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안녕!
벌써 아홉 번째 편지네. 그동안 편지를 받아보며, 내가 무언가 덕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챘을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받아 본다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덕후 맞아! 덕질에 정말 조~금이라도 관심이 없다면 미안! 하지만 일본 문화를 이해하려면, 이 덕후 문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해.
'덕후' 혹은 '오타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릴 만한 이미지가 대충 있지 않을까 싶어. 아마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거나?! 편견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게, 아예 틀린 건 아니거든. 그런데 사실은 조금 더 넓은 범위로도 '오타쿠'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어?
오히려 덕질을 적극 장려하는 일본의 덕질 문화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작년에 화제였던 덕질 관련 CM도 함께 소개할게. 또 '덕후의 나라'인 만큼 얼마나 덕후를 생각한 상품이 있는지도 함께! 혹시 일본어를 공부 중인 학습자라면 뭐든 덕질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할게! 그나저나 구독자, 혹시 이미 덕질 중인 거 있어?
- 일본에서는 무려 5명 중 1명이 한다는 '덕질'
- 아이돌 팬이라면 500% 공감! 화제된 일본의 CM
- 오직 덕후를 위한 상품 기획, 그것이 덕후니까...
🤷🏻 '덕후'랑 '오타쿠'랑 뭐가 다르냐고?
많이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에서 왔어! 그런데 '오타쿠'가 무슨 뜻이냐고? 원래 '오타쿠(お宅)'라는 말은 상대방을 포함해 상대방의 집이나 가정을 뜻하는 '댁'으로, 2인칭 대명사의 존칭 중 하나야. 1980년대 일본, 서브 컬처 애호가들끼리 서로를 '오타쿠'라고 불렀는데, 거기서부터 시작됐다고 해. 쉽게 말해, '~님' 같은 거였던 거지!
❤️🔥 오시, 그리고 오시카츠
'오시(推し)'라는 말은 들어본 적 있어? 작년에 유행했던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를 봤다거나, '최애가 부도칸에 가 준다면 난 죽어도 좋아'라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알고 있다면 익숙할 거야! 일본어로 '推しの子(오시노 코)', '推し武道(오시부도)'라고 하거든. 그래! 오시는 '최애', 즉 덕질 중인 대상을 뜻해. 민다는 뜻의 동사 '押す(오스)'를 명사로 바꾼 거야. 그룹 중 한 멤버를 좋아하는 경우, 그 최애를 '오시 멤버', 줄여서 '오시멘(推しメン)'이라고 부르기도 해.
위 일러스트 3개가 '오시카츠(推し活)'의 예시야. 오시카츠는 덕질이라는 뜻이고! 어떤 형태로는 최애를 응원하는 활동을 줄여 '오시카츠'라고 하는데, 오타쿠 활동을 줄여 '오타카츠(オタ活)'라고 하기도 해! 이런 오시카츠는 덕질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고, 범위도 넓어. 굿즈를 사는 행위부터 같은 덕후 친구와 최애 얘기를 하는 것도 오시카츠에 해당하거든.
보통 '오시'라는 말이 '최애'를 뜻하지만, 일본의 구 쟈니스(현 스마일 업) 소속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은 '담당(担当, 탄토-)'이라는 표현을 주로 써. 특정 그룹의 특정 멤버를 담당해서 좋아한다는 뜻으로! 오시랑 담당, 어떻게 쓰는 건지 예시도 몇 개 보여줄게!
✋ '오시'나 '담당', 어떻게 쓰냐고?
😍 세상에 덕질할 게 얼마나 많은데!
덕질이라고 해서, 아이돌이나 만화, 애니메이션만을 생각했을 수도 있어! 아마 일본에서도 단순히 '오타쿠'라고 한다면, 대부분 '투디나 쓰리디를 좋아하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만 '무슨 덕질 해?' 혹은 '나 철도 오타쿠!' 혹은 '코스메 오타쿠!', '치이카와 오타쿠!'라고 대답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무언가 하나에 굉장한 열정을 가진 사람도 '〇〇 오타쿠'라고 칭할 수 있다는 점!
작년 10월, 도쿄역 지하에 위치한 캐릭터 스트리트 중 치이카와 스토어에 들렀을 때 치이카와의 인기에 깜짝 놀랐어. 아마 신상품이 발매된 지 얼마 안 된 날이라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매장에 들어가려면 기본 3~40분 이상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더라고. 나도 기다려서 들어갔어! 후회 없음!
내가 하는 오시카츠 중 하나를 소개할게. 많은 관심사 중 가장 오랜 기간 덕질을 이어 온 건 아이돌이라, '아이돌 오타쿠(アイドルオタク)'를 줄인 '도루오타(ドルオタ)'야! 이외에도 문구나 산리오도 좋아하고, 드라마랑 액션 영화를 좋아해. 😍 요새는 버추얼 유튜버(Vtuber)가 많아져서 선택지가 더 넓어지고 있어. 코스메틱 덕후를 줄여 '코덕'이라고 하는 것처럼 화장품을 좋아해서 사 모으는 사람인 '미용 오타쿠'도 있고, 그 외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단백질을 잘 챙겨 먹는 사람, 건강에 유독 신경 쓰는 사람을 '건강 오타쿠'라고 하기도 해!
