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사랑하기까지

15. 나는 왜 아기를 낳기로 결심했나

자식을 꿈도 꾸지 않았던 내가 생각을 바꾸고 '다른 선택'을 하기까지

2025.11.07 | 조회 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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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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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러스 창업자|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9월에 오랜만에 뉴스레터를 발행하고선 벌써 쌀쌀한 11월이 됐습니다. 

매달 꼭 한 편씩 글을 써야지 다짐했던 게 무색하도록 시간은 훌쩍 흐르고, 계획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답니다. 

어쩔 수 없죠. 육아는 온갖 변수가 출동하는,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어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제는 아기띠도 탈 줄 아는 아기.
이제는 아기띠도 탈 줄 아는 아기.

 

아기는 벌써 100일이 지났습니다. 

100일의 기적이 있다더니 정말로, 그 전부터 5시간씩 자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죠. 어느 날은 8시간 넘게 자기도 했습니다. 

그말인즉슨, 그 전에는 5시간씩 잘 수 없었다는 의미인데(...)

생후 50일 이내인 신생아 시절에는 2~3시간씩 자고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아직 낮과 밤을 모르는 아이의 생체리듬에 맞춰 양육자도 2~3시간마다 일어나는 강행군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자명한, 예견된 사실임에도 몸으로 부딪치며 마주하니 매우 새롭습니다. 매일 배우고 배우며, 좌절했다가 행복하길 반복하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자그마했던 아기가 2배 넘게 컸다니... 성장하느라 고생했을 듯합니다.
이렇게 자그마했던 아기가 2배 넘게 컸다니... 성장하느라 고생했을 듯합니다.

 

래 저는 아기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순히 '아기 낳기 싫어!'라기보다는 '아기를 낳지 않기로 선택함'에 가까웠죠. 오래 연인이었던 지금의 남편과는 연애 시절,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나는 아기를 낳기가 좀 그래. 결국 아기는 어떤 식으로든 불행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가 태어나기로 선택한 건 또 아니잖아. 아무리 내가 갖은 노력을 해도 결국 아기가 (자기 의사와 상관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게 무서워."

 

가볍게 시작했던 "2세 계획" 대화는 저의 엉뚱한 답변으로 인해 진지해졌습니다. (그때는 애인이었던) 남편은 사뭇 놀라는 눈치였어요. 막연히 자식을 낳고 싶다, 아빠가 되고 싶다고만 생각해봤지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일정량의) 불행까지 상상해본 적은 없었던 까닭입니다. 현실적인 그에 비해 생각이 많은 제가 너무 앞서간 탓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스쳐갔던 대화는 며칠 뒤 다시 소환됐습니다. 저는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남편이 뜬금없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자식을 낳고 싶어.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좋은 아빠가 돼 주고 싶어."

 

설령 이견이 있더라도 굳이 내색하거나 구태여 말을 붙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번에는 제가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 며칠 얼마나 골똘히 고민했던 걸까 미안하기도 했고요. 한편으로는 다시금 의아함이 슬며시 고개를 쳐 들었습니다. 

 

도대체 자식을 낳고 싶은 마음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싶었죠.

 

결혼할 때조차도 자식을 낳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나(...)
결혼할 때조차도 자식을 낳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나(...)

 

그랬던 제가 처음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친정엄마의 한마디 덕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엄마와 언니와 제가 같이 여행을 갔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셋이 같이 숙소에 누웠고, 저는 먼저 선잠이 들어 비몽사몽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엄마는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마침 언니가 일하며 느끼는 고충을 토로했는데, 엄마는 대뜸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너희를 낳아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 내 인생은 보잘 것 없더라도, 그래도 가장 장한 업적은 너희를 낳아서 이만큼 키운 일이 아닌가 싶어."

 

이 한마디는 오래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특히 '업적'이라는 표현이 새삼스러웠죠. 단지 '자식을 낳아서 좋다'가 아니라,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자식이라는 것. "우리는 부모님의 자랑"이라는 진부한 글귀가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니 훨씬 묵직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 고백이야말로 솔직하고, 그래서 설득력 있는 이유로 와닿았던 듯합니다. 

 

이때까지는 '자식을 사랑해서 낳는다'거나 '자식을 낳고 싶다'는 이유가 와닿진 않았어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미리 사랑한다는 감정선을 헤아리기 어려웠어요. 사랑을 가불해서 아기를 갖고자 노력한다는 순서가 이상했달까요. 그렇다 보니 엄마의 드라이한 한마디가 '어쩌면 자식을 낳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엉뚱하고 갑작스러운 파형을 일으켰습니다.

 

 

제법 인간 모양을 띄게 됐던 아기.
제법 인간 모양을 띄게 됐던 아기.

 

아기를 만나기로 마음 먹은, 좀 더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매우 내밀하고 개인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불행보다 '그래도 살 만하다'는 마음의 무게가 더 커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그리 중요해지지 않으면서 아기를 낳을 수 있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보통 아기 낳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 있습니다. 혼자 적당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그게 아기를 낳기로 행동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대로도 괜찮다'는 안정감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 아기를 낳고서 어떻게 먹고 살며 살아갈지 막막하기도 하고요. 

