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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회고록] 올해의 키워드

2024, 당신의 #키워드 는 무엇인가요?

2024.12.23 | 조회 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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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2024년의 끝자락입니다. 연말에 바쁘신 분들도 계실 테고 조용히 올 한 해를 마무리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저는 몇 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며 유의미한 일을 기록해 보곤 했습니다. 각 월마다 중요했던 일을 짚어보며 기록해두니 한 해를 회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작년에는 연말보다 좀 더 앞서 10월에 상/하반기를 나누어 구독자분들과 나누었었는데요, 이 레터를 작성하기 전 훑어보니, 작년 한 해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는지 다시금 떠올려보고, 지금의 마음과 견주어 볼 수 있어서 기록해두길 잘했다 싶더군요.

혹시나 못 보셨을 구독자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겨두겠습니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마음으로 훑어보시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의 일기장, 훔쳐보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요? 요즘 저는 제 딸아이의 일기장을 맞춤법 검사한다는 명목하에 훔쳐보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 전해드린 레터🔼에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평안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 올해의 꿈이자 목표라고 적어두었는데요, 한 해를 돌아보니 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보낸 것 같아 뿌듯합니다.

물론, 제가 컨트롤하기 힘든 '불운'이 닥칠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 날아오는 태풍을 직격탄 맞기도 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말이죠. 흑흑. 그래서 다시금 회복 탄력성을 높여야겠다 마음먹기도 했어요. 

올 한 해를 회고해 보니 단기적으로 발생한 일들보다 장기적으로 진행된 일들이 더 많았기에 월 별 회고보다는 저만의 키워드로 올해를 톺아보려 합니다. 

 

#예술

A life of experiencing Art 


돈을 버는 것은 어려운데, 돈을 쓰는 것은 쉽다. 생각 없이 돈을 쓰게 되면, 열심히, 힘들게 번 돈이 언제 나에게 있었냐는 듯 금방 사라지고 없다.

맥시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때때로 소비 요정이 찾아올 때가 있기에 평소에 '소비 습관'을 잘 단속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옷이나 신발, 화장품 등 나를 치장하는데 들이는 비용을 대폭 줄였다. (물론, 복직을 앞두고 조금씩 옷을 사들이고 있다.)

올해는 물건을 소유하는 데 돈을 쓰기 보다 '경험'하는데 돈을 썼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영향이 미쳤다. 선물을 주고 받던 기념일에는 선물대신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보거나 대학로에서 연극을 봤다. 

가족과 함께 외출을 하는 날이면 자주 가던 백화점이나 쇼핑몰 대신 미술관을 가거나 박물관을 갔다. 여행을 떠났던 강릉과 도쿄에서도 각각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며 기술이 만들어내는 예술을 감탄하기 바빴다.

물론, 이러한 경험 소비는 옷과 신발, 화장품 등 다른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소비한 것과는 달리 내 눈앞에 당장 보이는 것도 내 손안에 쥐어지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후회가 없다. 방송인 솔비 님의 말마따나 타인이 절대로 훔쳐 갈 수 없는 것이 내 안에 남았기 때문 일테다. (🔼참조: 경험소비)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생애의 마지막 곡이었던 그의 교향곡을 2024년에 들으며 그가 느꼈을 비창(悲愴)이 내 마음을 관통했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대니구(Danny Koo)님을 보며 어쩌면 인간도 하나의 악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god콘서트에서는 수만 명이 하나가 되어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25년이 흘러 가수도 변하고 팬도 변하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노래는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다. 음악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나는 예술에 관해 문외한이다. 음악도 모르고, 미술도 모르고, 기술이 만들어낸 미디어 아트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럼에도 예술을 가까이 할 때면, 깊이 사유하게 된다.

나에게 예술의 효용은 그런 것이다. 단순히 예술이 창조해내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을 넘어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 그러다가 마음이 벅차오를 때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삶의 고귀함에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되는 그런 것이다. 

 

 

#시도 

Try something new


언제부턴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에 굉장히 주저하고 망설였다. 아마도 '실패'하는 것, '거절'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성을 다한다고 했는데, 쉽게 거절되거나 불합격 통지를 받거나 그래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시도하기 이전과 같은 상태인 나를 인정하기 싫어서 시도하는 것조차 망설이던 때가 있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데, 무는 커녕 무보다 훨씬 작은 당근도 썰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때가 분명 있었다. 

칼을 뽑았는데 무는 커녕 당근도 못 썰고 있는 내가 미치도록 밉고, 싫고, 그러다 세상까지 싫어질 지경이었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실패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솔직히 아직도 두렵고 싫다. 거절 받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실패와 거절에 무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고, 그래서 노력 중이다.

실패와 거절에 무뎌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도를 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 시도해서 한 번 또는 두 번 실패하는 것은 내 일상을 흔들 만큼 큰 일이다. 내 전부를 걸었는데 실패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열 번 넘게 시도한 사람이 대여섯 번 실패하는 일은 일상을 흔들 만큼 큰 사건이 아니다. '이번에 잘 안됐네?'하며 한 번 심호흡하고 '다음을 준비할까?'하는 자세가 생긴달까. 

