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하는 자리라면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
쿠팡에서 HRBP로 일하던 시절, 핵심인재들과 원온원을 하면서 그들의 속깊은 Needs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원온원을 했던 디렉터 A님은 조직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그의 상위 직책자의 자리에 가는 것이라면 별로 내키지 않는 다는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습니다.
최고의 Capacity를 보유한 핵심인재들의 내재적 동기요소는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 때문에, 이들의 매니저들은 좀더 세심하게 개개인을 들여다보고 잠재력을 높은 수준으로 발휘하도록 어떻게 역할을 부여하고 지원할지 고민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핵심인재들이 일에 몰입하고 더 오래 근속하며 조직에 기여하도록 하는 내재적 동기를 파악해보고자 노력할 수록, 상위 직책자에게 그 책임과 역할을 모두 부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욕구와 기대는 통상 조직단위를 넘어설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과거 SK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룹차원에서 중장기 관점으로 핵심인재를 관리하는 방식을 적용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1년 이상의 장기계획으로 Talent를 관리한다는 것이 스타트업 환경에는 맞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 했던 성과관리 ‘CORE 모델’의 Opportunity와 Relevant Exchanges관점으로 접근해보면, 개인의 역량과 잠재력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환경과 상호작용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높은 성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전제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핵심인재들의 아쉬움을 들여다보면 의외로 ‘보상’ 보다는 본인들의 역할이나 권한에 대한 제한, 협업 대상자나 리더에 대한 아쉬움들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성과자를 박스 안에 가두는 딜레마
실제로 현장에서 핵심인재들의 '기회'와 '관계'가 제대로 설계되지 못할 때, 우리는 대략 다음 4가지의 딜레마를 마주하게 됩니다.
- 핵심인재의 '역할 잠김' 현상 (당장의 문제해결에 묶임): 상위 조직장 입장에서 핵심인재는 당장의 목표 달성과 문제 해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자원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Opportunity)'나 도전적인 역할을 부여하여 성장시키기보다는, 현재 가장 잘하고 있는 실무에 계속 묶어두려는 경향이 발생합니다. 리더가 직면한 단기 성과의 압박이 역설적으로 핵심인재의 중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제한하는 병목이 되기도 합니다.
- '형평성'의 덫과 조직 내 질투: 전통적인 HR은 정규분포형 평가와 산술 평균적인 '형평성'을 중요한 잣대로 활용해 왔습니다. 이로 인해 특정 핵심인재에게 주목이 쏠리고 자원과 역할이 집중되면, 기존 구성원들은 "저 사람은 뭔데 저렇게 특별 대우를 받느냐"며 박탈감과 질투를 느끼게 됩니다. 이는 핵심인재를 둘러싼 긍정적인 '상호작용(Relevant Exchanges)'을 망가뜨리고, 이들을 평범함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조직의 중력으로 작용합니다.
- 우수한 인재를 무능한 리더가 관리하는 구조적 모순: 핵심인재의 역량(Capacity)은 빠르게 성장하여 기존의 틀을 깰 준비가 되어 있지만, 종종 이를 담아낼 그릇이 안 되는 리더 밑에 배치되곤 합니다. 자신보다 뛰어난 10배, 100배의 임팩트를 내는 인재를 관리해야 하는 리더는 성과를 돕기보다 통제하려 들기 쉽습니다. 리더십과 협업이라는 '관계'가 오히려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전락하는 셈입니다.
- 성과에 대한 충분한 인정과 보상 방식의 부재: 과거 조직에서 성과에 대한 최고의 인정은 '조직장(리더)으로의 승진'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두의 디렉터 A님 사례처럼, 일 자체에 몰입하는 인재들은 사람을 관리하는 매니저 자리를 원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관리자가 되지 않으면 더 이상의 파격적인 보상이나 인정을 받기 어려운 경직된 구조가 이들의 내재적 동기를 꺾어버립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이 문제를 누가 풀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앞서 이야기한 상위 직책자인 리더가 풀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 리더가 병목인 경우도 있고), 최고 경영자가 충분한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높은 품질의 의사결정과 설계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상위리더 또는 경영진이 직접 문제를 잘 인식하고 해결할 수도 있겠으나, HR이 조직과 사람에 대한 의미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통찰을 반영하여 설계를 제안하고 실행할 수도 있겠지요. 이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파고드는 것이 성과관리에 진심인 HRer가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기회'와 '관계'의 재설계
다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해결책은 누구의 문제도 풀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영감을 서로 나누는 의미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스스로 기회와 관계를 설계하는 환경:’에이전틱 매니지먼트' 핵심인재에게 조직이 설계하는 역할을 강제하는 대신, 회사의 중요한 문제를 ‘기회’로서 제공하고 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과업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자원의 우선 배정'과 같은 환경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국 기존의 사람이 조직을 관리하는 형태보다는 좀더 기준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고 역할을 할당하는 기능에 가깝고 이는 사람보다는 에이전틱 매니지먼트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영역으로 보입니다. 이미 AX전문기업 렛서에서 그 변화를 의미있게 실행하고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렛서에서 중간관리자를 없애고 AI 중심 의사결정 조직으로 전환하는 글을 4개월 전에 올려주셨는데( https://abit.ly/ekw549 ), 지금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기존의 조직형태를 오래동안 유지해온 조직이 이처럼 극단적인 변화를 전체 조직에 적용할 수는 없겠으나, 우리조직의 특성을 고려하려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가 무엇일지는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설계하는 것, 여전히 핵심인재의 내재적 동기요소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 AI가 판단하기 어려운 고난도의 커뮤니케이션, 윤리적 판단, 또는 조직 간의 복잡한 갈등 조정과 같은 맥락 기반의 활동은 사람의 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기회 확장의 트리거: ‘자가 복제’형 AI 에이전트 핵심인재에게 현재의 역할을 인계하고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큰 모험일 수 있습니다. 그 공백에 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인재가 현재 수행 중인 역할에 대해 스스로의 일하는 방식이나 의사결정 기준들을 담은 AI Agent를 생성하는 방식을 제안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일종의 ‘자가 복제’ 방식으로 역량을 프로세스화 하거나 동료나 조직에 전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요. 저 스스로도, AI 활용의 밀도를 높이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가장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한 일하는 방식이나 의사결정 기준들을 구조화하여 워크플로우로 만들고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AI는 개인의 역량을 증강할 뿐 아니라, Agent 활용으로 개인의 역량을 복제하고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측하게 됩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핵심인재의 역량을 조직의 역량으로 ‘설치’하고 핵심인재가 더 많은 영역에서 역량을 펼치고 조직의 잠재력을 성과로 만들어 내는 장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며
우수한 개인의 역량을 조직의 성과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조직이 제공하는 기회와 관계의 수준높은 설계에 달려있습니다. HR과 리더는 이들을 전통적인 잣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인재가 100배의 임팩트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기술환경을 고려하여 고민하고 설계하고 실행하며 학습해야 하는 영역으로 성과관리는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과관리 프레임도 진화하고 있다면, 여러분 조직의 성과관리는 어느 단계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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