회의, 잡다한 서류처리 같은 사소한 일이 일정표를 꽉 채우고 있으면 자투리 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집중해서 풀 수 없습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작업 집합을 잘 준비해서 '올인'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한다고 할 때, 30분씩 여섯 번 나눠서 작업하는 것과 3시간 동안 몰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 일관된 패턴을 만들 것. 마들렌 냄새를 맡으면 잊고 살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뇌는 기억을 떠올릴 때 맥락에 아주 많이 영향을 받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정한 공간에서 같은 작업을 한다면 우리는 관련된 기억의 조각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인출할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어디까지 했더라?' 단계를 좀 더 빨리 진행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갖고 있는 기억 조각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를 수도 있어요.
2. 절대 멀티태스킹을 하지 말자.
우리 뇌에 작업 공간은 한 개밖에 없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하지 못합니다. 소위 '멀티태스킹의 고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번에 여러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작업 사이를 재빠르게 옮겨다니는 거라고 해요. 이렇게 여러 일을 옮겨다니면서 하게 되면 한 번 주의를 전환할 때마다 '재부팅' 시간이 조금씩 흘러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작업 집합의 일부가 남아서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이렇게 작업 공간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부분을 '주의 잔류물'이라고 합니다. 글쓰기와 수학문제를 멀티태스킹하려고 하면, '글쓰기 100%' 모드와 '수학 100%' 모드 사이를 오가는 게 아니라 '글쓰기 60% + 수학 40%' 모드와 '수학 60% + 글쓰기 40%' 모드 사이를 오가는 거예요. '글쓰기 100%'로 집중하는 것과 효율이 같을 수 없습니다.
- 온갖 알림을 꺼 버릴 것.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무슨 내용인지 확인하는 것도 멀티태스킹입니다. 화면을 켜서 누구에게 온 연락인지 확인하고 답장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데에도 우리 뇌는 인지적 자원을 소모합니다. 핸드폰을 붙잡고 본격적으로 노는 것만이 딴짓이 아니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핸드폰에 이따금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작업기억 공간의 일부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멀티태스킹인 거예요. 정말 긴급한 연락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이메일이든 메신저든 웬만한 알림을 다 꺼 버리는 게 좋습니다. 핸드폰도 서랍 속이나 가방 속으로,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게 치워버리고요.
- 쉬운 잡일에 집착하지 말 것. 공부하려고 하면 괜히 더러운 책상이 눈에 들어와서 청소를 하게되지 않나요? 이건 우리 뇌가 본능적으로 '노력 대 성취감 비율'을 계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장 집중해 봤자 결과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어려운 일에 착수하는 대신 10분만 투자해서 책상을 청소하고 뿌듯해하고 싶은 거지요. 하지만 잡일을 하면서 작업 기억을 리셋해 버리면 어려운 일에 다시 집중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어려운 일을 하기로 정해 둔 시간에는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할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청소는 그 다음에 하고요!
3. 롱런할 수 있도록 멘탈을 관리하자.
어려운 문제나 힘든 프로젝트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애초에 하루만에 해결되지 않으니까 '어려운' 문제겠지요.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거기에 시간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습관, 그리고 좌절해서 그만두지 않도록 멘탈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바드레 교수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발전이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할 것. 정말 아무 성과도 없이 헤메기만 하는 날도 생길 거예요. 몇 시간을 매달렸는데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으면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아무 발전이 없는 날에도 우리 뇌는 관련된 정보에 친숙해지는 시간, 수많은 정보를 연결하는 시간을 가진 셈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자신을 매일 칭찬해 주세요.
- 쉬어 가며 할 것. 정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며칠 쉬는 것도 방법입니다. 체력과 멘탈을 관리한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우리 뇌는 의외로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있지 않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그 문제를 풀고 있다고 해요. 이런 '인큐베이팅' 기간에 문제가 본격적으로 해결된다는 증거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래도록 매달리던 문제를 꿈 속에서 해결한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그건 신의 계시가 아니라 나의 무의식이 백그라운드에서 풀어준 선물입니다.
- 동료의 도움을 받을 것. 특히 사고방식이나 관점, 전공이나 지식의 범위가 나와는 많이 다른 동료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다 보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이 나타날 지도 몰라요. 한 분야의 전문가들만 모아서 만든 드림팀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다양하게 섞은 팀이 문제를 더 잘 푸는 것처럼요.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그 자체로 훌륭한 휴식입니다. 쉬엄쉬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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