⚡️ 한 일본 배우의 포켓몬 덕후 생활
작년 11월 말, 배우 혼고 카나타의 유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올라왔어. 그것도 아주 깜찍한 썸네일로...!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이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지. 😂
혼고 카나타는 2017년에 개봉했던 '극장판 포켓몬스터: 너로 정했다!' 중 사토시(지우)와 모험을 함께 하는 소우지(민준) 성우를 담당한 적 있는 배우이자, 포켓몬 덕후이기도 해. 포켓몬 영상은 전부터도 꽤 자주 올렸는데,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게 바로 위에 첨부한 굿즈 하울 영상이야. '두리쥐'랑 '파밀리쥐' 굿즈를 무려 4만 엔, 약 40만 원어치 구매했다더라. 쥐 가족이라 파밀리쥐래. 이름도 그렇고, 보다시피 엄청 귀여우니까 예비 포켓몬 박사님이거나 이 배우의 포켓몬 덕질이 궁금하다면 꼭 봐!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케이팝을?
지난해 12월 16일 NHK에서 방송한 지브리의 수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을 통해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상상도 못 한 조합이다 보니 일본에서도 꽤 화제가 됐어.
침대에서 옆으로 누워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케이팝 아이돌인 케플러의 데뷔곡 '와다다' 음악방송을 보면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 공개됐거든. (❗️) 거짓말 아니야. 일본의 한 케플러 팬이 올린 트윗을 공유할게.
📺 너의 덕질을 응원해! 덕후가 주인공인 일본의 CM
지난해 겨울, 공개하자마자 화제가 됐던 오오츠카 제약의 유산균 음료수 '보디멘테'의 CM을 소개할게. CM에는 NCT 127이 출연했는데, 그야 일본에서 인기 많은 케이팝 아이돌이 광고 모델이 되었으니 화제가 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 꽤 리얼한 아이돌 팬의 일상이 담겨있거든. 일본에 있는 많은 케이팝 팬들이 공감한 이 CM의 메인 카피는 'メンテナンスは愛だ。(컨디션 관리는 곧 사랑이다.)'였어. 이야기는 엔시티 127의 일본 공연을 약 3개월 앞둔 시점부터 시작해.
아이돌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버블'로 '몸조심해!'라는 메시지를 받은 팬이 열심히 운동도 하고, 보디멘테도 마시면서 콘서트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 공연을 준비하는 엔시티 127과 공연을 기다리는 팬의 모습을 교차로 보여주는 이 CM은, 최고의 컨디션으로 콘서트를 보고 싶은 팬의 마음과 덕질이 주는 좋은 영향을 동시에 잘 담아낸 영상이라고 생각해. 특히 해외에 있는 팬의 입장에서 공지가 뜬 이후부터 콘서트를 기다리는 그 과정이 상세하게 잘 담겨있고 말이야!
엔시티 127의 인터뷰 영상에서 멤버인 마크가 이야기하길, 평상시에도 항상 컨디션에 관련된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더라고. 이 부분은 여러 아이돌을 좋아해 본 나로서도 공감했어! 환절기니까 감기 조심, 추우니까 감기 조심, 더우면 더위 먹지 말라고도 해 주니까! 😂
👩🏻 엄마 : 케이팝 덕후가 되...
엔시티 127이 출연한 CM이 화제가 되기 전, 작년 3월에 이미 아이돌 팬의 이야기를 다룬 CM이 하나 있었어. 심지어 다른 광고도 아니고 가스 공사의 광고였던지라, 나도 처음 봤을 땐 정말 두 눈을 의심했거든.
택시 운전기사인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원어스의 환웅이라는 멤버에게 입덕하게 돼. 평범했던 날들이 원어스 덕분에 조금 더 다채로워졌지. 한국에서 열리는 원어스 콘서트에도 당첨돼서 그날만을 기다리던 중 코로나에 걸리게 되는데, 딸이 가스레인지로 삼계탕을 끓여주는 장면으로 영상이 끝나. 좋아하는 것을 평소처럼 좋아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는 도쿄 가스의 메시지가 오타쿠의 심금을 울렸어. 'あなたらしい明日を、支えたい(내일도 당신답게 보낼 수 있기를)'
💸 덕후의, 덕후를 위한, 덕후에 의한 상품
🐰 '모에화 적극 장려'하는 산리오
모에화란, 덕질 대상과 닮은 캐릭터나 동물, 나아가서는 과일이나 음식까지 닮았다고 생각할 때 거기에 빗대어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강아지 같다, 고양이 같다 이런 것도 포함!)
