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캠프페이지 기획은 오키나와에서 평화학습을 위한 스터디 투어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미루분 みるぶん '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미루분은 오키나와전과 기지 문제 등 사회적 과제를 출발점으로, 참가자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디자인하는 평화학습 팀입니다.
애초에 여행이라는 것은 모두 ‘소비 활동’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오키나와는 일본의 남쪽에 위치해, 연중 내내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아름답고 푸른 바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향토 요리, 그리고 시장이나 쇼핑몰에서의 쇼핑. 어느 것이든 오키나와 여행의 묘미다. 그런 ‘소비’를 부정하지 않는다. 태어나 자란 곳이 누군가에게 치유의 장소가 되고 있다는 점은 섬 주민으로서 순수하게 기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섬은, 지금으로부터 81년 전, 주민들을 참혹한 전쟁에 휘말리게 한 격전지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살고 있으면 문득 답답해지는 순간이 있다. 전쟁의 상흔이나 지금도 계속되는 미군 기지 문제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필요한 부분만 골라서 즐기는 듯 ‘깔끔하게 패키지’ 된 여행의 모습을 볼 때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미루분みるぶん>이 하고 있는 ‘평화를 생각하는 여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적지나 자료관을 돌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고 끝나는 여행. 복잡한 역사나 슬픔마저 ‘편할대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정말로 배움인 것일까. 단순한 소비가 아닌 진짜 배움의 여행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도 단정 짓기 어려운 갈등 속에 있다.
이러한 질문을 품으면서도 이 섬에서 안내를 계속하는 것은, 화려한 관광지로서의 한 면과 그 바로 이면의 무거운 역사라는 양면을 어느 쪽도 숨기지 않고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이 즐겁게 걷고 있는 거리의 발 밑에, 전혀 다른 역사가 잠들어 있다. 그 양면을 들여다보면, 분명 새로운 시각을 만나게 될 것이고, 당신의 인생 여행 그 자체가 깊이를 갖게되어 더욱 즐거워질지도 모른다.’ 그런 초대의 마음을 담아, 우리는 오늘도 현장에 서 있다. 그 안내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고 싶다.
슈리성 공원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이며,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슈리성의 화려한 정전(正殿)을 안내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안내하는 것은, 같은 부지 안에 지금도 남아 있는 오키나와전 이전과 전쟁 중의 기억이다.
공원 안에 조용히 서 있는 ‘충혼비(忠魂碑)’는 한때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위령비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사회의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다. 전사한 병사의 유골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비 앞에 모여, 마치 축제처럼 초혼제를 치렀다. ‘명예로운 전사’라고 마을 전체가 나서서 벌이는 흥겨움 속에서, 아이들은 “나도 장차 존경받는 훌륭한 군인이 될 거야” 하고 동경을 품었다. 그래서 충혼비는 학교 부지 안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슈리성 공원에 이 비가 남아 있는 것은, 전쟁 전 이 일대에 여러 학교가 있었던 흔적이다.
