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저장

나는 겨울에 씨앗을 뿌렸다

불모지 개척기

2026.04.10 |

 

나는 겨울에도 씨앗을 뿌린다

사실 계절을 모르고 항상 밭을 일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씨앗이란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수필로 자랄지, 소설로 자랄지는 몰라도 일단은 글의 씨를 뿌리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실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아주 빈약한 주기로 나를 찾아왔다 떠났을 뿐이다.

빈번히 혹독한 바람을 원망하고, 가끔은 더디 오는 봄을 탓하면서 ‘무엇을 위해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나?’하고 생각한다.

사실 계절감을 모르는 나 자신이 가장 큰 문제고, 가능성이나 희망같이 나 좋을 대로 갖다 붙인 말들을 끌어안고 불모지에 씨앗을 심는 미련함도 그 못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글을 짓는 것 자체가 좋아서 포기 못한다.

결실은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한 일종의 자격으로 작용한다. 농사가 잘되고 있고, 계속 해도 좋다는 허가이기도 하다. 결실 없는 파종은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좋아서 한다기엔 품이 너무 많이 든다. 소설 한 편을 쓰려면 한철로는 턱도 없다.

나는 취미로 농사를 짓거나 소설을 쓸 생각이 없다. 그러려면 수상을 하거나 출간을 해야 한다. 자비 출판은 하고 싶지 않다. 자격을 돈으로 사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또 어떻게? 이런 의문은 항상 ‘왜’냐는 물음으로 종결된다.

이런 비생산적인 일을 나는 왜 하고 있으며, 언제까지 해야하는 걸까.

 

불모지에도 싹이 난다

기나긴 구상이 끝나고 집필 과정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투가 펼쳐진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써야할 진도를 확인하고 목표치까지 글자들을 생성한다. 그렇게 끝이 난다면 좋으련만, 혹독한 퇴고의 과정이 남았다. 예전에는 한 챕터를 쓰고 몰아서 퇴고를 하곤 했는데, 요즘은 하루 써서 하루 퇴고한다.

퇴고는 어떻게 하는가? 하나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작가의 수만큼 퇴고 방식도 다양하리라 본다. 나의 경우는 소리 내어 읽기다. 한 줄 한 줄 소리 내어 읽다보면 오탈자는 물론 어색한 문체도 금방 걸러낼 수 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게 22년도이니, 햇수로 5년을 부르짖는 통에 나는 글을 쓰면서 목이 쉬는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린다.

이런 기현상은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그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불모지와 마주쳐 희한한 박수소리를 낸다. 나는 그 박수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이 청춘을 통으로 가져다 바치는 미련퉁이를 향한 조롱일까, 하여.

그러나 이번엔 아니었다. 그 박수소리는 드디어 불모지에 싹이 텄다고 알리는 격려의 박수소리였다.

작년 12월부터 3개월을 매달렸던 글이 하나 있다. 그 글이 한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에 당선됐다. 내가 아니라 글이 당선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꿈을 쫓는 몽상가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주어지는 특전이 있다. 출간계약이다. 그러나 나에겐 상금이 부상이고, 처음부터 출간을 목표로 공모전에 도전했다.

당선 소식을 들은지 꼬박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가슴이 뛴다. 소설가의 꿈을 품고 잠 못 이룬 밤이 몇 날이고, 좌절했던 날이 며칠이었나. 그래도 그런 노력들이 영 쓸모없지는 않았다. 미련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메마른 땅의 지질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들

이제 들뜬 마음을 다스리고 또다시 써야할 때다. 남몰래 일구어 온 밭이 이제야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일단 원고를 마무리 지어야 하고—결말부 구상을 마치려면 스토리를 적어도 네 번은 다시 써보아야 할 것이다—출간까지 이끌어가야 한다. 차기작도 틈틈이 구상하고 있다. 또 얼마나 많은 계절이 나를 지나쳐 갈지는 미지수.

그래도 이제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소설가가 되리라는 믿음이 한낱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으니까. 얼마든지 수확의 계절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수요산문집

소설을 쓰면서, 산문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수요산문집에는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록한다. 책, 영화, 일상, 그리고 그 외의 취향들을 천천히 수집해 보려고 한다. 목표는 주에 한 번, 자리잡기 전까지는 시시때때로.

이 공간이 내 소설과 내가 사랑하는 소설, 그리고 예술혼이 깃든 영화들에 대해 원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사로운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것을 좋아해 주는 독자분들이 사랑방처럼 편히 찾는 곳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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