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저장

유예된 기쁨에 대하여

소비의 늪에 빠지다

2026.04.16 |

유예된 기쁨에 대하여

월초, 공모전 당선되고 기념으로 뭘 살까하다가 아마존에서 세일중인 파일로팩스 다이어리를 발견했다—무려 13000엔이었다. 사실 공모전 원고를 마감하고 보상으로 아이리스색 다이어리를 샀었는데, 원래 사려고 했던 라벤더 색상과는 완전히 다른 청보라색이라 마음 한 켠엔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다시 라벤더색 다이어리를 살 아주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것이다.

고민은 하루로 충분했다. 공모전 당선 하루 뒤, 나는 해외 직구로 파일로팩스 몰든 라벤더 색상을 지르고 말았다.

매번 해외직구를 할 때마다 갖는 불만이 있다. 바로 소비의 기쁨을 유예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오는 다이어리를 기다리느라 소비할 때의 설렘은 유효기간이 모두 끝나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공모전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구매한 것이 정확히 12일만에 내 손에 떨어졌다. 12일이면 근 2주다. 그동안 마음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유예된 기쁨 때문만은 아니다. 유예된 목적 때문이기도 하다. 과소비를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로 부여한 ‘목적과 용도’는 어쩜 그리도 모양과 길이가 다양한지 아주 엿장수 맘대로 끊어낸 엿가락들같다.

이번에 산 다이어리의 용도는 6개월 안에 소설을 마감하기 위함으로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달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2주나 출근을 미룬 탓에 나는 그 시간을 방학 삼아 푹 쉬고 말았다. 그사이 원래 운영중이었던 ‘월간 몽상 단편소설집’도 덩달아 휴업이었다. 2주면 단편을 구상하고 집필에 들어갔어야 할 시간으로는 차고 넘치는데, 소비와 목적을 억지로 한데 묶으면서 모든 ‘할일’이 그만큼 유예되고 만 것이다.

 

나는 그저 쉴 구실이 필요했던 걸까?

어떻게 매번 겪으면서도 고쳐지질 않나.

첨부 이미지

있는 것이나 잘 쓰자는 다짐은 새로운 것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에 또 무너지고, 나는 스스로 기쁨을 유예시키는 일을 또다시 반복한다. 유예되는 것은 소비의 기쁨 이외에도 실행, 용도, 가능성 따위다. 그런데 이제 지연되고 변경되고 무산되는 변주를 곁들인.

오지 않는 물건을 기다리면서 괴괴히 흐르던 마음 속 강물이 요동을 친다. 그런 물살에 예전에 꾸었던 꿈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르고,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저 멀리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현재와 과거 사이에 시간의 왜곡이 생기고, 지금으로썬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운 용도로 이름 붙여져 우리 집이 낯설어 삐죽거리는 다이어리에 뻔뻔히 안착할 때도 있다. 미리 정하는 용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새로운 소비가 이끌어 내는 것은 새로운 할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소비가 현실을 타파하는 돌파구임과 동시에 낭비—더이상 꾸며 낼 말도 없이 정확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미 방안은 사치재로 넘쳐나면서 또 다른 유행을 쫓는 것은 반토막난 쾌락과 온전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는 양가감정을 초래한다. 말하자면 사치는 돈주고 사는 번뇌인 것이다.

이런 것을 과연 수련이라 부를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나를 시험하는 물질의 유혹에 오늘도 실오라기 같은 이성을 붙잡고 버텨보려 하지만, 여전히 내 손은 다른 것을 검색하고 있다. 이제는 물건을 사고 싶어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는 것인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려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조건부 인간

나는 조건부 삶에 익숙하다.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공모전에 당선만 되면, 출간만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드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반대로 어떠한 보상이 내걸려 있어야 실행을 할까 말까하는 약아빠진 인간인 것이다. 물론 그런 조건부 삶은 나에게 스트레이트 졸업과, 조기 취업, 그리고 공모전 당선, 또 소설 출간이라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지만, 나는 생각한다. 과연 아무런 조건 없이 이 모든 고행을 감당할 수 있었을지를 말이다.

그래서 ‘월간 몽상’도 시작했던 것인데—공모전이나 투고를 조건으로 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었던 소설을 다달이 펴내려는 목적으로—알량한 소설에 그보다 더 알량한 값을 매김으로써 나는 또다시 조건부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알량한 소설을 주말 내 쓸 수 있도록 또 다른 보상을 찾아 고민을 하고 있으니.

내 소비엔 끝이 없고, 끝없는 소비를 정당화할 구실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난다. 그러나 그 덕에(?) 이것저것 뭐라도 하면서 살아왔으므로 지금의 내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는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사치스러운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할 방도가 없다. 꼭 무엇을 사야만 보상이 되고 기념이 되는 것일까? 온전히 내 마음으로 현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을 알았다면 이미 벗어났겠지. 인간이니 번뇌하고, 번뇌하니 인간 아닐까? 물건 하나 더 사보겠다고 내 마음 속은 매번 이 난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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