이전에 나에게 SNS에서 모르는 사람이 DM을 보내왔던 적이 있다. 그 메시지의 요지는 '내가 너를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너는 느리지만 꾸준한 사람인 것 같다' 였다. 처음에는 비꼬는 말 같아서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꿰뚫어보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역량을 잘 안다. 뛰어난 재능도 내세울 만한 스펙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결핍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은 욕망이 늘 내 안에 있다. 그 욕망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어느새 작게 쪼그라들 때도 있고, 뜨겁게 타올랐다가 이내 미지근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차갑게 식어버리지는 않아 나 자신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나의 못난 결핍과 작지만 식지 않는 욕망 덕분에 나는 올 한 해도 내가 해보지 않은 것들에 기웃거리며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무언가를 손에 쥐기도 했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시에서 주최한 정책 제안 공모전에 ChatGPT를 활용하여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여 제출했고, 결과적으로 소정의 수상금을 받았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던 인터뷰를 실행에 옮겨 다섯 분의 삶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에게기적을X비케이레터' 후원 모금을 진행하여 후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맛보기도 했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멈추고 싶기도 했고, 괜히 시작했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시도하기로 마음먹기까지 꽤나 망설였고 주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칼을 뽑았는데 무는 커녕 당근도 못 썰지라도, 아예 칼을 뽑지 않는 것보다는 뽑는 것이 더 유익하다.

당근조차 제대로 못 썰지라도 당근을 썰고자 안간힘을 쓰며, 나는 당근과 칼을 잡는 법을, 칼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내 손에 맞게 칼 다루는 법을 터득하게 되면, 양파와 감자를 숭덩숭덩 썰게 되고 그러다 당근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무를 숭덩숭덩 써는 날이 온다. 작거나 소소할지라도, 작은 시도가 나를 만들어간다고 믿는다.

 

 

#투자 

Invest for the future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올 한 해 나의 꿈과 목표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평안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었다. 연초에 목과 허리 디스크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있던 나는 한낮의 햇살이 뜨거워지는 늦 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이전에는 운동의 목표가 다이어트 혹은 몸매 관리였다면, 올해 운동의 목적은 순전히 '건강' 때문이었다. 간간이 요가와 필라테스를 했었지만, 제대로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전 쳐다보지도, 해보지도 않은 웨이트 기구들이 가득한 헬스장을 내 발로 직접 걸어들어가 PT선생님께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다들 서른 중반을 기점으로 피부도 몸도 확 늙는다고 하던데, 나 역시도 그 진리를 비껴가지 못한 탓인지, 작년에 유독 많이 아팠다. 열이 40도에 육박하는 때도 여럿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도, 걷는 것도,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숨 쉬는 것까지도 버거워죽겠는데,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살림과 육아를 해야 했다. 

병원에 찾아가 일과 살림을 해야 하니 무조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각종 약과 주사는 모두 처방해달라고 하고 빈속에 약을 때려 부었다. 결국, 더 탈이 나서 위장 장애까지 겹쳤다. 작년 한 해 동안 링거를 너무 많이 맞았던 탓인지 실비 보험료가 약 50%정도 인상될 정도였다. 

나는 여러 소비에서 가성비를 따져대는 대한민국 아줌마지만, 이번만큼은 큰 맘먹고 PT 수업료를 결제했다. 아픈 게 너무 싫었다. 살아야 했다. 아프면서 골골대지 않고, 건강하게 씩씩하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기준, 거금의 수업료를 투자해서 PT 수업을 들었고, 결과적으로 올 한 해 크게 아프지 않고 환절기를 보냈다. 돈을 내고 벌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꽤 있었지만, 그 덕분에 근육이 늘었고, 힘들게 얻은 근육은 든든한 체력이 되어 주었다. 

또한,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분야의 공부도 시작했고, 영어 회화 수업도 듣고, 나를 위한 책상도 샀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자녀에게 쓰는 돈은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데 반해 나에게 쓰는 돈은 여러 번 고민하고 쓴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그렇게 키우셔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올해는 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돈을 썼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될진 모르겠지만) 그럴 생각이다. 

아이에게 모든 투자와 기대를 걸고 싶지 않다. 물론, 아이가 원하는 것은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모가 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의 모든 투자와 기대가 아이 한 명에게 향할 때, 그에 따른 부담과 책임도 아이에게 가해진다. 나는 그보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전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아이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엄마, 멋지다! 파이팅!" 

