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비하인드

17.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책 <넥스트 스티브 잡스> 리뷰

2026.09.16 | 조회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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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김지윤

오랜만에 첫 문장을 씁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올 하반기부터 팟캐스트 진행을 맡았습니다. EO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창업자와 책, 그들의 이야기와 의사결정을 듣는 <이오서재>라는 코너입니다. 

 

영상 인터뷰는 제 나름대로는 해본 적 없는, 하지 않을 법한 선택지였습니다. 저는 여전히 글이 더 익숙한 사람이니까요. 그래도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 안 바뀐다"는 말에 조금은 반기를 들고 싶어서입니다. 

 

유튜브 팟캐스트 코너 <이오서재>
유튜브 팟캐스트 코너 <이오서재>

 

"매년 새로운 도전 1개"라는 원칙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은 보통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꼬집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 맥락에서 저에게 팟캐스트는 "매년 새로운 도전 1개씩 해보기"의 일환입니다. "그럴 줄 몰랐다"는 반응, 그런 결정들을 통해 나다움을 확장하는 방식입니다. 

 

거의 매년 반드시, 그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일을 1개씩 해본다는 나름의 원칙인데요. 작년에는 <액트프러너>라는 책의 대필작가로 활동하면서 아기를 출산하는 것이 '전혀 해보지 않았던 도전'이었습니다. 올해에는 1살 아기를 키우면서 팟캐스트 진행을 맡아 제작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렸고요. 

 

이 원칙은 구글의 7:2:1 법칙에서 영감을 받은 겁니다.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소개해 화제가 된 개념인데요. "어떻게 혁신성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아래와 같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프레임워크입니다.

 

  • 코어(Core) : 핵심 제품에 점진적인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시장에 차근차근 진출하는 것.
  • 인접(Adjacent) : 기존에 잘하는 무언가를 활용해서 그와 인접한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는 것.
  • 변혁형(Transformatioinal) :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신사업,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

 

혁신적인 기업은 C와 A와 T의 비율을 7:2:1로 유지한다고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데 전체 리소스의 약 10%를 항상 배치해 혁신성을 잃지 않는 구조를 세우는 방식입니다. 

 

저는 쫄보인지라(?!) 큰 리스크를 걸고 완전히 새로운 도전에 10%나 배치하는 건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 저를 잘 알기에 '전에 해본 적 없던 새로운 도전을 매년 1개씩 꼭 해본다'는 최소한의 기준을 잡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와 완벽히 다른 도전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간 상상해본 적 없거나 해보길 망설였던 시도를 반드시 하도록 저 자신을 살짝 푸시하는 장치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된다고, 그렇게 얻은 이질적인 경험이 돌연변이로 제 안에 남아 제가 생존, 적응, 변화할 수 있다는 게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최근 책 <넥스트 스티브 잡스>의 저자 제프리 케인 님과의 영어 화상인터뷰는 참으로 도전적이었습니다...^ㅡㅠ

 

  1. 너무나 오랜만에 600쪽에 달하는 벽돌책을 완독하다는 미션
  2. 초딩 영어로(!) 책 저자와 의미있는 대화를 남기는 미션

 

영상 팟캐스트 인터뷰 진행 자체도 여전히 저에게 쉽지 않은 과제인데, 벽돌책을 미리 다 읽고서 거기서 나름의 관점을 갖고 (말도 안 되는) 영어 실력으로 화상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난관에 봉착했더랍니다(...)

 

비록 느린 영어와 허우적대는 손발이 어색하고 아쉬웠지만, 다행히 인터뷰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덕분에 깊이 있는 책을 읽는 즐거움과 오랜만에 재회했고, 다시 영어를 연습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도 받았고요. 확실히 그간 해보지 않았던 일, 두려워 망설이던 일, 내가 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억지로라도 해내면 그 전과는 '다른 나'로 거듭난다는 걸 체감합니다.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넥스트 스티브 잡스> 책 자체는 '잡스의 전기'입니다. 애플 초창기 스티브 잡스가 본인 손으로 일으켰던 회사에서 쫓겨난 후, 화려하게 애플에 복귀하기 전까지 여정을 담은 12년을 111명의 사람들과 미공개 자료를 토대로 집요하게 추적한 기록입니다.

