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제 6의 섬》(The Sixisles 식사일즈)》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일즈 뉴스레터는 융합예술주간에서 조명될 '디엔에이 아트랩 DNA Art Lab'과 '머신아트랩 Machine Art Lab'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포항의 지리와 지질, 역사에 대해 해양 문명, 해양 문화, 도시 특성, 철강 산업, 그리고 포항 사람들의 시각에서 접근했습니다. 이번 리서치의 차이점은 기존 상징들의 재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융합이라는 방법론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융합이라는 방법론을 사용하는 리서치에서는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접근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작가들은 선택하고 분석하는 대상이나 소재에서 물질 차원, 특히 나노 차원의 입자나 화학적 변화에 주목하기도 합니다. 또한, 빛, 소리, 전기, 뇌파 등의 속성을 통해 움직임과 관계성을 파악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도시 프로젝트인 만큼 도시 디자인에서도 물, 불, 바람과 같은 기후적 또는 환경적 측면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뉴스레서는 10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
많은 기대 바랍니다. ✨
'6호: 미상의 푸른 돌멩이, 원예찬, 이향희 🥣'
📆 2024년 10월 19일
📝 6호: 미상의 푸른 돌멩이, 원예찬, 이향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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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 오랜시간 잊고 지낸 것을 다시 일깨우는 즐거움.
길을 걷다가 혹은 숲속이나 해안가를 거닐다 예쁜 돌멩이를 주워본적이 있나요?
그 돌멩이를 쌓아 올려 소원을 빌거나, 물수제비를 뜨거나, 빻아서 소꿉놀이를 했던 기억은?
혹은 돌멩이가 어떤 물질로 이루어졌는지 호기심을 갖고 탐구 해본적이 있을까요?
어떤 ‘물질’을 '감각화' 한다는 것은 그 물질을 세상에서 처음 발견한 물질처럼 대하게 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생전 처음 본 것, 그 궁금한 것을 갖고 요리조리 구석구석 모양과 색을 살펴보고, 표면이 부드러운지 거친지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두드려봅니다.
"누가 돌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해 놓았어."
원예찬 작가는 유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동네에서 뛰어 놀다가 돌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원예찬 작가는 돌멩이의 안 속까지 초록색일지 궁금했고, 이내 바닥에 던져 보았습니다. 유리 파편같이 깨진 돌이 겉과 속 모두 초록색임을 확인한 후 돌멩이를 발견 할 때 마다 깨뜨리며 놀곤 했던 기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원예찬과 이향희는 함께 포항 융합예술실험실에 참여하게 되면서 유년시절을 보낸 포항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송도해수욕장, 영일대, 포스코 등 포항의 주요한 장소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향희 작가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뇌성산의 뇌록(천연기념물 547호, 주로 전통 단청에 사용되는 초록색의 천연 전통안료)을 리서치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때 원예찬은 유년시절 가지고 놀았던 푸른색 돌멩이를 떠올렸습니다. 푸른색이라는 이유로 막연히 그 돌이 '뇌록'일 것이라 추측한 이들은 원예찬이 유년시절을 보낸 동해면으로 그 돌을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가지고 놀던 돌멩이가 뇌록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되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여쭤보았을때 합흑요석, 청옥, 텍타이트 그리고 운석까지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 중 솔깃한 대답이 있었습니다.
"제철소 근처에 많아요. 아마 용광로 찌꺼기가 아닐까요?"
푸른색 돌멩이의 정체를 파헤치고자, 두 사람은 포항의 대표 산업이자 국내 최대 철 생산지인 현대 제철 - 포스코 - 심팩 등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푸른색 물질이 무엇인지 추적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푸른색 돌멩이가 ‘뇌록' 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심팩이라는 회사에서 '슬래그'일지도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고, 포항 내 합금철 주요 생산 회사인 동일산업주식회사를 소개받았습니다. 이후 미상의 푸른색 돌멩이가 "실리콘 망간 슬래그"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망간 광석 가공 부산물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미상의 푸른 돌멩이'는 '슬래그'라고 불리는 성토, 복토재 즉 '흙을 메꾸는 작업' 에 사용되는 물질이었습니다. 우리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의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바닥 아래에 묻혀있는 것이죠. 포항 소재 동일산업주식회사 합금철 사업부에서는 페로망간, 실리콘망간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이중 실리콘 망간 제품을 생산할 때 부산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미상의 푸른 돌멩이' 즉 '슬래그' 인 것이죠.
이 슬래그에는 실리카, 석회, 산화 알루미늄, 망간 산화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슬래그 속 금속 망간이 제거된 후, 슬래그는 분쇄되고 세척되어 반응성 골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원예찬, 이향희 작가는 동일산업주식회사의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합금철 생산&환경팀 김정호 과장님의 자문을 통해 슬래그의 생산과정에 대해 깊이 알아갑니다. 그리고, 작품 계획을 공유하며 작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점점 구체적으로 그려나갑니다.
원예찬, 이향희 작가는 〈미상의 푸른 돌멩이〉(2024)를 통해,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른색 돌멩이의 정체를 밝히고, '물질을 감각하기'라는 다양한 실험을 해보기로 합니다.
원예찬 작가는 "슬래그"를 기계적, 물리적, 화학적으로 실험하는 설치 작품으로 '물성'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1. 충격 테스트 2. 금속 탐지 테스트 3. 조흔색 테스트 4. 진동 반응 테스트 5. 열전도 테스트 6. 모스경도 테스트 7. 부식 테스트 과정을 통해 이 물질 고유의 특성과 반응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철강산업이 가진 산업기술과 예술가의 몸에 착근된 기술이 만나서 나오는 창작물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요?
이향희 작가는 단청에 채색하는 천연안료인 뇌록처럼 "슬래그"를 곱게 빻아 이 합성물질을 안료화하고,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미술에서 회화(색을 칠한 그림)는 재료의 속성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합니다. 예를들어 캔버스 위에 기름에 갠 물감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유화라고 하고, 달걀 노른자, 벌꿀, 무화가 즙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템페라라고 말하며, 수성 그림물감으로 종이에 그리는 그림을 수채화라고 부릅니다. 또한 먹으로 그린 그림을 수묵화라고 하죠.
이향희 작가의 그림은 '슬래그'를 사발에 빻아 곱게 갈아 가루 형태의 안료로 물과 아교를 섞어 농도를 조절하여 사용하는 분채 '채색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작 방식은 여느 분채와 유사하지만 '슬래그'라는 합성물질로 세상에 없던 안료를 개발해낸 것이죠. 물성을 변성함으로써 신소재가 탄생하는 것처럼요.
포항 땅의 역사가 품은 지질학적 기반은 광물자원을 풍부히 남겨놓았습니다. 화산 활동과 판의 이동으로 생성된 포항의 천연자원 뇌록이 천연기념물로 중요하듯, 두 작가는 현대사회가 낳은 산업화의 부산물인 실리콘 망간 슬래그도 우리가 주목할 만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깊이 탐구하면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통로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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