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오미크론 변이는 지금까지의 코로나19 변이와는 많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전파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요. 감염병이 전파되는 속도는 간단하게 기초감염재생산수(R0)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감기나 독감의 R0는 2~3 수준이고, 최초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9로 알려져 있습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의 R0가 5.1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요, 오미크론 변이의 R0는 델타 변이의 3배 이상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가장 전파력이 강한 질병이라는 홍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오미크론 변이는 어떻게 이처럼 강한 전파력을 갖게 되었을까요? 모든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를 얻습니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바이러스의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오류일 뿐이지만, 아주 가끔 바이러스의 전파력을 강화시키는 돌연변이가 생겨나기도 하지요. 기존의 알파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모두 전파력을 높이고 면역 반응을 회피하는 돌연변이를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오미크론 변이는 다른 변종에 비해 놀랍도록 많은 돌연변이를 갖고 있어요.
위의 그림은 각종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발생 과정을 추적한 일종의 족보입니다. 그래프의 위쪽에 있을수록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이가 많은 변종인데요, 21K와 21L로 표현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단연 많은 변이를 갖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들은 스파이크 단백질에만 많게는 30개의 변이를 갖고 있어요.
이 족보를 보면, 오미크론 변이가 다른 변이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변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돌연변이를 얻습니다. 알파나 델타 변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한두 개씩 변이를 획득하며 조금씩 진화하고 있지요. 그런데 오미크론 변이는 갑자기 스무 개 이상의 변이를 갖추고서 혜성처럼 나타납니다.
오미크론 변이의 직계 조상을 분석해 보면 더 이상해요. 족보에서 오미크론 변이의 조상격에 해당하는 변이는 2020년 5월까지는 거슬러 올라가야 나타납니다. 이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변이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등장할 무렵이었어요. 그런데 2020년 5월 이후에는 오미크론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만한 바이러스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오미크론 변이는 1년 반 동안 인류의 감시망을 완전히 피해서 진화한 겁니다.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크게 세 가지의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가설 1. 가난한 국가에서 감시망을 피했다
선진국이 백신을 독점하는 바람에 가난한 국가에서 백신을 충분히 맞지 못했고, 여기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유행하면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이 빨라졌다는 분석은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1번 가설은 이런 방역 사각지대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했다는 제안입니다. 최초의 오미크론 바이러스는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의료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곳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유행하면서 오미크론 변이가 탄생했다는 가설입니다.
하지만 이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저개발 국가라 하더라도 일 년 반 동안 외부와의 교류가 완전히 차단된 지역이 얼마나 되냐는 거예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두 개 정도의 변이를 일으킵니다. 오미크론 변이만큼 강력한 전파력을 갖는 변이가 탄생했다면 머지않아 주변 교통망을 통해 퍼져나가기 시작할 거고, 바이러스의 최초 발생지를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대도시의 PCR 감시망에 결국 걸려서 바이러스의 존재가 드러나야 합니다.
가설 2. 면역저하자의 몸에서 배양되었다
에이즈 등의 면역 저하 질환을 갖고 있거나, 다른 질병으로 인해 면역억제제를 복용 중인 사람들은 정상인에 비해 면역력이 약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일반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시달립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완치되든 사망하든 몇 주 내에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마치게 되는데, 면역저하자들 중에는 드물게 몇 달씩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면역저하자의 체내에서는 면역체계와 바이러스가 숨바꼭질을 합니다. 면역 체계가 힘을 내서 바이러스를 일부 퇴치하면 바이러스가 진화하여 면역 체계를 회피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요. 2번 가설에서는 어떤 면역저하자의 몸 속에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르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수많은 변이를 획득한 끝에 세상으로 튀어나온 것이 오미크론 변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오미크론 변이가 어떻게 1년 반 동안 PCR 감시망을 피했는지가 설명됩니다. 면역저하자의 체내에 숨어 있던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은 숨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다만 20여 개에 달하는 변이가 형성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이 감염된 채로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면역저하자 여러 사람이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변이 바이러스를 교환하여 돌연변이가 가속화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요.
오미크론 변이의 최초 발견지가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합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유행이 심각합니다. 에이즈 환자의 체내에 들어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변이를 획득하고, 에이즈 환자 간의 접촉을 통해 유전정보를 교환하면서 이 흐름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가설이지요.
가설 3. 쥐에게서 배양되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오미크론 변이는 뜻밖에도 쥐의 호흡기 세포에 아주 강하게 결합합니다. 다른 코로나19 변이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돌연변이 탓이라고 해요. 3번 가설은 이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는데, 바로 하수구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쥐가 오미크론 변이의 기원이라는 가설입니다. 1년 반 동안 하수구 쥐떼를 감염시키며 수많은 돌연변이를 획득한 끝에 인간에게 돌아왔다는 겁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 외에도 여러 동물을 감염시키는 것이 확실합니다.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도 박쥐나 천산갑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고, 실제로 유럽에서는 밍크 농장에 코로나19가 퍼졌던 적도 있지요. 표범, 고양이, 사슴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한데 이런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지요.
실제 오미크론 변이가 어디서 출현했는지 알아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돌연변이가 진행되던 일 년 반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와서 알아내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가설 모두, 현재 인류의 감염병 감시망에 어떻게 구멍이 뚫려 있는지 지적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첫째로, 의료 불평등은 저개발 국가에만 피해를 입히는 것이 아닙니다. 에이즈가 창궐하고 백신 공급을 받지 못하는 아프리카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출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사람 사이에 전파되면서 일어나기 때문에, 설령 선진국에서 대규모 백신 접종을 통해 유행을 틀어막는다 하더라도 저개발 국가에서 신종 돌연변이가 나타나서 그간의 노력을 무력화할 수도 있는 거죠.
둘째, 환경 보호는 물론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합니다. 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공장식 축산이 큰 규모로 진행되면서 인간과 동물이 접촉하는 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동물만을 감염시키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얻어 인간에게 넘어오면 코로나19 대유행과 같은 사태가 언제 또 생길지 모릅니다. 더 이상의 환경 파괴를 막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지만, 동물 감염병에 대한 연구 역시 대단히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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