 

당시 잡스는  NeXT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해 애플에 대항하려 했고, '역사에 남을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혈안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컴퓨터가 박물관에 남긴 했지만, 대중적인 흥행에는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잡스는 "말도 안되는 의사결정"을 보여줍니다. 회사 곳간이 바닥나는 마당에 공장을 짓고, 공장의 컨셉부터 제품 비주얼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타협하지 않아 값비싼 실책을 반복했죠. 어쨌든 회사가 존립해야 하니 대기업(예 : IBM)이나 정부 정보기관과 '빅딜'에 나섰지만, 계약 성사를 앞두고 잡스 본인의 성미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계약은 빠그러졌습니다. 

 

결국 회사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돈 앞에 장사 없다고, 잡스도 뼈아픈 선택을 내렸습니다. 본인이 중시했던 하드웨어 사업부를 통째로 날렸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대중적인 PC와 아이폰의 선구자가 기업용 포스트웨어라니. 참 안 어울리는 그림이었지만 당시 잡스는 정장을 차려입고 세일즈를 뛰는 '재미없는 사업쟁이'가 됐습니다. 

 

넥스트 시기의 잡스는 여러모로 변방에 몰렸습니다. 거짓말을 일삼고, 사람들을 갈구고, 공수표를 날렸다가 갑자기 약속을 번복해버리는 '변덕스러운 천재'는 점차 실리콘밸리에서 잊혀졌죠.

 

그랬던 잡스의 NeXT가 애플에 인수됐고, 애플이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니 신기하죠. 이후 잡스는 아이팟과 아이폰이라는 흥행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이보다 화려한 복귀전, 복수극은 흔치 않을 겁니다. 

 

패착과 실패로 얼룩졌던 그의 서사를 모두 읽은 후 책 끝에 달린 리뷰를 읽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유명한 픽사의 창업자 에드 캣멀이 쓴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픽사 본사에는 '스티브 잡스 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픽사 본사에는 '스티브 잡스 빌딩'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픽사는 잡스가 NeXT와 함께 사비를 털어 겨우 살려뒀던 회사였습니다. <토이스토리 1>이 개봉하기 전까지는 디즈니와 협업했던, 그러나 디즈니 영화에 크레딧을 올릴 수 없었던 소기업에 불과했죠. 당시만 해도 '잡스의 투자 실패'로 여겨졌던 게 픽사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랬던 픽사는 보란듯이 성공했고, 잡스 또한 그 기세에 힘입어 엄청난 경험과 자산을 축적했습니다. 

 

캣멀은 넥스트와 픽사 초창기에 실패를 거듭했던 잡스가 이후에는 온화하고 온전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회상했습니다. 여전히 강력한 비전과 카리스마로 긴장감(텐션)을 일으키지만, 훨씬 유연하고 성숙한 리더가 됐다고요. (인터뷰에서 저자 또한 애플 초기 잡스와 애플 후기 잡스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고 평가했고요.)

 

리뷰 말미에서 캣멜은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는 스티브가 '영웅의 여정'을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자기 왕국에서 쫓겨났고, 광야에서 고투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나 그 고투가 그를 단련시켰고, 그는 한 세대에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로 다시 일어섰다. 이런 변화의 과정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동시에 저 깊은 질문 하나를 던진다. 오래 남을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와중에, 자기 자신마저 바꾸려 드는 사람은 대체 어떤 자질을 지닌 사람인가?"

 

"자기 자신마저 바꾸려 드는 사람"

 

개인적으로 이 문구에 머무르며 오래 서성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바꾼다니, 바꿀 수 있긴 한 건가? 자기 자신을 바꾸려 드는 그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디서 그런 마음이 비롯되는 걸까. 세간에서는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리는데, 나락에 떨어졌다가 부활했던 잡스의 서사가 '인간은 달라질 수 있다'고 증언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좋은 의미에서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 스티브 잡스. 그 변화의 원천은 일종의 '향상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죠.

 

그리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에는 '방향'이 필요합니다. 변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변화할 마음이, 이유가 선행해야 합니다. 그 마음과 이유가 가리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대도 결국 그 방향을 유지해 '다른 인간'이 되려면 자발성이 수반돼야 하죠. 반대로 그게 부재할 때 인간은 변화할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방향의 부재'가 가져오는 방황.

