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도청을 캠프페이지에 짓자는 제안이 나온 지 약 5개월 만에 신청사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조례안이 강원도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2023년부터 6년에 걸쳐 신청사 설치 및 운영을 위해 총 3천89억 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이 사업의 거취는 선출직 공무원 3명이 78일 만에 내렸다. 시는 설문에 응답한 춘천 시민 2000명 중 약 70%가 동의했다고 덧붙였지만 과연 춘천시민들도 그렇게 느낄까? 정윤경 전 춘천여성민우회 대표(이하 정윤경 전 대표)를 만나 관련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윤경 전 대표는 춘천에서 10여 년째 거주하며 여성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90년대에 대학 시절을 춘천에서 보냈던 그는 캠프페이지에 대한 기억으로 ‘성매매 업소’를 꼽았다. 당시 시내버스 노선이 캠프페이지 주변 기지촌을 지나가곤 했는데, 이질적인 풍경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서는 캠프페이지에 굳이 발걸음할 일도 관련된 활동도 없었다고 했다. 다만,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옮긴다는 결정에는 우려를 표했다.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치우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의견을 묻는 것은 한 번 정도 했었던 것 같아요. 이게 되게 큰일이잖아요. 그러면 그만큼 소통을 하고 알려야 되죠. 솔직히 대통령 선거할 때는 엄청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서 사람들한테 인식시키는 뭔가를 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빨리 해치워 버리려고 해요."
정윤경 전 대표는 해당 사안에 대해 춘천 시민단체나 일부 춘천시의원들은 ‘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얘기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춘천 시민들은 ‘관심 자체가 크게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춘천 시민들의 냉담함이 지역 정치에 대한 불신의 결과라고 짚어냈다. ‘민원을 넣어도 듣지 않는다’는 불신이 경험적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만나는 분들은 (시정에) 좀 민감하세요. ‘여기 보도블록이 까졌네, 이거 고쳐야 돼’라고 생각하면 시에 얘기하거든요. 근데 피드백이 없는 거야. 몇 번 해도. 그러니까 포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캠프페이지 터에 ‘꿈자람 어린이 공원’을 조성할 때도, 위험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시에서 이를 묵살한 채 공원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강원도 도지사 및 춘천시장 예비후보들은 도청사 이전을 ‘시민 투표에 준하는 100% 시민 주도의 여론조사로 결정’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춘천사람들, 2022년 2월 16일). 하지만, 춘천 시민의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쉽게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윤경 전 대표는 지역 정치가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게 된 현 상황에 대해 춘천시의 잦은 인구 이동을 하나의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한 발만 담그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강원도청이나 강원경찰청 같은 중앙 시설이 여기 다 있어요. 발령받아서 다니는 공무원분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쭉 산다는 생각이 없으니까, 깊게 관여하지 않고 관심도 없어요."
더불어 춘천시는 인생 주기에서 삶의 터전을 결정하는 시기의 청년들이 정주하고 싶은 도시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가 부족*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청년 세대를 의사결정에 포함시키기 꺼려하는 춘천 시정의 가부장적 권력을 다른 원인으로 분석했다. 캠프페이지에 관한 간담회 등의 의사결정 단위에 대부분 40~60대 남성만 등장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간담회 등의 자리에 가면) 청년이 없어요. 저 항상 얘기하거든요. 이 자리에 청년을 불러라. 하지만, 맨날 오는 분들이 오시는 거예요. 거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이게 어떻게 변하든지 별로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미 터를 잡은 분들이기 때문이죠. ‘여기에서 이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의견을 제일 많이 낼 그룹은 청년 그룹이예요. 앞으로 계속 살아야 되니까. 여기서 계속 살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기인 거잖아요."
<공간, 장소, 젠더>(정현주 옮김, 서울대출판문화원)의 저자 도린 매시(Doreen Massey)에 따르면 모든 공간 · 장소는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즉, 공간 · 장소는 “동적인 무엇도 없이 다만 무기력하게 주어진 평면”이 아니라, 그 사회의 권력 관계가 얽혀 있는 ‘특정한 접합점’이자 다른 접합점들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이 관점에서 춘천시의 의사결정 단위는 40대~60대 남성의 권력이 작동하고 있는 공간이다. 아쉬운 점은 이 공간에 여러 권력 관계가 얽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한 권력이 공간을 장악하지 않고, 공간이 역동하게 하려면, 다른 권력‘들’이 접합점‘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윤경 전 대표는 공간이 가진 권력에 도전하고, 스스로 다양한 권력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 분들은 ‘춘천 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에요. 춘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춘천에는 해먹을 게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꾸 떠나려고만 해요. 근데 왜 여기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원인을 알아보고 어떻게 바꿔갈까에 대한 비전을 얘기해야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간을 장악한 권력에 일상적으로 도전하고, 그 안의 역동을 만들기 위해 2020년 ‘달빛 여자 축구단’을 창단, 1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는 정윤경 전 대표. 공간을 익숙하게 장악하는 남성의 권력을 낯설게 보고, 여성도 몸을 움직이며 공간에 작용하는 권력으로 키움으로서, 다양한 접합점들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각 시민들, 각 구성원들이 삶의 방식을 바꿔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이죠. 내가 어느 곳에 살던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한다는 마음이에요. 이게 시민 의식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캠프페이지라는 공간은 군사주의 권력에 오랫동안 장악되어 있었기에 춘천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고 캠프페이지가 국방부를 거쳐 춘천시에 반환된 이후에도 시민들은 그 공간이 가진 권력 밖에 맴돌고 있다. ‘시’라는 공간의 주인이 ‘시민’이라면, 시민들의 땅을 시민들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흐름이라면 캠프페이지라는 공간은 국가로부터 지자체로 이양될 뿐, 시민의 것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민의 땅이 무엇이며, 그 땅을 시민의 것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정책적인 고민 없이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새로 짓는다고 한들, 이미 공간을 장악하고 있던 권력들에게만 즐거운 공간이 되지 않을까.
* 춘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통계자료에 따르면, 춘천시 청년 인구(19세~39세) 비율은 2021년 12월 기준, 26.3%로 전국 26.9%보다 0.6% 낮다. 청년 고용률도 2021년 하반기 기준 39.3%로 춘천시 평균 고용률인 66.1%를 한참 밑돈다. 최근 5년 동안 강원도를 떠난 20대 중 66%가 직업을 이동사유로 밝혔고, 강원지역평균임금이 전국 및 수도권 대비 88%(20년 기준)이라는 것(한국은행 강원본부, 2021년 7월 15일)을 볼 때, 춘천시는 청년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좋은 지역이 아님을 추측해볼 수 있다.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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