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러스 인터뷰

덕업일치, 행복할까?

퇴사 후 레스토랑 창업, 다시 취업한 수아 님의 이야기

2025.09.16 | 조회 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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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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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러스 다이어리

스텔러스 창업자|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2024년 11월에 뉴스레터를 쓰고 거의 10달 만에 새 글을 들고 돌아왔네요. 

그 사이 저는 아기를 낳고(!) 동분서주 바쁜 일상을 수습하고 있었답니다. 다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정확히 11월에 아기가 저에게 찾아왔으니 딱 아기를 품고 세상에 낳는 동안 잠시 스텔러스 다이어리를 쉬어갔습니다. 드디어 숨을 고르며 다시 책을 펼치듯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나에게 찾아오다니...!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나에게 찾아오다니...!

 

아마도 매주 글을 쓰긴 어렵겠지만, 최대한 매달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글을 써서 보내드리기 위해 틈을 마련하겠지 싶습니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스텔러스 다이어리를 운영하는 만큼, 펜을 놓지 않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거든요.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하며 자세한 이야기를 10월에 뉴스레터로 담아보겠습니다. 오늘은 작년 겨울에 찐한 대화를 나누었던 5번째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착실하게 적었습니다!

 


[아티클 한 눈에 보기]

  • 퇴사하고 직접 레스토랑을 차리기까지의 과정
  • 맛집 엑셀 리스트 만들던 내가 창업을 하기까지
  • ‘맛있는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좌우명의 비밀
  • 좋아하는 일을 하며 불안함을 다스리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덕후가 세상을 구한다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이제는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고 그걸 ‘자기 길’로까지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덕업일치는 행복한 만큼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일’이 되기 때문에, 혹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 일을 잘 해내지 못 할 때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일이 10년을 채우면서 이제는 무엇을 봐도 ‘글감’을 찾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 미묘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스텔러스 5번째 이야기는 퇴사 후 ‘소맥바’라는 팝업을 열었던 임수아 님을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현재 수아 님은 플라야라는 부동산 개발 스타트업에서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본연이라는 레스토랑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소맥바라는 가게를 차려 창업을 경험한 후 다시 취업을 선택해 (어쩌면 비슷하게) 레스토랑의 전체적인 경험을 빚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아 님을 처음 봤을 때는 소맥바에 도전하기 전이었습니다. 한 눈에 봐도 이 사람은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지역이든 맛집을 통달하고 있고, 언제나 맛있는 걸 사들고 찾아오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는 레스토랑을 창업하고서 식음료(F&B) 업계로 커리어를 만드는 덕업일치의 정석이었습니다.

그의 덕업일치 일대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는 과정을 어떻고, 그 과정에서 덕업일치는 그 사람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까요?

“맛있는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수아 님의 스토리가 여러분에게도 업을 대하는 자세와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여정에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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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직접 레스토랑을 차리기까지의 과정

 

Q. 수아 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플라야라는 부동산 스타트업에서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는 임수아입니다.

플라야는 브랜드를 직접 만들고 운영하며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는 회사에요. 현재 레스토랑 ‘본연’과 프라이빗 멤버십 서비스가 대표적이에요! 저는 2년 전 이 회사에 합류해서 F&B 브랜드를 만들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Q. F&B 브랜드를 만드신다면 주로 레스토랑에 관한 일을 하시겠네요.

맞아요. 2023년 10월 입사했을 때 막 레스토랑 ‘본연’ 오픈을 준비하는 시점이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배경준 셰프님(원투쓰리)과 함께 기획하고 본연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레스토랑 운영부터 결산까지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Q. 레스토랑을 만드는 일이라니 신기하네요. 그 전에도 식당을 창업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022년 가을에 ‘소맥바’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한국의 소맥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컨셉의 팝업 식당(?)을 차리는 도전이었어요. 

(소맥바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그 무렵 제가 F&B 분야를 좋아한지 10년이 넘은 시점이었어요. 이렇게 무언가를 좋아하다보면 한 번쯤 이 분야에서 무언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마침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고 그럼 한번 뭐라도 만들어볼까 고민하다가 결심했어요.

‘제대로 도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앞으로 미련가지지 말고 확실하게 커리어를 정하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실패하자!’

그래서 소맥바라는 아이템을 기획했고, 부동산 찾는 것부터 인테리어, 식당 세팅, 운영, 서빙 그리고 폐업까지 모두 경험해봤어요. 

