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홀로세(Holocene)와 인류세(Anthropocene)를 구분해야한다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전쟁은 여전히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팬데믹까지 선언해야 했습니다. 동시에 탄소중립, 4차산업 전환, 인간과 기계의 공진화라는 논의가 이는 가운데, 디지털 플랫폼이 다시 거대해졌고, AI의 급속한 발전도 이루어졌습니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나온 것에서 보듯, 인류(anthropo)가 지구의 지질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이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막대하다는 과학적 증거들과 징후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구 시스템, 즉 생태 환경 시스템 자체에 끼친 거대한 영향은 주로 산업화, 생물 자원의 남획, 물질 자원의 채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류세 선언이 이뤄지게 되면, 이러한 활동이 인류를 포함한 지구 전체의 존속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 공식적으로 인정된다는 의미입니다. 팬데믹 선언을 기억하시겠지만, 그렇게 되면 몇몇 국가나 정부 차원의 대응이 아닌, 인류 전체가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만약 지금 인류세 선언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어쩌면 종말을 인정하거나, 종말을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저희 사무국은 종말을 대비하는 인류세가 아닌, 공존과 공생을 모색하는 인류세를 상상하며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따라서 포항 프로젝트는 지구온난화 가속, 여러 생물종의 멸종 위기, 천연자원 고갈 등 인류세의 맥락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돌봄’의 관점에서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류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한 이 시대, 2024년 10월 지금의 대한민국 포항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요?
과거 포항은 정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비닐이 길을 덮을 만큼 많이 쌓여 있었다고 전해질 만큼, 정어리 어업과 가공업으로 유명한 바다의 도시였습니다. 산업화 시기에 포항시 북구와 남구 해안을 아우르는 ‘동빈내항’은 동해안 수산업의 대표적인 전진기지로 활용되었습니다. 또한, 일제가 전쟁을 준비하던 1930년대 후반부터 동해안에서 청어와 정어리가 많이 잡히면서, 송도 다리 동쪽 길 양편에는 청어 가공 공장과 정어리 유지 공장이 세워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물론 생태계는 본질적으로 먹이사슬에 기반하고 있지만, 풍요와 남획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남획이라는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도대체 어떤 시스템이 이를 촉발했을까요?
포항은 1968년부터 대한민국 철강 산업을 이끄는 포스코 본사가 자리 잡으며, 2024년 현재까지 56년 동안 '철의 도시'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포스코와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와의 긴밀한 산학협력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며, 세계적인 기술적·과학적 성취를 이룩해왔습니다. 포항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철강 산업과 과학 기술이 연상될 정도죠.
이 과정은 또 다른 전지구화의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지나,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이 일상 삶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대지, 바다, 기후 활동, 즉 모든 물질의 차원을 경제적 관점에서 재편성하게 된 시기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포항만 하더라도, 바다에 의지해 살아오던 삶은 근대 산업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느라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풍부한 해양 자원 덕에 어업 기반 산업이 성장했고, 바다와 인접해 수출이 용이한 특성 덕분에 항구 도시로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산업'이라는 형태와 그 시스템이 도시라는 구조를 탄생시켰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철강 산업이 남한이라는 국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포항은 또 다른 의미에서 보국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포항의 애국의 역사는 식민지 시대를 거쳐 철강업 중심의 보국 시대로 이어졌으며, 현재는 탄소중립의 시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제 포항은 땅과 바다, 기술, 그리고 '산소'를 지키고자 하는 도시가 되고자 합니다.
도시의 모습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삶도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포항의 도시 곳곳을 걷고 다니며 그 모양새를 살펴봅니다.
예를 들어, 바다와 함께한 동빈적 삶과 철강업을 중심으로 한 포스코적 삶은 확연히 다릅니다. 하지만 둘 다 정주하는 삶이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넘나드는 삶처럼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항이 이주로만 남겨진 흔적의 도시인 것도 아닙니다. 정주와 이주 사이를 오가는, 일종의 유목형 거주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연결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어느 지점에서 막히기도 하는 독특한 시스템이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시스템이 포항의 무질서도가 증가해 온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근대 산업 도시는 중앙집중형 구조를 선호하면서 도심지라는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도심지란 결국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공동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포항은 그와는 다르게, 일종의 유목형 거주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어중간함을 보여줍니다. 공동화되어가는 구도심과 비정형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동네들은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직선 도로, 우회로, 고가도로, 그리고 해안가를 휘돌아가는 도로들은는 포항을 도시형 분지로 만들어갑니다.
