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조직문화팀의 딜레마죠. 우리가 지향하는 핵심가치에 걸맞는 행동이 그저 한 두번 즐거운 이벤트가 되길 바라진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일상에 녹아들고 완전한 습관이 되길 바라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변화가 시작될 땐, 변화의 저항 때문에 불만이 많아집니다.
변화가 익숙해져 일상이 되면 '개선된 점'을 인지하지 못해서 불만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분명 그들의 행동과 업무는 얼마 전에 비해 몹시 좋아졌습니다. 소통이 원활해졌고, 불필요한 일이 줄어들었고, 회의가 짧아졌죠.
그러나 이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인간의 적응력은 엄청나게 빠릅니다. 2,3주 정도면 이미 패턴이 되죠. 가이드가 명확하고 촘촘할수록 실행속도는 빠르고 명확해집니다. 패턴이 만들어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죠. 일상에 손쉽게 녹아들도록 녹인 설탕을 빙빙 휘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바란 모습이죠.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개선'은 말 그대로 그저 일상이고 평범한 것이 됩니다. 문제는 불편함에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꽤나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좋은 건 당연하고, 불편함만 외치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보여주고, 외치는 것"입니다. 말로만 달라졌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인바디에 목을 매는지 생각해보세요. 왼팔과 오른팔의 체지방 지수가 다른 것이 우리 삶에 뭐 큰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그러나 인바디를 볼 때면 매달 0.05kg씩 달라지는 근육량에 일희일비합니다. 이게 '수치편향'이죠.
변화가 시작되기 전,
- 개선하고 싶은 지점들을 정량화 시킨 후, 측정합니다. 우울감, 만족감, 효용감 이런 정성적인 지표도 좋고, 회의 횟수, 시간, 원온원 참여율, 협업속도, KPI달성정도 등 정량적인 지표도 좋습니다. 기준지표가 존재해야 하죠.
- 그리고 6개월 후 재측정합니다. 상대지표를 만들고 변화를 측정합니다. 아마 많은 조직문화팀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죠. 그리곤 그걸...보통 구성원들에게 전사공유합니다.
여기서. 잠깐.
그냥 공유하지 마세요. 사람은 '수많은 숫자를 보면 원하는 숫자에만 의미부여 합니다.' 우리가 노력했고 개선된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폰트를 Extrabold로 써볼까요? 아니면 빨간색으로 강조할까요? 노노
스피치 하세요.
대표님이든 조직문화 팀이든, 직접 말하세요.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맥락을 담아서. 조직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은 '진정성과 친화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수가 모인 아고라의 한 중심에 있고, 그 가운데서 우리의 변화와 지향점을 외치는 소피스트입니다. 제대로 스피치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의 제도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해볼게요. P&C팀은 타운홀에서 이런 스피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트로 설명]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우리는 하나의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사온 커피를 식게 만들었던 수많은 회의, 시끄러운 머릿속과 달리 침묵이 가득한 회의, 한참 집중할라치면 다시 시작된 회의.
[변화 아젠다 설명]
모두가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쉽사리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너무 오래되었고, 모두에게 익숙했기 때문이죠. 우린 익숙함에 도전했습니다. 지난 6개월 간 우린 MCP제도(가칭)를 도입했습니다. 모더레이터를 양성하고, 회의의 시간제한을 두고, 회의의 필요여부에 대해 먼저 점검받는 것이었죠.
회의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회의를 없애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지표 해석]
6개월 전, 우린 평균1시간14분의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지금은 45분으로 줄었습니다. 무려 40%나 감소했죠. 놀랍죠?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지표가 있습니다. 우린 이번 서베이에서 회의 시간이 아닌, 회의의 횟수가 줄어든 것에 더 주목하려 합니다.
우린 6개월 전 주 평균 9회의 회의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주 평균 6회로 줄었습니다. 30%가 감소했습니다. 회의가 줄었으니, 큰 일이 생겼을까요? 업무의 이슈와 협업의 만족도 지수는 오히려 1.2점이 증가했습니다.
[의미 부여]
첫 실험에서, 고작 6개월만에. 지난 12년간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올해. 앞으로의 6개월 동안 이것을 절반 이상으로 줄여나갈 것입니다. 우려했던 일들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헌사 돌리기]
우린 더 편해지고, 더 합리적인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우리가 직접 말하고, 직접 콕 찝어서 해석하고, 직접 의미부여 해주세요.
숫자의 힘은 엄청나게 큽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숫자가 오히려 선입견이나 왜곡된 팩트를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어버릴 수도 있어요. 물길은 우리가 먼저 만듭니다. 숫자와 함께 하는 스피치는 더욱 강력해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지금, 기준지표를 세우기 딱 좋은 시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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