 

이태원에 있던 소맥바 모습. 출처 : 임수아
이태원에 있던 소맥바 모습. 출처 : 임수아

 

Q. ‘소맥’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니 독특합니다. 왜 ‘소맥’이어야 했을까요?

일단 해외 진출이 가능한 컨셉이면서도 함께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을 골라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야 지치지 않고 제대로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소맥을 골랐습니다. 

일반적인 소맥 자체는 우리나라에서 경쟁력이 없어요. 다들 모두가 제조할 수 있는 ‘저렴한 술’로 인식하니까요. 하지만 해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소맥은 (저마다 레시피가 다른) 칵테일처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300ml 크기의 글라스에 전통 소주를 활용해서 메뉴를 개발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소맥바가 아니라 소’메이크(make)’바에요. 각자 소맥을 타는 비법이 있잖아요. 그 "탄다"를 Make로 해석했어요. ‘술을 제조한다’는 데 초점이 있어요. 

 

Q. 그래서 소맥이군요. 실제로 레스토랑 창업을 해보니 어떠셨나요?

새로운 소맥을 만들어서 해외로도 알리면 좋겠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으니 외국인 손님들의 반응이 중요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여러 입지 중에서 이태원에 2달간 부동산을 임대하기로 계약을 했죠. 헌데 오픈 일주일 전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어요. 골목에 아무도 없었어요. 이미 부동산 계약이 끝난 상태라 위치를 바꿀 순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 인맥을 총동원해서 ‘소맥바에 오세요’라고 초대했어요. 목표가 실험에서 생존으로 바뀌었거든요. 다행히 소문이 잘 나서 많은 분들이 방문해주셨어요. 전통주 분야에서도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아이템을 시도한다고 긍정적으로 봐주셨고요. 정말 덕분에 무사히 소맥바 영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적자긴 했지만) 수 천만 원의 매출도 만들었고, 무엇보다 모르는 분들이 입소문만으로 매장에 방문해주시고 재방문한 분들도 정말 많았고요. 진귀한 경험을 했어요. F&B 분야의 A부터 Z까지 모두 경험해봤다는 점도 의미 있었고요. 함께 소맥바를 만든 파트너들과 싸우지 않고(!) 처음부터 다 소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습니다🙂

 

소맥바에서 서빙을 하는 수아님의 모습. 출처 : 임수아
소맥바에서 서빙을 하는 수아님의 모습. 출처 : 임수아

 

Q. 아무리 F&B 분야에 관심이 있대도 레스토랑 창업을 하는 건 다른 문제 같아요. 왜 이 분야에 제대로 도전해야 한다고 다짐하셨던 걸까요?

결국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뛰는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미식을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가 너무나 존경하는 분들과 이 업에서 무언가 작게라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전부터 제가 해온 일들이 돌이켜 보면 모두 F&B와 관련된 것들이더라고요. 첫 직장은 맛집 애플리케이션 에디터였고, 이후 트레바리에 입사했을 때도 (F&B 경험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벤트 담당으로 일했어요. 맛집 컨시어지 서비스를 지향했던 ‘밥면빵’을 만들었을 때도 (스타트업의 사이드 프로젝트 성격을 띄지만) 결국 F&B 분야와 맞닿아 있었죠.

확실히 저는 사람, 커뮤니티, 문화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늘 음식이 있다는 걸 배웠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F&B 업을 잘 모르면서 F&B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했거든요. 그럼 F&B에서 본격적으로 무언가 시도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지금은 또 생각이 달라졌어요ㅎㅎ) 

 

Q. 이후 소맥바가 아니라 지금의 회사에 다시 취업을 하셨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왜 이런 결정을 내리셨던 걸까요?

소맥바 이후 이듬해에는 ‘소맥키트’를 만드는 시도를 했어요. 도쿄바나나처럼 한국에 방문했을 때 꼭 사야 하는 시그니처를 만들어 수출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로컬 기반으로 소맥키트를 개발하려고 준비했어요. 

헌데 소맥키트는 (유통과 제작까지 부딪쳐야 하는) 또 다른 영역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지역에서 사업을 펼치기 위해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공장에 자주 방문해야 했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어요. 유통업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것 투성이였고요. 

