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사람이야?
춘천에서 노동인권과 자원순환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홍주리님이 종종 마주하는 질문이다. 춘천에서 나고 자라지 않아서 ‘춘천 사람’들에게 의아한 눈초리를 받는 그가 춘천의 문제를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주리님은 4년째 춘천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10년 전에 춘천으로 귀촌하셨던터라 춘천과 연을 맺은 지는 10년이 되어간다. 춘천에 사시던 어머니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셔서, 간병 차 춘천에 왔다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리님은 춘천으로 이주하기 전부터 핵발전소에 대한 문제점을 자각하고 ‘차일드세이브(2011년 일본 원전 사고 직후 평범한 엄마 아빠들이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등 방사능 오염에 관심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핵 문제에 관심이 많아져서 공부도 하고, 1인 시위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춘천에 왔는데, 다른 지역보다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거예요. 당시 생협에서 방사능 수치 측정하는 기계를 대여해 주어서 살던 집을 측정해봤어요. 그랬더니 엄청 높게 나온거죠. 춘천에 살아서 엄마가 암이 생겼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춘천의 방사능 문제를 푸는 것, 여기서 생태 활동을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느껴졌어요. 다음 세대는 나처럼 고생하지 않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서요”
실제로 춘천은 서울에 비해 건물에서 방출되는 방사능 수치가 약 3배 정도 높다(서울 평균 119nSv/hr, 춘천 323nSv/hr). 기준치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춘천시민들은 2014년부터 대책위를 꾸려 시내 곳곳의 방사능을 측정했다. 그 결과 건축물에서 몇 발자국만 떨어져서 측정해도 수치가 반으로 뚝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시민들은 건축 재료인 골재를 방사능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춘천 시내 건축물과 아스팔트에 쓰이는 골재는 지역업체 두 곳에서 조달하는데, 해당 골재장의 골재를 사용한 건물이나 주차장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측정된다. 방사능시민대책위원회는 2020년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춘천지역 건물과 해당 골재장의 방사능을 측정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승소했지만, 원안위와 춘천시 모두 대응을 회피하고 있다. 방사능 도시로 낙인이 찍히면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된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춘천은 지역 이미지를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방사능처럼 불편한 이야기를 하면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고, 지역 경제도 흔들릴 수 있으니까 쉬쉬하는 분위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공론화가 잘 안되죠.”
춘천지역의 방사능 문제는 캠프페이지와도 직결된다. 캠프페이지에 핵무기가 있었고, 방사능 유출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골재를 채취하는 산에 핵무기가 묻혀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지만, ‘괴담’ 취급을 받을 뿐 춘천시 측의 제대로 된 조사나 대응은 없다.
무관심 혹은 회피
주리님은 춘천이 유독 지역의 문제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고 짚었다. 불편한 이야기를 들추기보다는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춘천시청이나 강원도청을 비롯한 춘천 내 각 기관들은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어서, 방사능 오염이나 캠프페이지 오염 등이 심각하게 밝혀져도 좀처럼 공론화되지 않는다. 더불어 오랜 시간 축적된 위계적인 시정 문화 또한 시민들의 무관심을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번 민선 8기 육동한 춘천시장 인수위에서 최근에 백서를 발행했어요. 캠프페이지와 관련된 계획을 보니, 캠프페이지를 ‘춘천의 창조성으로 최고의 도약을 이루어낼 미래의 땅’이라고 표현했어요. 앞으로 캠프페이지를 ‘첨단 지식산업 특화지구’로 또 만든다고 해요. 근데 이것도 합의된 게 아니잖아요. 시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짓겠다는 이전 도정부의 결정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며 ‘부지선정위원회’를 꾸렸다. 지난 8월 31일 첫 회의를 가진 부지선정위원회는 춘천내 도청사 후보지 4곳에 대한 선정 기준과 평가를 거쳐, 4번째 회의에서 최종 부지를 확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연내 부지선정을 마치겠다는 도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타임라인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물론 부지선정위원회 내에서도 ‘도에서 가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아니겠냐며,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능성을 덮어놓기
생태활동가의 입장에서 캠프페이지는 여러 상상이 가능한 공간이다. 춘천시는 쓰레기매립장 포화를 앞두고 새로운 쓰레기매립장을 2026년까지 준공할 계획으로 환경부에 보조금을 신청한 상태다. 주리님은 새로운 부지에 쓰레기매립장을 신축하는 것보다, 캠프페이지 부지 일부를 매립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떤지 시에 제안하기도 했다.
“제가 활동하는 자원순환팀에서 캠프페이지에다가 쓰레기매립장을 만들자고 시에 제안했어요. 쓰레기매립장이 가까운 데 있어야 사람들이 심각성을 인지하지요. 오염되지 않은 땅을 다시 쓰레기로 오염시키느니 오염된 부지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요.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죠.”
주리님은 용산 미군기지처럼 오염이 덜한 일부 부지를 우선 개방한다든지, 인천 부평의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마켓의 사례처럼 ‘아카이빙(기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러나 캠프페이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공터 상태여서, 모두를 위한 공간을 상상할 토대가 매우 약하다고 덧붙였다.
“원래 캠프페이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용산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일부 공원화가 가능한 것 같아요. 하지만 춘천은 남아 있는 건물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다 밀어버렸잖아요. 심지어 일제강점기 때 건물도 있었을텐데, 무작정 건물을 다 부순 것이 맞는 일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직면해야 할 책임
춘천은 방사능 문제도, 캠프페이지의 오염 문제도 우선 ‘덮어 놓자’는 힘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 활동가로서 혹은 춘천지역 시민사회 단체 차원에서도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이다. 주리님은 이런 상황에서 미군기지가 있었던 도시들끼리 모여서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지역의 문제를 직면해야 할 책임을 모두가 함께 직면하고 연대하면, 문제를 짊어질 무게 또한 덜어지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어떤 지역에 있어도 갈등은 생겨요. 제주도에 있을 때는 제2공항 문제가 있었고요. 그 갈등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직면을 해야 아이들한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이제 회피하면 안 되겠다. 그러니까 정말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 되는데, 나의 힘이 너무 부족하니까 다른 사람들하고 연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의 책임과 필요에 귀 기울이고자 노력하는 주리님에게서 시민의 힘을 깨닫는다. 복합적인 위기를 바라보며 그 무게에 짓눌리기 쉬운 지금, 각자가 가진 힘을 모으고, 머리를 맞대는 일의 중요성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 세대에서 해결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자꾸 회피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너무 거시적인 문제들에 눌려서 우울할 때도 많아요. 그래도 찾아보고, 목소리를 내야죠.”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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