'변화의 불가능성'을 저는 아이들로부터 종종 발견합니다. 

 

신기하게도 올 여름에는 미디어 관련 강연도 자주 나갔습니다. 무려 2년 전 출간했던 저서 <아이들의 화면 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주제로 또 다시 강연 의뢰가 여러 건 들어왔던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주제로 반복해서 저를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문제를 겪는 아이들을 돕는 센터, 저소득층 아이들을 케어하는 방과후 지도교사들입니다. 

 

워낙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달고 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가족과의 불화, 부모의 방임, 저소득층이라는 불안정한 기반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뾰족한 문제입니다. 이들은 방과 후에 다른 '방과 후 활동'을 하기 어렵고, 자연스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차라리 부모님이 제재하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그런 도움의 손길이 없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방치돼 있는 상황입니다. 

 

강연을 통해 저는 '스마트폰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쓰는 방식'에 관한 화두를 던집니다. 아이들은 단지 스마트폰을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이라고요. 설령 현실이 제한적이더라도 화면을 통해 무언가 할 수 있다면, 적어도 시간이라도 재밌게 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그러니 아이들의 화면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요. 

 

그리고 시간을 잘 쓰려면 '향상심'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의식적으로 다르게 쓰는 방향, 그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이유'가 필요하죠. 아이들은 굳이 시간을 다르게 써야 할 이유가 없어서, 혹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서 하릴없이 화면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문장에 상담사분들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첨부 이미지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 잘하면 나중에 잘 된다"는 주문은 그리 와닿지 않습니다. 실제로 <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라는 책에서 저자는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아이가 어떻게 사회를 등지고 새로운 기회를 거부하는지 묘사합니다. 저자는 친부모로부터 버려져 미국 위탁가정들을 전전하다가 입양됐지만, 이윽고 양부에게 한 번 더 버려졌던 아이였습니다. 

 

"좋은 선택을 하기란 최고의 환경에서조자 어려운 일이다. 또한, 어떤 일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일을 실제로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어렸을 때 내가 하는 많은 선택이 현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상관하지 않았을 뿐. 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이들에게는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 빈곤층 아이들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많은 경우 이를 일부러 거부한다. 오래 학대를 받은 나머지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초창기 잡스를 변화시킨 3가지 힘

 

잡스 또한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나고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입양아로 양부모님 집에서 살게 됐죠. 학비 부담은 본인이 다니던 리드 대학을 중퇴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는 분명 쉽지 않은 여건에 놓여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어쩌면 앞서 서술했던 아이들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 창업 초창기에 한 번, 그리고 넥스트를 거쳐 애플에 복귀한 이후 또 한 번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했습니다. 단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분기점마다 잡스는 이전과는 다른 결정을 내려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나 (잘 아시다시피) 넥스트를 거쳐 인격적으로 성숙한 잡스는 21세기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로 도약했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걸까요?

 

(1) 어차피 세상에 맞출 수 없다면 내가 세상을 만들겠다.

 

다른 인간이 되려면 더 나아지고 싶은 '이유'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스티브 잡스에게는 '비전'이었습니다. 세상에 오래 남을 무언가, 진실로 중요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욕망이랄까요. 단순히 창업가, 사업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는 '흔적'을 남기길 원했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렇게 배웁니다. 세상과 너무 부딪치기보다는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인생을 즐기고, 돈도 좀 모으면서 살라고요. 하지만 그건 너무나 '제한된' 삶입니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당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누군가 만들어낸 겁니다. 누구나 그걸 바꿀 수 있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당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삶을 실제로 건드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을 바꾸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삶이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린 그저 그 안에서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그 대신에 삶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서 여러분만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특히 저는 잡스가 "사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당신보다 똑똑하지 않은)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표현한 데 주목합니다.

 

그는 일찍이 남들이 세운 규칙과 정해둔 틀에 자신이 맞지 않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위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이데올로기,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신화, 사회적으로 성공해 재정적으로 부를 축적해야 한다는 설교. 어리고 젊었던 잡스는 그 기준치에 자신을 맞추지 못해 낙심하는 대신 그걸 거부하는 것으로, 다만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갔습니다. 