‘이대로 가는 게 맞을까’ 고민하던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플라야 대표님을 알게 됐어요. 감사하게도 논알콜에 관한 프로젝트를 협업할 기회가 생겼고, 이후에는 아예 입사 제안을 받았어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대표님의 꿈이  마침 제 고민 포인트와 맞닿아있는 회사라서 취업을 결정했습니다. 

 

Q. 어떤 지점에서 수아 님의 고민과 플라야가 연결돼 있었나요?

그간 F&B 사업을 경험하면서 제가 많이 느꼈던 것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사업구조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F&B로 돈을 벌려면 부동산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회사를 통해 부동산에 관해 배울 수 있다면 제 시야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하기 어려운 시도들을 기반이 탄탄한 회사를 통해 해볼 수 있다는 점도 가치 있다고 봤고요. 일을 통해 배울 점이 명확했습니다. 

 


 

맛집 엑셀 리스트 만들던 내가 창업을 하기까지

 

Q. 여러모로 F&B 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네요. 언제부터 ‘먹는 일’에 관심이 생기셨던 걸까요? 

일단 어렸을 때부터 맛있는 걸 좋아했어요. 부모님 모두 맛있는 음식에 진심이세요. 명절에 잔치집처럼 음식을 넉넉히 만들어 먹는 걸 보고 자랐어요. (너무 어린 시절이라 제 기억에는 없지만) 조부모님께서 옛날에 농사를 지었는데, 제가 딸기 하우스에 들어가서 딸기를 따먹느라 나오질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기본적으로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곧바로 맛집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동아리 이름이 ‘혀’인데요👅 제가 고3 때 인터넷에서 직접 ‘맛집 동아리’를 검색해서 이 동아리의 존재를 알아냈고,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꼭 이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어요. 진짜로 대학에 입학한 후로 바로 맛집 동아리에 입문한 셈이죠. 

 

Q. 이름이 매우 직관적이네요…ㅎㅎ 실제로 맛집 동아리에 들어가 보니 어땠나요?

동아리 선배님들 덕분에 맛집을 정말 많이 알게 됐어요. 그래서 ‘맛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에서 ‘맛집 많이 아는 애’로, 졸업 쯤에는 ‘먹는 것에 (좋은 의미로) 돌아있는 사람’으로 진화(?)할 수 있었어요. 2012년 경리단길, 연남동, 망원동, 익선동이 뜨는 걸 몸소 경험하면서 맛집을 빨리 알면 트렌드도 부동산도 빨리 접한다는 걸 배웠어요

 

맛있는 사진으로 가득한 수아님의 인스타그램 피드.
맛있는 사진으로 가득한 수아님의 인스타그램 피드.

 

Q.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일종의 ‘덕업일치’ 경지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맛집 동아리가 취업으로까지 이어졌던 걸까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저에게 맛집에 대해 자주 물어봤어요. 그래서 아예 질문 템플릿(!)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1)어디서 (2)누구랑 (3)몇 명이 (4)얼마의 예산으로 식사를 하는지 적어달라고 정했죠. 나중에는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지역별, 가격별 추천 순위를 정리해 친구들한테 공유해줬어요. 

이 무렵이 대학교 3학년이었을 때였어요. 제 주전공이었던 경영학과에는 영 마음을 붙이지 못했어요. 그래서 복수전공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있는 스토리텔링학과 심화 전공을 열심히 들었어요. 그러다가 4학년 막학기에 ‘UI/UX 기초’라는 강의를 발견했어요. 사용자 경험(UX)이라는 표현이 왠지 끌려서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수강 신청을 했죠. 

그 수업의 첫 강연자가 (제 첫 직장이었던) 맛집 어플리케이션 회사의 이사님이셨어요. ‘맛집 플랫폼’이라니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업 끝나자마자 이사님을 찾아갔어요. “저 맛집 좋아해요!”라면서 맛집 엑셀 시트도 보여드렸죠. 한 30분 대화하고서 이사 님이 “내일 인턴 면접 볼래요?”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게 하루 만에 지원서를 써서 인턴이 됐어요

 

Q. 맛집에 관한 에디터가 된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에디터로 일하면서 콘텐츠 사업개발(BD)를 같이 했어요. ‘남들은 콘텐츠로 어떻게 사업을 하는 걸까?’ 궁금했거든요. 단순히 마케팅의 소스로 쓰이는 콘텐츠가 아니라 직접 돈을 벌 수 있으면 어떨까?