어떤 계획 도시라도 도심지의 공동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포항도 예외는 아니지만, '새로운 공존의 터를 일구는' 프로젝트는 정체된 상태처럼 보입니다.
도시라는 형태를 급히 갖추면서 많은 사람들이 '시민'이라고 불리면서 도심지에 모여드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편의시설과 상업지구가 들어서며 도시의 무질서도는 점점 높아져만 갔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의 포항에서는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난 크고 작은 건물들의 공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은 도시들이 겪고 있는 고질적인 도시 문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구도심의 쇠락, 노령화로 인한 인구 부족 등 복합적인 요인이 이 모든 과정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소멸은 안전하고 좋은 소멸일 것입니다. 우리가 종말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죽음처럼 급격하고 두려운 암전이 아닐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고, 도시의 불빛도 언젠가 꺼질 수 있습니다.
무질서도로 가득한 도시는 자연으로 회귀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속에서 새로운 풍요로움을 일궈야 할까요? 불빛이 사그라져 어두워진다고 해서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둠 속에서 새 생명들이 천천히 어둠을 방패삼아 피어날 여력을 갖추고, 결국 기름진 터전을 만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포항은 어떤 모습일까요? 🤔💭
현재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포항은 그동안 상상 이상의 변화를 경험해 왔습니다. 무질서도와 풍부함 사이에서 포항은 어떻게 새로운 생성의 힘을 돋아낼까요? 앞으로 포항이 자리한 이 지리(지형)에서 어떤 새로운 싹이 트게 될까요? 그것은 새로운 물질의 발견일지, 새로 만들어지는 기계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또 다른 생명의 형태가 태어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앗! 여기서 포항 SF를 만들어보죠.
우리가 그리는 포항 SF의 분위기는, 다크유머적이기도 하고 희비극적이도 할 것입니다. 접근하는 작가들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외계인이 이곳에 도착한다면,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요? 이들은 얼마나 신기해할까요? 그리고 포항과 또 어떤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까요?
포항 융합예술 프로젝트는, 팽창한 무질서도 속에서 공존과 공생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포항에서 찾아보고 상상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먼저 우리는 무언가를 찾아다닙니다. 새로운 물질의 연결과 인류세를 파국적으로 넘기지 않는 방법을 상상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느낌이 좋은 도시 포항을 만들어갑니다.
포항 융합예술 창제작 분야에 신설된 '디엔에이 아트랩(DNA Art Lab)'의 작가들을 관찰해 봅니다. DNA Art Lab의 17인의 작가(팀)은 포항에 관한 깊고 넓은 리서치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시가 직면한 고민을 발견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예술 작품이라는 형태로 표현하며, 긍정과 극복의 메세지를 담아 대안의 가능성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포항과 호흡하고, 대화하고, 고민한 바를 작품으로 풀어냅니다.
앞으로 동빈문화창고 1969(구,수협냉동창고)와 문화예술팩토리에서 아홉가지 하위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뉴스레터에서 작가(팀)이 진행하고 있는 리서치와 작업 과정을 공유하겠습니다.
DNA Art Lab의 17인의 작가(팀)의 기존 작업을 보면서, 그들의 컨셉과 작업의 함의를 먼저 살짝 보겠습니다.! 🎉
PART 1: 포항 현지의 지리적, 지역적, 역사적 흔적들로부터 미래를 실감미디어 형식으로 상상하고 새로 그려본다. 🥽
PART 2. 포항에 인류학자, 지질학자, 탐색자, 인공지능, 혹은 먼 미래로부터의 새로운 인류가 도착한다. 그들은 이 지역을 새롭게 감각하고 탐색하고 분석하고 추적하고, 그러한 발견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그려본다.🛸
PART 3. 모두를 포용하는 포항, 이곳의 현지 데이터와 우주 데이터로 새로운 포항을 상상한다.👾
이후 참여 작가 소개와 개별 프로젝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어질 뉴스레터에서 발송해 드릴 예정이오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
오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입니다. 《제 6의 섬》 사무국과 운영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궁금한 점, 감상평 등은 댓글창🖌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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