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아침부터 날씨가 참으로 맑고, 덥습니다. 마치 캘리포니아 날씨 같던 5월을 지나 6월에 들어서니 여름이 왔구나 느껴집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덥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아침부터 햇빛이 참 뜨겁네요.
저는 지난주에 아주대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듣고 왔어요. 김경일 교수님은 <어쩌다 어른>을 비롯해 다양한 방송에서 강연을 하시고, 출간된 책도 여러 권 있어서 아시는 분들이 꽤 많으실 것 같아요.
이번 강연 주제가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기>였는데, '중독'이라는 키워드를 넘어 '행복'과 '인생'에 대해 좀 더 깊이 되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강연 내용을 토대로 제 안에서 소화시킨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여 오늘 레터를 통해 구독자님과 나눠볼게요.
중독의 원인
'중독'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부정적인 기운이 뿜어 나온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단어 앞에 그 어떤 단어를 갖다 붙여도 부정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흔히 중독의 원인에 대해 생각할 때, 행위 자체로 쾌락을 느껴서 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경일 교수는 중독 그 자체로 뇌에 도파민을 전달하거나 쾌락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중독에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한 어떠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즉 현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도박, 쇼핑, 마약, 흡연과 같은 중독 행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현실에서 본인이 해야 할 본분 또는 의무를 잊고 행위 또는 약물에 중독되어 일상적인 삶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중독의 수렁으로 빠져 올바른 삶과 멀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초장수 사회, 대한민국
앞으로 한국 사회는 초장수 시대에 접어들어 엄청나게 오래 일해야 하는, 일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한다. 오래 살게 되면 은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일반적인 회사의 경우 정년은 만 60세로 정해져있지만 이마저도 명예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직장인들에게 정년이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60세까지 일하면 평생 할 일을 다 한 것이라 여기던 사회였는데, 어느새 우리는 80세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실제로도 65세 이상 취업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하기 그래프 참고)
강연에서 김경일 교수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해요.
누가 고통스럽게 오래 일하느냐? VS 누가 행복하게 오래 일하느냐?"
오래 일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오래 일하는 것은 디폴트 값 일 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럽게' 또는 '행복하게'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목적으로 여기고 산다. 행복을 목적으로 두고 현재의 힘든 현실을 버티면 '행복'을 마주할 거라고, 또는 어떠한 목적을 세워두고 그것을 이루기만 하면 '행복'한 꽃 길이 펼쳐질 거라 여긴다.
명성 있는 학교에 진학하면, 크고 탄탄한 기업에 취직하면, 승진해서 월급이 오르면,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재테크에 성공해서 부자가 되면, 행복할 거라고 여긴다.
그래서 행복의 문턱에 들어서기 위해 힘들고 괴로운 현실을 버텨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더욱 잘 살아내기 위한 수단 말이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쓴 책 <행복의 기원>에서는 행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동물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생존 확률을 최대화하도록 설계된 '생물학적 기계'이고 행복은 이 청사진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3.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4.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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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그저 우리가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100점 짜리 행복보단 10점 짜리 행복
100세까지 살아내려면, 고통스럽지 않게 80세까지 일하려면,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나쁜 중독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를 위해 김경일 교수는 '100점짜리 행복보단 10점짜리 행복'을 만끽할 것을 그 해답으로 제안한다.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100점짜리 행복보다는 10점짜리 행복을 자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오래오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큰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 년 내내 고생하던 직장인이 연말에 보름 이상의 연차를 내고 장기 휴가를 떠나는 것보다 일 년 중 틈틈이 하루 이틀 연차를 내고 여러 번 휴가를 가는 것이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일년 내내 일을 하다가 보름 이상의 휴가를 내고 크루즈 여행을 떠난 사람들 중 다수가 여행이 끝나기 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보름 이상의 장기 휴가가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만, 당사자는 여행이 끝날 즈음 복귀한 후 다시 일에 시달려야 하는 시간을 떠올리며 무거운 압박을 느껴 이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크고 위대한 행복을 좇지만 결국 우리의 길고 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행복인 것이다. 어디에선가 "마지막에 웃는 놈이 인생을 잘 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그냥 자주 웃는 놈이 잘 산 거였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 크고 위대한 성취와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더라도 자주, 많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아침에 마신 드립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소소한 행복이라 할 지라도, (feat. 난중일기)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중 이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약 3% 정도 된다고 한다. 사실 인생에서 몇 번 일어나지 않는 대단한 일들은 기록해두지 않아도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두고두고 떠올리지만, 작고 귀여운 소소한 행복들은 그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기 마련이다.
위에 내가 쓴 것처럼 오늘 아침에 마신 드립 커피가 맛있어서 행복했다는 것을 내년에도 기억할 수 있을까? 아마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확률이 높다. 이렇듯 소소한 행복은 잊어버리기 쉬운데, 이런 것을 기록해두는 일은 우리 삶에 엄청난 힘이 되어 준다고 한다.
가장 좋은 예시로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가 있다. 우리는 <난중일기>를 임진왜란 7년 동안 군중에서 쓰여진 이순신 장군의 비범하고 대단한 행적이 담긴 역사적 기록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적인 내용을 다룬 전투 기록뿐만 아니라, 백성들과 부하들의 떨어지는 사기에 대한 걱정, 원균을 향한 험담, 가족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하루하루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에 대한 일상적이고 소소한 내용이 많다.
예를 들어, 백성들과 부하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장군의 명령을 잘 따르지 않아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못 해먹겠다고 하다가도, 이내 돌문어와 갓김치로 저녁 밥상을 배부르게 먹고는 다음날 어김없이 출근했다고 쓰여져 있다고.
이순신 장군의 모습에서, 나와 당신의 모습을 본다. '진짜 못하겠다. 더 이상은 못 버텨!' 싶다가도 맛있는 밥 배부르게 먹고, 시원한 커피 한 잔 들이켜고 나면 이내 할 만해지고, 또 살아지는 것. 이렇게 별거 아닌 듯한 소소한 행복은 힘든 일을 버티게 하는, 우리네 인생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작은 행복이 촘촘히 쌓이면 우리는 큰 고난 앞에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된다. 큰 전쟁을 거듭 치른 이순신 장군에게 돌문어와 갓김치가 버틸 힘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다치면, 몸을 돌보듯
덧붙여 이 말도 꼭 전하고 싶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을 때 다친 몸을 돌보듯 세심하게 몸을 돌보아야 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심리적인 고통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인간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있는 사람들이 진통제를 먹을 경우 그 고통이 감소되며 마음을 짓누르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그래서 마음이 다쳤을 때 혹은 무언가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우리는 몸이 다친 것처럼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면서 몸을 돌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인간관계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듯 평소보다 더욱더 내 몸이 잘 자고, 잘 먹고, 잘 쉴 수 있도록 몸의 컨디션에 마음을 기울이셨으면 좋겠다. 하여 이내 건강한 마음과 몸을 되찾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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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마지막 주로 쉬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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