그래서 콘텐츠에 관한 트레바리 모임에도 참석하고, 거기서 (현재 프로젝트썸원이라는 멤버십을 운영하는) 윤성원 님과 (현재는 강남언니에서 이사로 계시는) 현근 님을 알게 됐어요. 두 분 모두 ‘수아 님이 가진 콘텐츠는 대단하다’고 응원해주셨어요. 저는 맛집을 좋아하고 많이 아는 자체가 콘텐츠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용기를 얻어서 퇴사를 결심하게 됐어요. 

이후 현근 님과 함께 '밥면빵'이라는 맛집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제로 베이스에서 서비스를 다 만들면서 디자이너, 개발자 님과 논의해서 서비스 배포하고 고객 응대까지 해보는 귀한 경험이었어요. 우리가 만든 서비스에 사람들이 결제를 한다는 게 엄청난 희열을 주더라고요. 무엇보다 팀원들이 좋아서 ‘좋은 팀’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첨부 이미지

 

하지만 밥면빵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서 한 사람이 수동으로 운영할 수 없는 시점이 됐어요. ‘수아 님이 대표 할래요?’라고 제안을 받았지만 당시 저는 부담감이 앞서서 못 하겠다고 답했어요. 그래서 밥면빵 운영을 보조하면서 트레바리에 입사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트레바리에서 이벤트를 여는 팀에 합류했습니다. 

 

Q. 하지만 트레바리에 합류하실 때쯤 코로나19가 터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ㄷㄷ 

맞습니다. 입사 한 달 만에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오프라인 이벤트를 못하게 되면서 ‘사업은 한치 앞도 진짜 모르는 거구나’ 실감했어요. 결국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항상 유지될 순 없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어요. 저 자신도 여러모로 지쳐서 퇴사를 하게 됐고요.

감사하게도 (나중에 플라야 대표님을 소개해주는) 누틸드 데이나 대표님이 콘텐츠 크루로 일해보라고 제안해주셨어요. 누틸드는 HR 컨설팅 회사였는데, 마침 저도 ‘좋은 팀이 좋은 사업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HR을 배울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협업을 시작했어요.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누틸드와 협업하며 데이나가 대표님들을 컨설팅 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어요. 저 자신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내가 대표가 된다면 어떤 사람이 될까’ 같은 고민을 할 기회였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맛있는 음식과 사람을 페어링하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고, 음식에 관한 일을 언젠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맛있는 것이 세상을 구한다’는 좌우명의 비밀

 

Q. 수아 님은 왜 스스로 ‘F&B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셨을까요?

사람들은 제가 ‘맛집 좋아하는 애’라고 생각하세요. 맞아요. 저는 맛집에 누군가 데려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 맛있는 음식을 누구와 먹는지가 제일 중요해요. 가게의 온도, 음악, 와인, 의자 같은 걸 모두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좋은 공간에서 좋은 대화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낼까 고심해요. 

이런 요소 하나하나에 담긴 고민이 결국 유저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봐요. 결국 제 지금 직함이 단지 브랜드 디렉터가 아니라 ‘익스피리언스(경험) 디렉터’인 이유도 결국 F&B를 통해 사람들의 경험을 만드는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반영했어요. 그 공간에서 그 사람과 이야기할 때 최적의 온도, 음식이 함께 하길 바라는 게 제 목적 같아요. 

 

Q. 수아 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맛있는 게 세상을 구할 거야”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이 문구도 관련이 있을까요?

밥면빵으로 일할 때 떠올린 좌우명이었어요. 항상 팀원들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었어요. 제가 추천한 맛집에 가면 다들 맛있어 하고 좋아하는 게 기뻤어요. 유저에게도 매한가지였어요. 비록 신사에서 1만원대 식사를 추천하기 위해 3가지 음식점을 고르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순전한 노가다(!?)라 해도 그걸 통해 만족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신났죠.

저는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기분이 좋아지면 그 기운이 전파된다고 생각해요. 맛있는 거 먹고 푹 자는 게 최고로 행복하잖아요. 그런 기운이 모여 내일 아침도 행복해지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다면 결국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기분이 좋은 만큼 좋은 결정을 내리게 되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맛있는 게 세상을 구한다’가 제 좌우명이 됐어요.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Q. 왜 소맥바를 창업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네요. 버릴 순간 하나 없이 모두 연결돼 지금의 수아 님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쵸. 실제로 누틸드 활동을 마무리한 후 슈아레터, 슈아테이블, 슈아살롱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 베이스의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어요. 사람들에게 맛집 뉴스레터를 써서 발행하거나 맛집을 주제로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진행해봤죠. (물론 이것도 적자였지만ㅎㅎ) 다행히 이러한 시도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F&B 업계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됐고요. 