 


 

   (2) 자기파괴에 빠지지 않으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크게 흔들려 자신을 파괴할 수도 있는 위기의 연속.

 

그런데도 그가 환골탈태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랑, 사랑이 주는 안정감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잡스가 1000% 친부모님이라고 여길 만큼 각별했던 양부모님 덕분에 그는 큰 어긋남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는데요. 이처럼 그가 위험을 감수하거나 고통을 감내하는 순간마다 평범한 지지와 사랑이 그를 지탱해줬다고 합니다.   

 

비록 팟캐스트 영상에 다 담지 못했지만, 책 <넥스트 스티브 잡스>는 잡스가 넥스트 시기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낳았다는 점을 조명합니다. 단지 혼기가 차서 결혼을 한 게 아니라, 그 무렵 결혼과 가정에 관한 호기심이 생겼다고 묘사하는데요. 어쩌다 다른 사업 파트너의 집에서 묵으며 가족들의 식사 시간을 지켜보며 잡스는 '가정'에 대한 관점을 바꾸게 됐습니다. 

 

"철저하게 통제된 고객 관계에만 익숙했던 한 남자에게, 그 상황은 하나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아침 식사를 하며 서로 오렌지 주스를 건네고, 격식 없이 투덜거리며 논쟁을 벌이는 한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식탁을 서로 간의 유대감을 쌓는 공간으로 대하고 있었다. (...) 연설 장소로 가는 차에 타자마자 스티브가 밥을 붙잡고 말했다. '밥, 방금 정말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식탁에 둘러앉아 정치를 이야기하고 아침을 먹는 가족과 함께했어요. 밥, 당신은 아내를 어떻게 만났어요?' 딕은 스티브가 배우자를 찾고 가정을 꾸리는 방법에 대해 세부 사항을 캐물으며 머릿속이 돌아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잡스는 자기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보면 즉시 그런 종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내고 싶어했어요.'라고 딕은 말했다."

 

잡스는 이후 한 강연장에서 로렌 파월을 만나 첫눈에 반했어요. 이들은 결혼했고,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더 얻었어요. 아기를 키우며 잡스는 아버지가 되는 법을 익혔고요. (과거에는 혼인 관계 없이 얻은 첫째 딸 리사를 외면했지만, 점차 리사와의 관계도 회복했다고 하네요.)

 

<넥스트 스티브 잡스>의 저자는 잡스의 개인적인 경험이 타인을 보는 관점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짚었습니다. 이전에는 일이 아니라 가정을 우선시하는 동료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가족이 주는 충만함과 사랑을 직접 선택하고 만끽하면서 타인에게 조금 더 공감할 여지가 생겼다고요. 가장 힘든 시기에 잡스는 가장 깊은 사랑을 누리며 광야의 삶을 버텼고, 끝내 리더로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2003년 가족들과 여행을 즐기는 스티브 잡스의 생전 모습.
2003년 가족들과 여행을 즐기는 스티브 잡스의 생전 모습.

 

  (3) 일단 실행하면 '실패할 위험'이 생긴다. 그게 추진력이 된다.

 

맨발로 산책하며 대화하기를 즐겼던 잡스. 그런 그가 정장을 빼입고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세일즈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센세이션합니다. 아무리 사람이 변한다 한들 '자기다움'을 버리면서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그만큼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는 데는 무엇보다도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정확히는, '더는 실패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잡스는 애플에서 방출돼 NeXT를 설립했습니다. '나를 내보내다니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심산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잘못된 의사결정을 이어갔습니다. 초창기 애플을 띄우며 기고만장, 기세등등했던 잡스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피드백에 귀를 닫거나 사업적으로 옳은 선택을 내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결국 실리콘밸리 모두가 눈여겨보던 복수극은 흐지부지되는 듯했죠. 

 

급기야 본인 전재산을 탕진할 위기에 처하자 잡스는 조용히 변신했습니다. 본인이 고집했던 컴퓨터 하드웨어가 아니라 수익이 나고 시장의 주목을 받던, 막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던 소프트웨어 분야로 눈길을 돌렸죠. 자신이 놓쳤던 시장 트렌드와 거대한 기회를 늦게나마 포착하면서 말그대로 "실패에서 배우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넥스트 설립 후 인터뷰 기사. '그가 다시 해낼 수 있을까?'라는 헤드라인이 인상깊습니다.
넥스트 설립 후 인터뷰 기사. '그가 다시 해낼 수 있을까?'라는 헤드라인이 인상깊습니다.