 

 

#우상향

making upward progress


우상향 그래프를 좋아한다. 가파른 직선으로 빠르게 직진하는 듯한 우상향은 마치 강남 한복판에 있는 마천루처럼 멋지고 대단해 보이지만 어쩐지 애정이 가지는 않는다. 물론, 내가 보유한 주식의 그래프가 가파른 우상향 직선을 그린다면, 두 말할 것 없이 대환영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딜지라도 완만하게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그래프가 마음에 든다. 느릴지라도 꾸준하게, 중간에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전의 자신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점을 찍으며 나아가는 우상향 그래프에 남몰래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작년 1월부터 뉴스레터를 시작하여 이제 곧 만 2년을 꽉 채우고, 곧 3년 차가 된다. (마지막 주는 쉬어갔지만) 매주 레터를 발행하며 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매번 구독자들에게 어떤 글을 전해야 하나 고민했고, 모니터 앞에서 눈만 끔뻑끔뻑 거릴때도 많았다.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쓰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세상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스스로 나서서 고생을 하나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대놓고 "그런거 뭐하러 하냐"고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쓰고, 다듬고, 발행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내게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비케이레터 구독자 수 추이
비케이레터 구독자 수 추이

2년 동안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현재 시점(12/21)의 구독자 수는 223명이다. 이제껏 총 74개의 레터를 발행했으니 한 개의 뉴스레터를 발행했을 때마다 새로운 구독자가 3명씩 늘어난 셈이다.

누군가는 2년 동안 그 정도의 구독자밖에 모으지 못했으면 그만두라고 할 수도 있다. 나도 SNS나 뉴스레터로 단 며칠 만에, 몇 달 만에, 몇 만 명의 구독자와 팔로워 수를 보유한 능력자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에 비하면 나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느리지만, 꾸준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만하기 그지없는 나의 우상향 그래프가 꽤나 애틋하고 소중하다. 너무도 완만해서 가까이서 확대해 보면 무의미하게 같은 선상에 점을 찍고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완만할지라도, 분명 나는 우상향 하고 있는 중이다. 

뉴스레터를 운영하는 일도, 영어 공부를 하는 일도,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일도, 얇은 통장을 조금씩 부풀리는 일도, 내게는 모두 지난한 과정이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것 같고, 변하는 게 없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바라보면 나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느리고, 더디고, 완만할지라도 말이다. 

 

 

#빚진마음 

Owe somebody a favor 


올해의 첫 눈이 온 날
올해의 첫 눈이 온 날

올해의 첫눈은 이전에 내렸던 첫눈과는 달랐다. 그동안 내렸던 첫눈은 '맛보기'용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반면, 올해의 첫눈은 작정이라도 한 듯 멈출 줄 모르고 내렸다. 겨울이 왔는지 헷갈릴 만큼 여전히 따뜻했던 11월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내린 첫눈은 많은 사람을 당황케 했다. 

많은 눈이 내리고, 쌓여 세상이 온통 하얗게 뒤덮였다. 보기에는 예뻤지만,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직장에 가야 했고, 약속을 지켜야 했고, 학교에 출석해야 했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날 나도 외출 일정이 있었는데, 오전에 집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도저히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 창문 밖으로 제설 작업이 되어 도로에 차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고, 결국 외출하여 해야 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제설된 도로를 보며 생각했다.

'누군가 열심히 제설 작업을 하셨구나. 누군가 열심히 출퇴근을 위해 이 도로를 달렸겠구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책임의식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길은 닦이지 않았을 거고, 도로는 엉망진창 상태가 되었을 거다. 그 생각을 하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빚진 마음이 들었다. 높이 쌓인 눈을 쓰는 일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애씀과 정성으로 만들어진다.

올해 교회에서 북카페 봉사를 했는데, 봉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북카페가 그렇게 어질러져 있는지 몰랐다. 책을 읽으러 들를 때면, 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때는 당연시 생각했지만, 내가 직접 봉사해 보니 당연하지 않았다.

교회 북카페 봉사
교회 북카페 봉사

흐트러진 자리를 다시 바로잡아야 했고, 바닥에 흩뿌려진 먼지와 쓰레기를 버리고, 쓸고, 닦아 깨끗하게 정돈해야 했다.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가 직접 하기 전까지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우리가 무언가를 누리고 있다면, 누군가의 정성과 애씀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연말에도 그랬다. 경제가 어렵다, 나라가 어렵다,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소식에도 이 땅의 평화만큼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경찰과 군인들이 국회를 가로막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을 온 국민이 잠도 못자고 지켜보게 됐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 거리로 나왔다. 날씨는 추웠지만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열망은 뜨거웠고, 결국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끝까지 지켜볼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가 목도했다. 

수백 년 전, 목숨 바쳐 우리나라를 지켜낸 독립군들, 수십 년 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과 젊음을 바친 시민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나의 이웃들, 이 모두에게 빚을 졌다. 

내가 지금 평화롭게, 안전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노력과 애씀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빚진 마음을 잊지 않고자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기도 했고, 자발적으로 기부처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씩씩하게 눈을 쓸어 길을 만드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쁨으로 기꺼이 내 것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덧, 함께 사랑의 열매를 맺어주신 모든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비케이레터 기부증서
비케이레터 기부증서

 

 


✍🏻이번 주 문장들

 

지루한 일상의 반복을 견디게 만드는 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것들 안에 있어요.

<인생의 해상도>

 

매일은 아닐지라도, 자주는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도 지금의 내 삶이 ‘그것으로 됐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초조함과 조급함이 사라진 그 순간에 그간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온 내가 그저 대견하고 실은 꽤 마음에 든다.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올 한 해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시기 바라며, 2025년에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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