누틸드에서 일할 때는 (책 <별게 다 영감>의 저자인) 마케터 승희 님이 제 멘토였어요. 제가 F&B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승희 님이 먼저 저를 F&B 모임 자리에 초대해주셨어요. 기라성 같은 업계 분들이 오는 자리였어요. 감사하게도 모임에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다음 모임에서 제가 진행자(모더레이터)를 맡을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F&B 분야에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죠. 

사실상 이 사람들 덕분에 소맥바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F&B 사업에 대해 모르는데, 식당 입지를 어디가 좋고 발주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업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릇도 그냥 빌려주시고, 컵은 어디서 사며 중고 기기는 어떻게 구하는지 다 알려주셨어요. 소맥바 오픈했을 때 모객까지 하나하나 다 도움을 주셨어요. 

 

Q.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F&B 분야에 도전할 수 있었네요. 

다 사람 덕분이에요.

제가 그동안 겪어온 과정 하나하나 다 말이 안 되잖아요. 대학 맛집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처음 들어본 강의에서 이사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은 사람들을 통해 밥면빵이나 트레바리 같이 좋은 팀과 일해보지 않았더라면 저는 버티지 못 했을 거예요. 결국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맛을 알아버려서 이제 저는 더 이상 사람을 싫어할 수가 없어요. 저를 움직이는 동력이 곧 ‘사람’이 돼 버렸어요. 우스개소리로,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식욕’과 ‘사람욕’이 많다고 이야기할 정도예요😂  

지금도 비슷해요.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할 때도 셰프님들과 자주 만나서 오래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상한(?) 질문을 많이 했어요. 음식보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알고 싶었거든요.

‘셰프님 인생 목표가 뭐예요?’

‘5년 후에 뭐 하고 싶어요?’

‘이 일을 왜 하시나요?’

그렇게 (맛있는 게 세상을 구한다는 마음으로)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았어요. 팀을 꾸리는 데도 동일했어요. 당장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더라도 좋은 사람들을 모아서 좋은 팀을 만들어서 오래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거든요. 서로 ‘왜 그렇게 해?’라고 질문하고 고민하며 같이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팀을 만들고자 해요. 쉽지 않더라도 즐거운 과정이에요. 

 

Q. 수아 님은 나 자신에 대한 서사가 되게 선명하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제 모든 커리어가 엮였다고 보는 게 맞아요. 지금 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 커리어가 엉망진창이라고 느꼈어요. 친구들은 이제 승진해서 리더 포지션까지 올라갔는데 도대체 저는 어디로 향하고 있나 싶었거든요. 

그래도 제게 사람복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그게 제 배수진이자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도 가족들이 제 사람복에 큰 비중을 차지해요. 

엄마, 아빠는 “가족이라고 당연한 게 없다. 서로 열심히 하자”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제가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도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실지언정 ‘별로다’라고 나무라신 적은 없었죠. 이렇게 좋은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나는 삐뚤어질 수 없겠구나 생각해요ㅎㅎ 내가 망해도 가족들은 날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좌충우돌하는) 제 커리어에 큰 안정감을 줍니다.

 

친동생의 결혼식을 기획했던 수아님. 출처 : 임수아
친동생의 결혼식을 기획했던 수아님. 출처 : 임수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불안함을 다스리는 방법은

 

Q.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왜 물러날 곳이 없는 배수의 진을 치며 일하시는 걸까요?

제 기조가 보통 이랬어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면 되지!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려는 ENTJ 스타일이에요.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이 최악에 치닫는 경우의 수까지, 끝까지 고민해두고 결정해요. 스스로 나름의 답안을 만들어놓고 실행하는 셈이죠. 

하지만 내 뜻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인간관계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을 때가 부지기수에요.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하는 저 자신을 마주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어쩌면 그럴 때 일이 저에게 도피처가 되기도 해요. 엉엉 울면서도 어떻게든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가 해결하며 움직이려는 것 같아요. 