덕후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산리오의 '엔조이 아이돌 시리즈' 굿즈야.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캐릭터, 아이돌, 배우를 불문하고 어떤 덕후든 쓸 수 있도록 신상품도 빈번하게 출시하고 있어. 가장 처음 엔조이 아이돌 시리즈가 나왔을 때, 우치와를 보관하기 좋은 우치와 케이스랑 포토카드 앨범이 나오자마자 품절돼서 구하기 힘들었던 걸 기억할 정도로 인기가 많아. 여전히 신상이 나올 때마다 인기 있는 캐릭터들 건 구하기 힘들거든. 작년에는 '프로듀스 101 재팬'을 통해 결성된 JO1이 산리오랑 손을 잡아 'JOCHUM(제오챠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키기도 했어.
🔗 #推しのいる生活(최애가 있는 삶) 기획전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활용샷들을 볼 수 있으니 참고해! 엔조이 아이돌 시리즈는 전국의 산리오 샵, 일부 돈키호테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 덕후 특) 외출할 때 굿즈 꼭 챙김
외출할 때 포토카드나 아크릴 스탠드 혹은 인형을 챙기는 건 어쩌면 덕후 공통 사항일 거야.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포토카드 홀더야 이제는 시중에 워낙 많이 팔아서 익숙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서 한때 붐이었던 게 레이메이 후지이의 문구 브랜드 'Kept'의 투명 파우치야. 여섯 번째 편지, 문구 박람회 즐기는 꿀팁으로 '이벤트 보드'를 소개했던 바로 그 브랜드!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포토카드를 들고 찍는 '예절샷'이 익숙할 텐데, 일본에서는 아이돌이든 애니메이션 혹은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든 아크릴 스탠드를 세워놓고 찍는 일이 적지 않거든. (포토카드가 없기도 하고!) 포토카드도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보관하는 것처럼, 흠집이 나기 쉬운 아크릴 스탠드 사이즈에 딱 맞는 투명 케이스가 색깔별로 나왔으니 당연히 덕후들의 필수품으로 등극할 수밖에 없었지. 일본은 투디 아이돌이든 실재하는 아이돌이든 멤버 고유 색상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원색을 다채롭게 활용한 상품이 많아.
🔗 Kept의 아크릴 스탠드 케이스는 총 7가지 색상으로, 1개에 세금 포함 990엔이야. 일본의 대형 문구점 Loft(로프트)에 가면 더 다양한 파우치를 만날 수 있을 거야.
🏨 '최애 없는 최애 생일 파티' 하세요!
'요코하마 아리나' 공연장, 줄여서 '요코아리'가 위치한 신요코하마역 근처에 있는 프린스 호텔에서 지금 진행 중인 덕후를 위한 숙박 플랜을 소개할게! 공연을 보러 온 덕후나, 공연과 상관없이 친구와 덕질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숙박 플랜이야. 프린스 호텔 외에도 이렇게 덕후를 위한 숙박 플랜을 발표한 곳이 몇 군데 더 있어.
'#최애 없는 최애 생일 파티' 숙박 플랜은 매일 1개 방 한정으로, 요코아리 뷰 방에서 최애 생일파티를 할 수 있어.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5개 색상 중 하나를 정하면 그 색에 맞춰 배드메이킹을 해 주니 자유롭게 사진 찍기 딱이야! 게다가 이 숙박 플랜에는 논알콜 칵테일도 포함되어 있어서, 멤버 컬러를 골라 마실 수도 있어! 2명 기준 1박에 약 26만 원 정도고, 1명이 숙박하면 약 20만 원 정도야. 해당 플랜은 3월 말까지 진행한다고 해.
이어서 17일 수요일, 덕후를 위한 새로운 숙박 플랜을 하나 더 발표했어. 옥상에서 먹을 수 있는 바베큐 뷔페 식사권과 위에서 소개한 '요코아리 뷰 룸'이 포함된 '귀여운 인형과 함께하는 봄의 나이트 피크닉 플랜'이야. 인형이나 아크릴 스탠드를 가져와서 자유롭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바구니나 테이블 매트도 빌려준다더라!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3월 1일부터 4월 말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될 예정이야.
이렇게 덕후를 위한, 덕후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이지만, 본인이 덕후인 걸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드러내지 않는 사람도 있어! 어떤 걸 좋아하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누군가는 편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다양성을 존중하려고 하는 편이라 대놓고 이상하게 보지는 않아. 오타쿠인 사람이 많으니 이상할 것도 없고! 내가 느끼기에 일본은 덕후에 아주 관대한 편이야. 관련한 학술 논문도 적지 않고!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야! 내 전문 분야에 대해 소개하다 보니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사실 이번에 소개하지 못한 문화나 물건들도 몇 개 있거든! 이건 다음 기회에 이어서 소개하도록 할게! 그리고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말도 있잖아. 다들 덕질 중인 게 있다면 즐겁게 덕질하길!
그럼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일본 이야기를 담아 부칠게!
다음 주에는 다시 엄청 추워진다더라, 감기 조심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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