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하의 현인으로 유명한 주식 투자 구루 워런 버핏은 자신의 5세 생일상으로 먹었던 음식을 여전히 매일 즐긴다고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맥도날드 햄에그 머핀과 콜라를 픽업해서 사무실에서 먹는다. 주식투자로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입맛과 한결같은 라이프스타일로 더욱 유명해졌다. 나는 워런 버핏이 자신에게 뭐가 맞고 좋은지 스스로 판단하여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점이 대단했고, 두번째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입맛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내 입맛은 항상 변하는 것 같거든.
어릴 때 가졌던 미각 취향이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건 아마 미각 세포도 나이가 들었거나, 다른 식재료의 식감과 맛을 배우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주변을 보면 어릴 때는 먹었는데 지금은 못 먹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난 13살때까지 햄버거와 피자를 먹지 못했다. 친구들이 워낙 좋아하고 맛있게 먹어서 나도 따라 한입 베어물면 다 토해버렸다. 느끼한 치즈향과 마요네즈 맛은 적응하는데 오래걸렸다. 급식이나 친구 생일상으로 피자나 햄버거가 나오면 다른 친구에게 양보했다. 친구들은 맛있게 베어물며 ‘없어서 못 먹는 이걸 왜 안 먹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물론 지금은 햄버거와 피자 모두 잘 먹는다)
어릴 때 정말 전투적으로 먹었는데 지금은 굳이 찾지 않는 식재료는 바로 ‘햄’이다. 나에게는 네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는데, 어머니가 김치찌개에 햄을 넣어 끓여주던 날에는 식탁에서는 핵전쟁이 아닌 햄전쟁이 일어났다. 누가 햄을 더 많이 먹었는지 매번 다퉈서 난리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해결책으로 햄을 듬뿍 넣어주기도 했는데 이게 햄 김치찌개인지 김치 햄찌개인지 모를 정도였다. 어린 형제에게 햄의 절대적인 양보다는 상대에게 지지 않겠다는 상대적인 양이 중요했다. 결국 젓가락질 한번에 한개씩만 먹기 규칙이라던가, 젓가락을 찌개에 넣어 집었으면 그게 햄이든 오뎅이든 김치든 감내하고 무조건 먹기 등 엄격한 규칙을 둘이서 세우기도 했다.(사실 형인 나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지금은 그 햄을 뭐가 좋다고 먹었는지 모르겠다. 가공육이 가진 특유의 가공육 냄새, 비릿한 맛 때문에 많이 먹질 못하겠다. 아주 가끔 햄을 하나 집어 씹어먹을 때면 내가 그때 참 이걸 왜 좋아했을까 싶다.
햄과 아주 반대 위치에서 빛나고 있는 음식은 ‘가지'다. 어릴 때는 물렁한 식감과 보라색 색깔이 싫어서 엄마가 몸에 줬다고 아무리 권해도 입을 꾹 다물고 안 먹던 야채인데, 지금은 누가 먹으라고 하지 않아도 찾아먹는다. 반찬으로 나오는 가지 조림뿐만 아니라, 가지 덮밥, 가지 튀김 등 다양하게 찾아먹고 없어서 못 먹는다. 어릴 때는 어머니가 몸에 좋다고 밥 숟가락 위에 올려줘야 꾸역 먹던 그런 식재료였지만 지금은 최애 중 하나로 등극되었다.
변해버린 입맛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건 비단 입맛뿐 아니다. 인생사 모두 입맛과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너 원래는 이랬는데 요즘 좀 변했다?’고 들을 때면 왠지 '난 늘 이랬는데'라는 마음이 들면서 서운하기도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 입맛을 생각하며 주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래, 내 입맛도 바뀌었는데 그건 안 바뀌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덜 억울하다. 내 몸의 세포는 매순간 죽고 새로 생성되고, 내 머릿속 생각도 매번 바뀌는데 영원한게 어디 있겠는가.
가지 안 먹는다고 떼쓰던 아이가 가지 덮밥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고, 햄으로 다투던 형제가 서로 햄을 양보하는 사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강경하게 고집하거나, 어느 하나를 맹신하거나, 누군가를 맹렬히 지지하는 태도는 살짝 접어두자. 변하지 않길 바라는 우리 믿음이 헛되다. 변한 입맛은 죄가 없다.
[추신] 전 피자가 당길 때면 늘 미국식 피자와 이태리식 피자 중 뭘 먹을지 고민한답니다. 신선한 치즈와 감칠맛나는 토마토 소스 덕분에 한판 다 먹게 되는 마르게리따와 묘하게 중독적인 짠맛의 페퍼로니와 바삭한 도우를 자랑하는 페퍼로니 피자 중 뭘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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