 

Q. 일에서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쩌죠?😣

인생이 반대로 간다 싶을 때는 ‘좋은 팀’을 믿고 전진해야죠. 예를 들어 작년 9~10월쯤 스트레스가 쌓여있었어요. 그러면 팀에 털어놓아요. '저 도망가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안 도망가고 계속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이어갈 수 있을지 대화의 물꼬가 트여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믿으면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불확실성을 헤쳐나가는 편이에요.

이마저도 쉽지 않을 때는 여행을 가요. 대충 헤아려 보니 분기마다 한 번씩 지치는 타이밍이 오더라고요. 너무 달렸다 싶으면 틈틈이 숨통을 틔우는 여행을 가요. 점점 제가 저 자신을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죠. 약간 스트레스 받는 날은 제가 좋아하는 김밥을 싸보고, 그것도 안 되면 주말에 하루종일 자고, 그것도 안 되면 국내 어디든 가보고. 

 

김밥을 만드는 수아님. 출처 : 임수아
김밥을 만드는 수아님. 출처 : 임수아

 

특히 작년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느꼈어요. 불확실성을 마주하지 않고 살아갈 순 없구나. 그렇다 보니 제 마지막 안전망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제가 불구덩이에 뛰어든대도 그 안에 오아시스를 마련해놓는 식이죠. 모든 걸 대비할 수 없더라도 제가 좋아하는 일에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일의 중심에 있는) 좋은 사람들 덕분이에요. 

 

Q. 어쩌면 수아 님은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데, 안정감과 안전망을 고민하신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한동안은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내가 발전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을 것이라고, 그러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기면서 저 자신을 채찍질 하기도 했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장치를 마구마구 미리 만들어두기도 하고🥹 

한 번은 부모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좋은 딸’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지우지 않은 짐을 혼자 안고 힘들게 살아가냐고. 지인으로부터 ‘그냥 현재만 생각하며 살아도 된다’는 조언을 받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 갇혀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잘 하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내가 좋아하는 것에 갇힌다’라… 생각해보게 되는 문장이네요. 

대신에 제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슈퍼파워’가 발휘되기도 해요. 소맥바를 열었다가 위기를 마주했을 때도 어떻게든 해결한다는, 안광이 싹- 도는(?!) 순간이 와요.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오히려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려 어떻게든 해결해내는 게 재밌어요.

 

Q.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땐 어떻게 대처하실지 궁금합니다.

아쉬움 없게 살자, 다 뿌셔뿌셔 해결하면 된다는 게 제 모토지만 늘 아쉬움이 남아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근본적으로 부러워져요. 저는 제 일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저 자신이 너무 부족하게 작게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보다 이번 분야에서 기준이 더 높은 것 같아요. 내가 더 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불확실성보다 힘들어요

슬럼프도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아쉬움’ 때문에 와요. 예컨대 며칠 전 커튼을 사왔어요. 헌데 제가 완전히 엉뚱한 커튼을 골랐더라고요. 이제사 환불할 수도 없고… 이럴 때 ‘실수했네. 고치면 되지’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져요. 내가 좋아하는 일에서 실수를 했으니 도망치고 싶어지고, 그럴까 봐 안전망을 많이 만들어 두나 봐요.

 

Q. 좋아하기 때문에 힘이 나기도 하지만 겁이 나기도 하는 것이네요.

내가 다 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아쉬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못하면 어쩌나 싶은 아쉬움이 있어요. 무언가 라이트하게 시도하는 게 잘 안 되고. 그래서 요즘은 반대로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해요. 좋아하는 일이니까 더 잘하고 싶어요.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Q. 때로는 가볍게 무언가 시도해보는 것도 중요할 텐데, 혹시 2024년에 가볍게 시도해본 것은 없었을까요?

아, 가장 큰 발전은 노트북을 안 들고 다닌 것이에요. 예전에는 노트북이 없으면 너무 불안해서 늘 가지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예전에도 일부러 작은 가방을 매고 나와선 ‘오늘은 00일 만에 노트북 없이 외출했다~’고 포스팅을 남겼더라고요. 하지만 올해는 노트북을 안 들고 다닐 줄 알게 됐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우리 고모가 하신 말이 있어요. "50대가 돼도 잘 모른다!" 50대가 되어도 친구랑 싸우고, 여전히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고, 평생 그렇게 모를 수도 있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좀 편해지더라고요. 두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Q. 반가운 변화네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수아 님 계획과 목표를 들려주세요. 

