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월요일#3] 식은땀 흐르는 7일간의 운전

이탈리아에서 소형 수동차를 운전하던 하루키를 꿈꾸다

2026.05.04 | 조회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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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하릴없는 주말 낮에 침대에 누워 그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야말로 나만의 소확행이다. 한 에피소드를 여러 번 읽은 적도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동안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하루키는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을 집필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세이 에피소드 중 하나도 하루키의 로마 생활과 그의 첫 운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30살이 넘어서도 운전을 할 줄 몰랐다고 했다. 로마에서 처음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그뒤 자동차와 운전에 재미와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거칠고 성질 급한 로마 시내 운전자들 속에서 작은 차의 기어를 슝슝 바꿔가며 운전하는 하루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2022년 9월에 이 상상을 내 현실로 만들어낼 기회를 잡았다. 아내와 함께 웨딩 스냅 사진을 찍을 겸 2주간 이탈리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일정 중 7일간 차를 빌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와 북부 돌로미티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우린 가장 저렴했던 수동기어의 소형차를 빌렸다. 물론 소형 수동차가 압도적으로 저렴했기에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마음 속 깊이 나도 하루키 선생님처럼 조그마한 차의 기어를 기민하게 움직이며 이탈리아 도로를 달려보고 싶은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아내는 우리가 수동 운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오토 자동차를 빌리기를 원했으나 나는 여행 경비를 크게 아낄 수 있다며 소형 수동기어 자동차를 고집했다. 비록 나도 운전면허증 취득할 때 말고는 수동 운전을 해본 적 없었지만 아내에게 “진정한 남자라면 당연히 수동운전할 수 있지!”라고 우겼다.

온라인에서 렌트 계약을 미리할 때 제안받은 자동차는 피아트의 ‘판다’였으나, 실제로 제공받은 차는 한국의 경차 격인 란치아의 ‘입실론’이었다. 같은 체급이라 계약상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유튜브로 피아트 판다 수동 운전 영상을 미리 시청하면서 판다를 운전한다는 상상하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나는 출제범위가 아닌 시험문제를 만난 학생처럼 바짝 긴장한 채로, 식은땀으로 젖은 손바닥으로 자동차 키를 감싸쥐고, 귀여운 란치아 소형차에 큰 덩치를 우겨넣었다.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자 작은 차의 연약한 엔진이 고양이가 울듯이 ‘갸르릉’거리며 귀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난 숨을 한번 들이쉬고 출발을 위해 왼발로 눌렀던 클러치를 가볍게 뗐다. 1단 기어를 밀어 넣자마자 시동이 푸르르하며 꺼져버렸다. 아내는 파랗게 사색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난 애써 괜찮은 척 ‘오랜만에 수동차에 시동을 걸어보니까 기분이 묘하네. 곧 적응하니까…’라고 말하며(걱정하지말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시동을 걸고 다시 클러치에서 조심히 왼발을 떼며 기어를 1단으로 올렸다. 이번에는 시동이 꺼지지 않았다. 1종보통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 연습했던 트럭보다 소형차의 엔진은 훨씬 예민했다. 시동이 다시 꺼질까봐 어쩌지도 못하고 1단으로 올려둔 채 뒤뚱뒤뚱 기어가면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주차장에서 나오자마자 피렌체 시내의 교통지옥이 펼쳐졌고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익숙하지 않은 교통 시스템 아래 성질 급한 이탈리아인 운전자들과 함께 좁고 복잡한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애썼다. 뒤차의 경적 소리가 등 뒤를 찌르고, 클러치를 밟은 왼발은 덜덜 떨리며 쥐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난 내비게이션을 보고, 전방을 주시하고, 동시에 클러치를 밟고 기어봉을 조작하면서 아내에게 소리를 빽빽 지르며 예민하게 굴었고, 아내는 아내대로 긴장을 해서 같이 소리를 지르며 조수석에서 운전 지시를 했다.

지금까지도 우리가 어떻게 피렌체 도심 밖으로 빠져나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란치아 소형차 안 운전자와 조수는 조용해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핸들을 세게 잡고 있던 내 손의 힘도 조금 풀어졌다. 손바닥과 신발 속 발바닥은 땀으로 축축했다. 이후 7일내내 난 운전 지옥에 빠져 살았다. 7일 내내 식은땀을 흘렸다. 밤에는 피로에 절여진 피클처럼 축 늘어져 침대에 바로 직행했다. ‘아, 내일도 운전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곯아떨어졌고, 다음날 아침에는 ‘차에 시동이 안 걸리면 어떡하지’, ‘오늘은 도시에 들어가는 날인데 제발 언덕길이 없어라’라며 하루하루 절망 속에서 모닝빵을 씹어삼켰다. 운전할 때도 늘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탈리아어도 못 하는데 여기서 타이어에 펑크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면서 끙끙거리며 조그마한 차를 끌고 다녔다. 아내는 첫날에 긴장했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면서 내 수동기어 운전이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자연스러워지자 주변 풍경을 바라볼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가 조금 둔한 편이기도 하다) 조수석에서 아내는 사진과 영상을 찍고, 이탈리아 풍경을 눈에 담으며 신나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정말 다행히 사고 한번 나지 않았으며, 위험한 적도 없었다. 시동을 자주 꺼트린 것 말고는. 자동차가 없었으면 가지 못했을 명소와 보지 못했을 풍경들을 실컷 즐겼다. 이따끔 이때 이탈리아 여행 사진을 다시 찾아보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어쩌면 이게 한 가정의 가장인가 싶기도 했다. (자기가 스스로 자초해놓고는 이게 가장이라는 생각을 한다니 우습기도 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또 한번 그 수동 운전의 맛이 그리워진다. 저출력의 엔진에 동력을 살살 불어넣으면서 클러치를 밟고, 요리조리 기어를 바꿔가며 이탈리아 구석을 누비는 재미가 확실히 있었다. 클러치를 밟는 동시에 기어를 움직일 때 느껴지는 손맛과 발맛은 중독적이다. 자동차의 척추를 직접 어루만지며 네 다리를 조종하는 느낌이랄까. 네 다리가 움직이는 느낌을 손 끝과 발 끝으로 느끼면서 자동차와 일체화되는 기분이다. 다음번에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면 또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7일간 고생을 해놓고는 또 수동차 운전을 할 생각을 하다니. 아직 고생을 덜 했던 것일까. 사랑하는 내 아내야, 다음에는 수동차 운전 더 잘할 자신이 있다고!


추신) 역시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나 란치아, 알파로메오 같은 자국 브랜드의 자동차가 이탈리아 도로와 마을 풍경에 잘 어울리더군요. 한국 도로와 도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동차는 뭘까 고민해보니, 역시 현대의 그랜저나 기아의 소렌토 같은 자동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 올림픽 대로에서 피아트 500 자동차를 보면 약간의 이질감이 드는 건 저만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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