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거대한 이산화탄소 저장고입니다. 얕은 바다에 저장된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지각에 매장된 화석 연료의 총량과 비슷한 수준이고, 심해는 이보다 네 배 가까이 많은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저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와중에도 우리가 기후 재앙을 아직까지 직면하지 않은 데에는 바다의 완충 작용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가 탄소를 저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닷물 자체도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는 적은 양이지만 물에 녹을 수 있어요.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음료를 탄산음료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탄산’이 바로 물에 녹은 이산화탄소입니다. 탄산의 형태로 물에 녹은 이산화탄소가 다시 기포가 되어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면서 입을 따끔따끔하게 하는 것이 바로 탄산음료의 청량감이고요.
‘탄산’이라는 말에서 짐작하셨겠지만, 물에 녹은 이산화탄소는 약한 산성 물질입니다. 때문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그 중 일부가 바다에 녹으며 바닷물을 산성으로 바꿉니다. 바닷물의 산성도가 바뀌게 되면 수많은 해양 생물의 생활 환경이 화학적으로 크게 바뀌는 셈이라 해양 생태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수용액의 산성도는 수소 이온 농도 지수, pH로 표현합니다. pH가 낮을수록 산성이 강하고 pH가 높을수록 염기성이 강한 용액입니다. 18세기 산업화 이전 바다의 평균 pH는 8.2 정도였다고 추정되는데, 오늘날 바다의 pH는 8.1 정도 수준까지 떨어졌어요. 아주 작은 변화로 보이지만 실제 산성도를 결정하는 수소 이온의 농도를 기준으로는 30% 가까이 증가한 상태입니다. 현재의 추세가 지속되면 2100년경에는 수소 이온의 농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30% 정도 높아질 거라고 해요.
바다가 산성화되면 일차적으로는 산호초가 타격을 입습니다. 산호초가 공생조류를 뱉어내고 하얗게 죽어가는 백화 현상의 주된 원인이 바로 산성화예요. 한편 조개 껍질은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닷물의 산성도가 높아지면 탄산칼슘은 녹아 버립니다. 탄산칼슘 외골격을 갖고 있는 해양 생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겁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뜨거워지는 효과까지 함께 작용하면 바다 생태계는 머지않아 대혼란의 시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 모든 문제를 되돌리기 위해서는 탄소 배출량의 대대적인 감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다의 산성도를 인위적으로 낮춤으로써 해양 생태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흡수하도록 하려는 기술적인 기획도 있어요. 이론적인 가능성은 높지만,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라 장기적인 전망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연구의 주인공은 감람석이라는 광물입니다. 감람석은 주로 녹색을 띠는 규산염 광물입니다. 올리브와 비슷한 녹색을 갖기 때문에 영어로는 올리바인(olivine)이라고 불리고, 우리말인 감람석도 올리브나무와 흔히 혼동되곤 하는 감람나무에서 따와 붙였습니다. 보석으로 쓰일 때는 페리도트(peridot)라고 불리지요. 마그네슘이나 철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지각에서 가장 흔한 광물 중 하나라 구하기도 쉽습니다. 감람석을 곱게 갈아 물에 녹이면 이산화탄소를 붙잡으며 물의 산성도를 낮추는 기능을 하지요.
감람석 풍화 증진(enhanced olivine weathering)이라는 기법의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흡수되어 바다를 산성화시키고 있으니, 바다에 염기성을 띠는 물질을 대량으로 뿌려서 바다의 산성도를 낮추자는 겁니다. 첫째로 바닷물의 산성도를 일시적으로 낮출 수 있고, 이렇게 산성도가 낮아진 바다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더 빨아들일 수 있으니 인간이 이미 배출한 탄소의 일부를 적극적으로 제거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접근이라는 거죠. 특히 지각에 흔한 감람석(olivine)이 후보로 꼽히고 있는데, 감람석에는 산화규소와 철이 풍부합니다. 이들 물질은 해양 생태계에서 필수적이지만 항상 양이 부족한 미량원소이기 때문에 감람석을 대량으로 뿌리면 바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세 번째 부수효과까지 얻어질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어요.
하지만 독일의 지오마 헬름홀츠 해양연구소(GEOMAR Helmholz Centre for Ocean Research) 연구진이 2022년 3월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연구진은 인공 바닷물에 감람석 가루를 뿌리고 134일 동안의 변화를 지켜봤는데, 의외로 바닷물의 염기성이 감소하는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겁니다. 염기성 물질을 뿌렸는데 바닷물이 거꾸로 산성화되는 현상이 발생한 거죠. 바닷물에 녹아 있는 염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 때문입니다.
기존에 과학자들은 감람석이 바닷물에 녹으면 이산화탄소와 반응할 것이라고 비교적 단순한 모델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물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규산마그네슘만 존재하는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바닷물’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실제 바다에는 훨씬 다양한 염이 녹아 있지요. 이번 실험이 밝혀낸 것은 감람석 성분이 이산화탄소보다 먼저 반응하는 염이 바닷물에 다량으로 존재하며, 이들이 감람석과 반응하여 탄산칼슘 따위를 침전시키면서 바닷물의 구성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겁니다. 그 결과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5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지요.
실망스러운 결과입니다만, 사실 과학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을 완벽하게 수행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험을 진행하지 않고서 무작정 감람석을 가루로 만들어서 바다에 뿌렸다면 비용은 비용대로 들이고 원하는 효과는 전혀 얻지 못했을 테니까요. 인위적으로 온실 효과와 기후 변화를 역전시키려는 기술을 통틀어 지구공학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공학 기술이 아직은 초기 단계이며 훨씬 더 많은 실험으로 그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번 실험처럼 엄격한 검증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떤 기술은 효과가 부족하다고 판명나서 퇴출될 테지만, 한편으로 세계적인 규모로 시행해도 괜찮은 안전한 기술이 발굴되어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감람석 풍화 증진법에 과학자들이 거는 기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오마 헬름홀츠 해양연구소 연구진도 논문에서 아직 활용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언급합니다. 실제 바다에서는 파도가 치고 해류가 흐르기 때문에 침전물이 잘 형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탄산칼슘을 비롯한 다른 염을 감람석과 섞어서 바다에 뿌려주게 되면 화학 반응을 제어할 수 있다는 거죠. 추가 연구를 통해 실제로 바다의 이산화탄소 포집 능력을 강화시킬 방법이 발견될 여지는 충분히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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