더 걸음을 옮기면, 성 안에 ‘류콘고(留魂壕)’라고 불리는 작은 동굴이 보인다. 오키나와전 직전, 가까이에 있던 오키나와 사범학교 남자부의 학생들, 즉, 앞서 언급한 충혼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동굴이다. 이 동굴에는 신문사가 더부살이를 하며, 격렬한 포격 속에 ‘우리 편’이 지고 있어도 ‘이기고 있다’는 가짜뉴스를 계속 인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문을 주민이 숨어 잇는 동굴까지 목숨 걸고 옮긴 이는 학도대로 참전하기를 강요받았던 고등학생들이었다. 이 신문이 생산한 거짓말은 주민들의 투항과 피난을 늦추고, 민간인의 피해를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덮어 숨기려는 움직임은 81년 전 전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슈리성 공원 안에서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일본군의 거점이었던 제32군 사령부호는, 지금도 슈리성의 지하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에 정부가 동굴 앞에 안내판을 설치할 때, 당초 마련되었던 일본군‘위안부’나 ‘주민 학살’에 관한 기술이 삭제·수정되었다는 경위가 있다. 그 이유는 “양쪽의 주장이 달라 확증을 할 수 없다” 였다. 한때 거기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은, 그런 ‘객관성’이라는 말에 의해 떨어져 나가고, 문자 그대로 ‘없었던 것’으로 삭제되어, 다시 ‘관광지’로 패키지되어 간다. 이것들은 모두 ‘정형화된 관광지로서의 슈리성’만 방문해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충혼비는 잡초 속에 파묻혔고, 안내판은 사라졌으며, 사령부호 앞에서도 전쟁 중의 모습은 조용히 깎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괴리는 젊은이들로 붐비는 굴지의 관광 명소, 차탄마을의 ‘아메리칸 빌리지’에도 존재한다. 거리 전체가 이국 정서를 풍기며, 쇼핑을 하거나 해변을 따라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곳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군 기지였다. 원래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 지역은 오키나와전을 거쳐, 한때 마을의 9할 이상을 미군 기지가 점유했다. 땅을 빼앗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미군에 의존하는 형태로 장사를 해야만 했다. 전후 오키나와는 미군 통치하에 있었고, 권력 아래 스스로의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은 끈질긴 교섭 끝에 땅을 되찾고, 마을을 일으켜 자유로운 경제 기반을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 관광객이 즐겁게 걷고 있는 아메리칸 빌리지의 역사다.
하지만 기지가 마을에 반환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 관광지의 땅에서는 미군이 버리고 간 대량의 다이옥신이나 납 등의 유해 물질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미일 지위협정의 벽 때문에 미군은 원상 복구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관광지에서, 여전히 지역 주민들은 부당한 문제를 마주한 채 살아가고 있다.
‘리조트로서의 오키나와’를 즐기는 것은 하나의 소비형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걸음 안까지 들어가 “이 마을은 어떤 역사가 있을까?” 질문을 던지는 순간, 풍경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다. 한때 지금의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웃고, 고민하고, 저항했던 사람들, 그리고 여전히 부당함과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미루분이 스터디 투어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단순한 ‘평화학습 투어’가 아니라, 그 땅이 밟아 온 복잡함을 통째로 아는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
‘미루분みるぶん’이라는 이름은 오키나와 말로 ‘평화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미루쿠유(弥勒世)’와,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과 사명’을 의미하는 ‘스쿠분(すくぶん)’을 결합해 탄생했다. 우리가 건네고 싶은 것은 오키나와 역사의 겉과 속을 아는 것으로, 그저 소비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이해로 만나는 ‘새로운 시각’이다.
진정한 이해와 만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개인적 사건이 있다. 대학 시절, 한국 출신 친구가 있었다. 언제나 주변을 웃게 만드는 익살스러운 사람이었다. 졸업 후 어느 날, 한국 군대 내 괴롭힘을 리얼하게 그린 한국 드라마 『D.P.』가 화제가 되어, “그 드라마 봤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언제나 밝던 친구의 말투가 문자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히 어두워졌다. 친구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군 복무 중에 상관에게 비슷한 일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 못 보겠어.” 거기서 대화는 끝났다.
학생 시절 나는 친구의 ‘유쾌함’이라는 표면만 봤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그의 아픔이나, 그가 짊어진 사회의 맥락을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를 ‘진정한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복잡함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한 면만을 소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행도 이와 완전히 같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리조트’라는 겉면을 소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발밑에 있는 역사와 아픔의 맥락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은 눈앞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겉으로 보이지 않는 얼굴을 알고자 하는 것과 닮아 있다. 나 자신의 ‘즐겁다’는 감각의 바로 이면에 그 땅과 인간의 복잡한 이야기가 겹쳐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행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평생 끝나지 않는 배움’으로 바뀐다. 그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세계를, 그리고 눈앞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땅에 발을 붙인 채로 바꾸어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 역할(스쿠분)로 바뀌어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노조에 유마(野添侑麻)
오키나와 출신. 축구와 맥주를 매우 좋아하는 33세. 동료들과 미루분을 만들고 활동하고 있다. 20대부터 오키나와전에 관한 가이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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