 

헌데 '아기를 만나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때쯤, 제 인생 가장 행복하고 평안한 시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소중한 인연들이 있고, 내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매일이 근사했습니다. 놀랍게도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창 밖을 보면서 '이대로 죽기는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가장 마음이 편안한 때 '이제는 아기를 만날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령 아기가 태어나 내 인생이 영영 바뀌어 버린데도 상관없다는 심정도 컸습니다. 20대 때부터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무엇을 잘하나, 무엇을 원하나 찾아 헤매며 10년 넘는 시간을 보내보니 '나'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죠. '나'를 추구할 만큼 추구했고, 고민하고 실행해서 제법 열심히 살아봤으니 '나의 인생'이 뒤바뀌어도 상관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출산 2~3일 전. 생각보다 배가 더 컸군요...!
출산 2~3일 전. 생각보다 배가 더 컸군요...!

 

책 <무지의 즐거움>을 쓴 우치다 다쓰루는 이런 글을 남긴 바 있습니다. 

 

"'진정한 나'를 찾아서 평생 그것을 연기하는 것은 저에게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진정한 나' 같은 것에 아무런 흥미가 없거든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은 인간이라면 외려 살아갈 보람이 없지 않을까요?"

- 책 <무지의 즐거움>

 

어쩌면 지금 온전한 내 일상에 만족하면서도, 다음/다른 삶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 맥락이 위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결혼하기 전 창업 팀에 합류했을 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게 내가 원하는 방향이던가' 심난해져서 지인을 찾아갔습니다. 공동창업자로 일한 경험이 있던 지인에게 '내가 이걸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고민거리를 털어놓았죠. 한참 제 말을 듣던 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데 지윤 님, 내가 원하는 것도 자꾸 바뀌더라고요. 지금은 이걸 원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면 다른 걸 원하게 되고 그래요. 그러니 너무 '내가 원하는 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어요."

 

그 사소한 관점이 제 뇌리에 새겨져 있다가 아기를 맞이하기로 결심할 때쯤 다시 떠올랐습니다. 어차피 '나'라는 개념은 수시로 바뀌는데, 그것이 변화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죠. 이미 충분히 나 자신을 탐구하며 즐거움을 찾아 냈으니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느꼈달까요. 의외로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담담함이 아기를 낳는 결정적인 동력이 됐습니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연속적인 '자기 쇄신'을 이루는 일입니다. 쇄신, 즉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워지려면 이전까지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는 사념과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을 품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겠지요. 그런데 그런 새로운 사념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휘끄러미 안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단어를 손수 찾으면서 말할 수밖에 없겠지요. 당연히 확실하고 큰 목소리로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작은 목소리로 중엉거리듯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게 당연합니다."

- 책 <무지의 즐거움>

 

 

아직 손을 쓸 줄 몰라서 손싸개를 하고 있던 시절.
아직 손을 쓸 줄 몰라서 손싸개를 하고 있던 시절.

 

물론 막상 아기를 낳아보니 저는 부족함투성이였습니다. 아기를 안는 방법도 모르고, 밥 먹이는 데도 애먹고, 아기가 울 때 달래주다가 같이 울거나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신생아는 신생아대로 모든 게 처음이라 엉엉 울고, 어미는 어미대로 모든 게 서툴러서 쩔쩔맸죠. '아기가 나중에 불행하면 어쩌나' 같은 사치스런 고민은 '지금 괴로움을 주는 건가' 하는 절망감으로 상쇄됐습니다. 

 

그럼에도 아기를 낳아 다행이라고 여깁니다. 매일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경이로움을 느끼고, 아기를 따라 저도 엄마가 돼 가는 과정에서 겸손을 배우거든요. 내가 얼마나 인내심이 없는지, 반면 사랑은 얼마나 인내를 요구하는지 실감합니다. 그걸 기꺼이 감내하며 제가 과거의 자신과 완전히 달라지는 지금이 좋습니다. 그야말로 쇄신의 쇄신을 거듭하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보다 (일을 해야 하기에) 아기를 같이 돌봐주시는 부모님들로부터 사랑을 다시 배웁니다. 어쩜 부모님들은 그리 인내심이 깊은 걸까요. 아기를 몇 시간씩 안아서 달래고, 아무리 늦은 새벽이라도 아기를 받아주는 모습에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인내하며 키웠겠구나 실감하며 감사함도 배로 커지고요. 

 

사랑은 배려를 반복하는 일이 아닌가 체감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아기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힘들다'는 감정도 참 컸는데요. 그래도 사랑을 행동으로 반복하다 보니 점차 '습관'이 되는 걸 느낍니다. 이제는 아기를 달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시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몸에 스며든 돌봄의 습관이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모습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돌보는 것이 습관이 된 부모님의 사랑을 제가 물려받아 아기에게 선사하는 연습을 합니다. 지난 새벽도, 오늘 하루도, 이번 달도, 일평생을 그리 하리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아기와 함께한 첫 가을.
아기와 함께한 첫 가을.

 

아기를 낳기로 한 결심을 후회할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합니다. 가끔 아기가 아프거나 너무 많이 보챌 때, 혹은 제가 제 부족함에 지쳐 낙담할 때 마음이 번잡할 순 있겠지만요. 나는 나로 충분히 수십 년을 살았으니 그것으로 족하고,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아기와 함께)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더는 과거에 관한 미련 없이 내일에 대한 설렘으로 지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요? 혹은 어떤 선택을 망설이고 있나요?

 

인생을 바꿀 만큼 큰 선택을 앞두고 있다면, 나름의 이유를 꼭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물살에 떠밀려 살지 않고 파도를 타는 자세로, 그렇게 '선택'하며 살고자 힘쓸 때 인생은 퍽 재밌고 의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기를 결코 낳지 않을 것 같던 제가 자세를 고쳐 잡고 전혀 다른 미래를 살아가는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뜻밖에, 그러나 기분 좋고 완전히 새로운 선택들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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