지금 제가 레스토랑을 기획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건 모든 게 본질에 대한 싸움이라는 거예요.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의 인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게 바로 브랜드인 것 같아요.

저희 레스토랑 이름이 ‘본연’인데, 본연의 맛, 본질적인 가치를 살리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코스 이름인 '루츠(roots)'도 뿌리라는 뜻과 동시에 ‘본연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그만큼 본질에 초점을 두고자 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트렌드의 흐름을 잘 타야 하는 직업이라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게 숙제에요.

지난해 키워드는 "Deep Dive"로 정했어요. 그 전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본연도 만들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2024년에는 좀 더 나에게 집중하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면서 차곡차곡 무언가를 쌓는 시간들을 더 많이 가지려 했죠. 잠깐 숨고르며 땅 다지기를 하는 시기도 있어야 한다고 정의해봤습니다. 

앞으론 업무적으로나 사업적으로 레스토랑 비즈니스가 통하는 탄탄한 숫자를 만들고,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아직 인생 목표까지는 결정하지 못했는데요. 요즘엔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유연하고 아름다움에 계속 감탄할 수 있는 사람, 꾸준하게 다정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덕업일치 : 사랑과 나 자신을 모두 잃지 않으며 살려면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재승 뇌과학자에 따르면 우리가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사람이 ‘나 자신’을 인지하는 뇌의 영역에 가깝게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결국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와 동일시하고, 나와 한 몸처럼 생각하면서 내 맘대로 되지 않으면 자꾸만 화가 난다는 설명입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 생각대로 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죠. 

 

 

놀랍게도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 정확히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나 자신에게도 해당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일과 내가 분리되지 않고 뒤섞이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내가 쓴 기획안, 내가 적은 글에 대한 타인의 평가가 지나치게 크게 와닿는 게 그 예시죠. 사실 피드백은 건조하게 새겨들을 법도 한데 울컥 화가 나기도 해요. 내가 사랑해서 나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나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면 우리는 쪼개기의 달인이 돼야 합니다. 일과 나를 구분짓고, 내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서 생산적인 피드백을 발라낼 줄 알아야 해요. 때로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결코 나와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고요.

엄마를 아무리 사랑해도 엄마와 나는 남인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나 자신은 때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한 개인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러한 구조화에 관해 재밌는 비유를 발견했어요. 배우 문상훈 씨가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태교하듯이 살면서 나 자신을 북돋아주는 것.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삶의 유일한 동반자로서 나 자신을 육아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내 의지대로 끌어가기도 하지만, 때로 귀한 손님을 대하듯 조심스레 보듬기도 해야죠. 그래야 덕업일치도 지속할 수 있습니다. ‘태교하듯 산다’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입니다. 나는 나와 한 몸이면서 타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남’으로서 나를 존대할 때 비로소 사랑은 지속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아 님은 쪼개고 쪼개서 자신의 무엇을 사랑하는지 선명하게 정의했습니다. 음식과 공간과 경험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때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게 됐죠. 사랑하기 때문에 내 일을 더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은 아마도 수아 님이 직접 레스토랑을 창업하고 새로운 도전에 기꺼이 뛰어드는 원천이 돼 줄 겁니다. 그냥 덕업일치가 아니라 활활 타오르는, 기꺼이 나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의 발견입니다. 

하지만 그 봉화를 꺼트리지 않고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도 요즘 수아 님은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사랑을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나를 지탱해주는 안전망을 최대한 촘촘하게 예비해 두고, 내가 지칠 때쯤 나 자신을 환기하는 숨구멍을 마련해두고, 근본적으로 아쉬움과 불확실성까지도 사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 합니다. 나를 불태우는 사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사랑을 진지하게 보듬는 변화의 불씨를 지피고 있습니다

 

출처 : 임수아
출처 : 임수아

 

일에 진심인 수아 님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한편으로 부러움을, 그리고 애틋함을 느꼈습니다. 사랑 고백은 늘 취약함을 동반하는 행위니까요. 약점이 확 드러나니까 기우뚱하는 나 자신이 더 잘 느껴지는 것이겠죠. 그럼에도 사랑하는 일에서 도망가지 않으려는 수아 님의 용기가 저에게 뭉클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참 연약하고 대단한 듯합니다.)

이번 레터를 읽은 여러분에게도 수아 님의 선택과 관점이 큰 영감과, 용기를 주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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