 

스타트업 투자사 와이콤비네이터(YC)의 설립자 폴 그레이엄은 벤처 창업을 하기 위해 재능보다 결단력, 야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합니다. 맨손으로 세상에 없던 무언가, 시장에 한 획을 그을 솔루션을 선보이는 건 너무나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요. 그래서 똑똑한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온갖 장애물을 다 뚫어내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한데, 그레이엄은 이를 '야심'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야심이 곧 '억만장자가 되는 꿈'과 직결되느냐 하면 또 그렇진 않습니다. 그보다는 매일매일 혹시나 실패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는 마음이 창업자를 밀어 올려 야망을 실현시킨다고요. 

 

"성공하면 엄청난 부자가 될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동기가 되기는 해요. 하지만 어느 특정 순간에 그 사람을 움직이는 건 '재앙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바보처럼 보일까 하는 두려움, 서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거요.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서버가 죽어가고 있을 때 '이걸 해결하면 억만장자가 될 테니 처리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안 돼, 서버 죽는다, 큰일 났다" 이렇게 생각하죠. 비유하자면 "내 모형 기차의 기관차가 책상 끄트머리에서 떨어지려고 한다, 얼른 가서 구해야 한다"는 심정이에요. 어느 순간에나 창업자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어요. 그냥 내 모형 기차 세트가 망가지는 게 싫은 거예요." - 폴 그레이엄

 

이런 맥락에서 비춰보자면, 야심만만했던 잡스도 사실 '스타트업 창업자'에 불과합니다. 곳간이 넉넉해서 배짱 두둑하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을 뿐, 사실상 막다른 골목에 서있었던 마찬가지였죠. 결국 '재앙에 대한 두려움'은 잡스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방향을 고쳐잡는 계기가 됐습니다.

 

무언가 저질렀기에 실패를 거듭했고,

그 덕분에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었던 겁니다. 

 

첨부 이미지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되긴 어렵겠지만

 

잡스는 20대에 성공한, 창창한 창업가였다가 30대에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진 사업가가 됐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고, 40대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어른'이 됐습니다. 결국 세상에 오래 남길 만한 무언가를 남기는 데도 성공했고요. "사람 안 바뀐다"는 냉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산증인이 된 잡스의 바탕에는 관점의 전환, 사랑과 실행이 있었습니다. 

 

(잡스에 견줄 만큼 거창하거나 위대한 건 아니지만) 저 또한 점진적으로 '다른 인간'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비가역적으로)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일하는 나', 홀로 선 나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절대로 전처럼 일할 수도, 시간을 쓸 수도 없다는 건 명백합니다. 여러모로 달라져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런 저에게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아마도 '실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리적으로,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실행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거니와 무엇을 시도해봐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어요. 시도 자체를 주저하고 있고요. 하지만 <넥스트 스티브 잡스>를 읽으며 묘한 위안을 얻었습니다. 아, 잡스 아저씨도 이렇게 헤맸는데 내가 뭐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헤매야겠구나 실감했달까요. 

 

이 야밤에 아기를 재운 후 겨우 씻고 글을 마무리하며. 당장 내년에는 돈을 거의 벌지 못한다 해도 오래토록 남길 만한 무언가를 만들자는 각오를 다잡아 봅니다. 아기가 돌이 지나니 드디어 개인으로서도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여력이 생겼습니다. 반가운 신호입니다. 조금은 다른, 더 나은 내년을 시도해봐야겠죠. 근 4년간 시간을 쓰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판, 다른 나를 다시 세울 때입니다. 

 

책  <넥스트 스티브 잡스>도 추천합니다! 책이 너무 두껍고(ㅠㅠ) 비즈니스 의사결정과 시행착오에 관한 내용이 다수이긴 합니다. 그래도 일반적인 영웅 서사처럼 재밌게 읽혔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실존 인물이다 보니 디테일이 빼곡하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게 어떤 건지 궁금하시다면 펼쳐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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